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필리핀 미녀 100명 대기중' 마닐라 간판 앞에서

손대선 2013. 8. 1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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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지난 11일 밤 박원순 시장을 비롯한 서울시 대표단의 일원으로 도착한 필리핀의 수도 메트로마닐라의 첫인상은 매캐한 매연과 열대성 스콜로 규정지어졌다.

하지만 '2박4일'이라는 빠듯한 일정 속에서 잠시 짬을 내 다닌 마닐라 거리에서 이내 마주친 것은 필리핀 민족의 순후함이었다.

에어컨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프티(미군 지프를 개조해 만든 수제버스)속의 승객들이 너나할 것 없이 서울시 대표단이 탄 버스를 향해 짓는 미소는 마치 메트로마닐라 전체가 서울시 대표단을 환영하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2006년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분야 수상자 자격으로 막사이사이상 재단 55주년 기념식 기조연설에 나선 박 시장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폐허 속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서울시의 스마트 행정과 참여민주주의를 설명하는 박 시장을 바라보는 재단 관계자들의 미소에서는 부러움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메트로마닐라 시장단을 비롯해 시민들이 서울시대표단에 보여준 엄청난 환대는 박 시장은 물론 기자들까지 '강남스타일' 춤을 추게 만들었다.

부러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필리핀 국립묘지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 앞에서 만난 90세 파레르노 빌로리야 옹의 미소에서는 UN군의 일원으로서 한국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일조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필리핀은 350년이 넘는 스페인의 압제에 시달린 나라다. 스페인이 물러간 뒤에는 미국과 일본이 이 땅을 점령했다.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1945년에 외세가 물러가면서 독립의 꿈을 이뤘다.

오랜 염원 끝에 이룬 독립인 탓인지 민족주의에 대한 갈망은 커보였다.

독립투사들이 스페인 군대에 의해 교살당하는 장면을 재연한 영상이 국가 연주의 배경화면으로 쓰일 정도다.

이 나라가 겪은 주요 전쟁사는 곧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의 참전사이기도 하다. IMF외환위기 당시 필리핀의 지도층은 앞 다퉈 달러를 풀어 경제를 살렸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필리핀은 단순한 한국전쟁 파병국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박 시장이 수상한 막사이사이상은 한국이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일종의 격려가 되어왔다.

장준하(1962), 김활란(1962), 이태영(1975), 장기려(1979) 제정구·정일우(1986) 등 수상자의 면모를 살펴보면 그렇다.

상금(1만 달러) 규모로만 따지면 노벨상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내·외압에 시달리지 않고 일관성 있게 수상자 자격을 검증해온 덕분에 제3세계에는 노벨상에 버금가는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필리핀 방문 중 고개를 들지 못할 일이 없지는 않았다.

국내에서 설자리를 잃은 거대조폭의 우두머리가 필리핀 세부섬을 근거지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선 한숨부터 나왔다.

한인 타운 한복판에서 반갑게 마주친 한글간판에서 '필리핀 미녀 100명 대기중'이라는 문장을 확인했을 때에는 당혹감마저 느껴야했다.

현지인 중 지한파로 이뤄진 '서울클럽' 회원과의 조찬에서 새겨들은 조언에는 약소국가 사람들에게 턱없이 무례한 한국인에 대한 염려가 섞여있었다.

현지 한국 기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독재정권 하에서 경제와 정치 모두가 뒷걸음질 쳤던 필리핀은 진일보한 민주화와 더불어 최근 3년 동안 연 평균 7%대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다국적 콜센터와 과열된 부동산 경기, 해외파견 노동자들의 본국 송금 덕택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성장의 등뼈'가 없는 것이다.

메트로마닐라는 급속도로 덩치를 키우고 있었지만 '비만'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류장과 신호등의 개념조차 희미한 현지 교통시스템은 이 도시의 동맥경화를 염려케 했다. 자동차 판매율 저하를 우려한 일본 기업의 방해로 지하철은 세울 엄두조차 못 낸다고 한다.

한국은 최근 국내 최초로 개발한 T-50 고등훈련기의 필리핀 수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기자는 박 시장이 현지인들에게 소개한 서울지하철 운영, 버스환승 시스템, 스마트 교통카드가 그 무엇보다 먼저 건네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14일 귀국 후에도 아직 기억난다.

서울시 대표단을 쫓아오며 손을 벌리던 맨발의 필리핀 소년. 그리고 소년을 감시하던 현지인 남성의 눈초리를. 한국이 그들에게 건넬 것은 동냥은 아닌 것 같다.

sds110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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