민간사찰 '꼬리 자르기' 입 맞췄나

정제혁 기자 2010. 7. 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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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들 앞뒤 안맞는 '방어논리'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에 대한 경찰조서는 물론 공직윤리지원관실 스스로 작성한 '제보자료 이첩' 공문의 내용과도 배치된다. '모르쇠'와 '꼬리 자르기'로 혐의를 피해가려는 방어논리에서 사전에 말을 맞춘 흔적이 엿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형법상 직권남용이 적용될 수 있는 민간인 사찰에 대한 이들의 변명은 두 갈래다. 하나는 김 전 대표가 민간인인 줄 모르고 사찰을 벌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찰 과정에 이 전 지원관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법사찰이 고의가 아닌 실수였고, 그나마도 이 전 지원관은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원관실은 사찰 대상이 KB한마음 대표이사 신분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2008년 11월17일 지원관실이 동작서에 넘긴 '제보자료 이첩' 공문에는 "블로그 개설자가 국민은행의 전산·식당·우편물 등을 관리하는 내부 하청기업인 (주)KB한마음 대표이사 김종익이라는 제보를 토대로 확인절차를 진행했다"고 적시돼 있다.

이들은 "국민은행이 국책은행인 줄 착각해 사찰을 계속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2003년 말 정부가 보유 지분 9.1%를 매각한 뒤 6년째 정부 지분이 단 한 주도 없다. 기획재정부가 2005년부터 운영해온 '알리오시스템'에는 공공기관 지정현황이 일목요연하게 공개돼 있다. 공공기관 전담 감찰기관이 국민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모르고 감찰을 벌인 셈이다. 총리실에서도 이들의 해명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인 이유다.

이 전 지원관이 사찰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원관실은 내부 사찰 후 2008년 9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했고 서울 동작서에 또다시 수사를 의뢰했다. 지원관실이 수시로 동작서의 수사현황을 탐문한 정황도 드러났다. 처음에 무혐의 처분했던 동작서는 서장 지시로 재수사를 벌여 김 전 대표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는 지원관실이 사찰 단계부터 김 전 대표를 표적으로 삼아 경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정황이다. 따라서 일련의 과정을 실무자의 판단·결정으로만 떠넘기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 전 지원관 등은 김 전 대표가 KB한마음의 지분을 처분하고 대표직도 물러나도록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지원관은 "김 전 대표의 사임은 국민은행이 알아서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조서에서 김 전 대표는 지원관실 직원이 국민은행 노무팀장에게 "국민은행장까지 위험할 수 있다…국민은행 차원에서 어떻게 처리할 건지 정해서 알려달라"고 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지원관실이 작성한 '제보자료 이첩'에도 "2008년 9월19일 국민은행 인사부행장을 면담(남○○), 김종익의 불법행위 가능성을 설명하자 남○○는 사실 여부 확인 후 김종익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함"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 전 지원관은 "김 전 대표가 사임한 것은 지난 정권 때의 특혜의혹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작서는 김 전 대표의 횡령 혐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단 한 건의 탈법행위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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