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대북 선제타격론에 드리운 남북 '아마겟돈'의 망령
국가 차원의 위기관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D-13’(2000년작)은 한번은 관람해야 하는 영화로 손꼽힌다. 이 영화는 사상 초유의 안보 위기에 직면한 미국 정부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지켰는지를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미사일을 발사하는 미 해군 이지스구축함. 미 해군 제공 |
미 해군 이지스구축함에서 SM-2 함대공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
미국 민주, 공화당 대선후보인 클린턴과 트럼프 캠프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안보 위협에 대해 대북 선제타격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차관보와 피터 후크스트라 전 미 하원 정보위원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경제연구소(KEI) 토론에서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클린턴 캠프에서 자문을 맡고 있는 캠벨 전 차관보는 대북 선제타격론에 대해 “클린턴과 클린턴 캠프는 미국이 역내 동맹국과 긴밀히 협력해 시급히 다뤄야 할 문제가 북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며 “우리는 이 시점에서 어떠한 선택 가능성도 테이블에서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측에서 외교안보 자문을 하고 있는 후크스트라 전 위원장도 “트럼프는 중동이든, 한반도든, 러시아든 미국의 안보에 대해서는 어떤 옵션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밝혔다.
미국의 전직 고위 외교관과 주한미군사령관들도 선제타격이나 대화 무용론에 가세하고 있다.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수석부차관보는 이달 초 미 브루킹스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2016년 대선과 미국의 미래’라는 글에서 “현 상황에서 대북협상을 하는 것은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일부 인사들은 북한 핵 프로그램을 동결한 뒤 단계적으로 폐기해야한다고 하지만 비핵화를 위한 동결이 핵심인 제네바 합의나 9.19공동성명은 실패했다. 동결은 비핵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은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향상시키고 실제로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미국에 ‘우리는 기꺼이 핵전쟁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며 “고체연료 미사일 확보 등 북한의 선제타격 능력을 고려하면 우리가 공격을 당하기 전에 먼저 북한의 미사일 관련 시설을 선제공격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대기중인 B-2 폭격기. 미 공군 제공 |
◆ 대북 선제타격, 미국은 피해 없어…한국 피해 ‘눈덩이’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와 달리 대북 선제타격에 대해 미국 내 여론이 긍정적인 것은 북한의 공격으로 미 본토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쿠바 위기 당시에는 3메가톤 위력의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러시아의 SS-4 탄도미사일 기지가 쿠바 내에서 건설되고 있었다. 미 서부지역을 제외한 본토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이를 요격할 수단은 없었다. 미국이 러시아에 핵공격을 감행하면 러시아는 쿠바에 배치한 핵미사일로 반격해 워싱턴 등 미국의 정치, 경제 중심지를 타격할 수 있었다. 이는 미국의 핵 억제력이 무력화되는 것을 의미했다. 때문에 미국은 쿠바에 배치된 러시아의 핵미사일을 제거해야 했지만 섣불리 군사작전에 나설 경우 러시아 본토의 핵미사일이 미 본토로 날아올 수 있었다. 쿠바인 망명자들을 무장시켜 쿠바로 들여보낸 ‘피그스 만 침공’이 실패한 상황에서 케네디 행정부는 군사적 모험을 감행할 여유가 없었다.
북한의 KN-14 대륙간탄도미사일. 노동신문 |
시험발사되는 현무 지대지미사일. 국방부 제공 |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지만 정부 당국은 대북 선제타격론에 한 발짝 들어선 모양새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10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정부의 북한 선제타격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임박한 징후가 있을 경우엔 자위권 차원에서 선제타격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제타격이 몰고 올 후폭풍을 고려하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케네디 행정부는 쿠바 미사일 기지를 선제타격하자는 군부의 주장을 물리치고 외교적 압박과 협상, 무력시위 등 고도의 위기관리를 통해 국민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고도 핵전쟁 위기를 벗어났다. 우리 정부가 따라야 할 자세는 미국의 선제타격론자들이 던지는 ‘말폭탄’이 아닌, 케네디 대통령의 냉정하고도 절제된 리더십과 위기관리다. 남북한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의 군사력을 갖추고 있다. 북한의 장사정포나 방사포, 탄도미사일은 부유하거나 힘있는 사람이라고 비켜가지 않는다. 모두가 죽음의 공포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북 선제타격을 주장하기 전에 나라를 지키다 숨져간 우리의 아들들을 기리는 비석이 국립현충원을 가득 메운 모습을 상상해보라.
북 선제타격이 얼마나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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