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군대 가기 무서워요" 입대 앞둔 청년들 '속앓이'

박수찬 2015. 5. 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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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훈련을 받고 있는 육군 장병들. 사진=국방부

#1. 지방 소재 4년제 대학에 다니는 A씨(20)는 군 입대만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가족과 떨어져 생활한 적이 없어 '낯선 사람과 어울려 잘 생활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크다. 병역의 의무를 회피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입대를 연기하자니 취업 준비나 학사관리가 어려워질 것 같고, 당장 입대해도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칠 자신이 없어 고민이 크다.

군 입대를 앞둔 20대 청년들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입대해 군 생활을 마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 준비를 하려는 사람, 군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입대 연기를 거듭하는 사람이 바로 그것이다.

이 때문에 입영을 연기하다 24세 이후에 군에 입대하는 사람이 매년 수천명이 넘으며, 병역을 기피하는 인원도 수백명에 달한다.

주무기관인 병무청은 "입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며 입대 전 병영체험 프로그램 등을 활용하면 군 생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 군 입대가 두려운 이유는

지난해 육군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 등 병영 내 가혹행위 사건이 잇따르면서 군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의 두려움이 예전보다 커진 상황이다.

9일 병무청에 따르면 지난해 입영 기일 연기를 선택한 인원은 4만4521명에 달한다. 대학교 재학이나 대학원 등 공부를 이유로 입대를 연기한 사람이 1만6881명으로 가장 많고, 자격시험 응시(7648명), 질병(5761명), 해외여행(2005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현행법상 대학생은 졸업하기 전까지는 입대가 연기되고, 질병이나 국가고시 응시, 입대할 경우 가족의 생계가 어려워지는 경우에도 입영을 미룰 수 있다.

하지만 군 입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현행 제도를 악용하면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 1월 검찰에 기소된 그룹 올드타임의 가수 김우주(30)는 대학 재학, 대학원 편입 등을 이유로 입대를 연기하다 더 이상 연기가 불가능해지자 "귀신이 보인다"며 병원에 거짓 증상을 호소해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처분을 변경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2년에는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 병역을 면제받으려 한 2명이 경찰에 적발됐고, 2013년에는 붙이는 멀미약을 눈에 발라 동공 장애를 위장하는 수법으로 병역을 기피한 9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군 당국은 20대 청년들이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할 정도로 두려워하는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생활해야 하는 환경 ▲대인관계에 대한 부담 ▲사회와의 단절 ▲무기를 다루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등을 꼽고 있다.

최근까지 전방 부대에 근무한 군 간부는 "요즘 젊은이들은 '스마트폰 중독'이라 할 정도로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로 의사소통을 한다"며 "군에서는 디지털 기기 사용이 제한돼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마주하는 '아날로그식' 대인관계가 중요한데, 이러한 관계 형성이 익숙지 않은 병사들은 입대 초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장 최근에 국방부가 실시한 '제2차 군인복지실태조사'에 따르면 근무 도중 가장 어려운 점으로 '대인관계'를 꼽은 인원이 전체 응답자(1만3000여명)의 16%에 달했다.

군 생활을 막 시작한 이병의 경우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한 비율이 18.1%로 가장 높았고, 병장은 16.2%, 상병은 15.2%, 일병은 15%로 나타났다.

병영 내 도서관에서 자료를 검색하는 해병대원. 사진=국방부

가족과 떨어져 낯선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환경도 두려움을 가중시킨다. 군인복지실태 조사에서 근무 도중 가장 어려운 점으로 '외로움/심리적 위축'을 꼽은 인원은 전체 응답자 가운데 13.8%를 차지했다.

육군 출신 예비역 간부는 "가족, 친지와 떨어져 지내면서 겪는 외로움은 전화로는 쉽게 달래지지 않는다"며 "신병훈련을 마치고 부대에 갓 전입한 이병들이 외로움과 심리적 위축에 더 시달린다"고 설명했다.

최근 병영문화 혁신의 일환으로 도입되는 신형생활관이 병사 상호간 관심을 낮춰 외로움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군인복지실태조사에서 '신형생활관이 병사 상호간 관심을 낮춘다'고 응답한 인원은 전체의 31.4%에 달했다. 이는 신형생활관이 병사 개인의 생활을 보장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대인관계 형성에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무기를 다루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도 입대를 두려워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한 예비역은 "대한민국 남자들 중 입대 전에 총을 다뤄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라며 "자신이 쓸 무기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생기는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군 내 가혹행위, 성폭력 사건과 경력 단절로 인한 사회 복귀의 어려움 등도 원인으로 꼽힌다.

군 관계자는 "병사들이 군대에서 겪은 이런저런 일들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청년들이 입대에 두려움을 갖는 것 같다"며 단편적인 정보에 의존해 군 입대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 군사전문가는 "입대를 두려워하는 근본 원인은 가혹행위 등 병영문화의 악습에 기인한 탓이 크다"며 "젊은이들이 안심하고 병역의 의무를 다 할 수 있도록 병영문화를 개선하고, 경력 단절 대책 등을 체계적으로 마련하면 입대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 "입대 전 병영체험으로 두려움 극복해요"

군 당국은 입영을 앞둔 젊은이들의 두려움을 해소하고 병영생활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1월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입영대상자들이 가족에게 경례를 올리고 있다. 사진=국방부

병무청이 진행하고 있는 '입대 전 병영체험 프로그램'도 그 중 하나로 꼽힌다.

각 지방병무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병영체험 프로그램은 입영대상자들이 지방 향토사단을 방문해 하루 동안 군 생활을 체험하고, 병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군 입대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경인지방병무청이 육군 51사단에서 체험행사를 진행했고, 오는 14일에는 전북지방병무청 주관하에 35사단에서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병무청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의 권고에 따라 올해부터 현장 및 사이버 병영체험 프로그램을 시범운영 중"이라며 "성과를 분석해 향후 추진방향을 판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군 당국은 입영대상자와 가족·연인·친구·이웃들이 함께하는 현역병 입영문화제 등을 통해 입대를 병역 이행의 축제장으로 전환하는 등 입대의 두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제도를 확대할 예정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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