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냉각탑 폭파까지 막전막후(종합)

2008. 6. 2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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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주고받기'의 산물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북한이 핵신고서를 제출하고 영변 핵시설 폭파라는 이벤트를 연출하기까지에는 미국과 북한간 계산된 '주고받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핵 현안에 정통한 외교소식통들의 전언을 종합해보면 양측은 지난해 비핵화 2단계를 규정한 10.3합의를 실천하는데 최대 장애가 되는 핵 신고를 놓고 사활을 건 기싸움을 벌였다.

특히 이른바 2차 핵위기의 발발 원인인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지난해말부터 자국내 강경파들이 집중적으로 제기한 시리아와의 핵협력 의혹을 신고서에 담으려는 미국과 '근거가 없다'며 저항하는 북한이 좀처럼 접점을 찾지못했다는 후문이다.

북한은 10.3합의 직후인 지난해 11월 자신들이 작성한 핵신고서라는 것을 의장국 중국에 제출하려 했고 앞서 미국에 그 내용을 보여줬다.

하지만 미국측은 그 내용에 실망하고 북한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러자 북한은 지난해 연말 미국에 UEP에 쓰였다고 의심받아온 수입알루미늄관을 전달했다. 미국측은 이 알루미늄관에서 우라늄농축 흔적을 발견했지만 그것이 북한의 활동에 의한 것인지 여부는 밝히지 못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자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협상가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외로운 결심'을 했다는게 외교가의 전언이다.

그는 '실체적 위협'이라는 현실적 변수를 기준으로 삼았다. 즉, 북한이 성공여부는 차치하고 핵실험까지 하면서 위험성을 입증한 플루토늄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현 단계 북핵 협상의 현실적 목표로 삼고 UEP와 시리아 핵협력설은 다음 단계(또는 현단계에서는 우회)로 넘기기로 한 것이다.

힐 차관보는 지난 3월13~14일 제네바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 일단 모든 내용을 신고서에 담아야 한다며 '동시 전면신고'를 요구하면서도 '신고형식'에는 유연히 대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절충 가능성을 타진한 두 사람은 4월 8일 싱가포르에서 다시 만났고 이른바 '잠정합의'를 도출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미국은 북한에 핵 신고 내역과 형식에서 양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플루토늄 항목을 철저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신고하는 대신 UEP와 시리아 핵협력 의혹은 '우회방안'을 찾기로 한 것이다.

결국 과거 중국과 미국이 1970년대 수교협상 과정에서 활용했던 '상하이 공동성명' 형식을 차용해 북한이 UEP와 시리아 핵협력 의혹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인식한다'는 내용으로 간접시인하는 선에서 일단 봉합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 내용도 양측간 비공개 양해각서로 처리하기로 했다.

또 북한이 공식 신고하는 핵 신고서에 핵무기는 제외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핵 신고서를 제출하는것과 거의 동시에 북한이 요구하는 테러지원국 해제 절차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는 10.3합의의 원칙인 '행동 대 행동'에 따른 것이었다.

싱가포르 합의는 UEP의 존재를 극구 부인하던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핵협상을 앞으로 밀고나가기 위한 힐 차관보의 선택으로 풀이된다.

싱가포르 합의 이후 힐 차관보는 자국내에서 엄청난 비난에 시달리게 된다. 강경파는 물론 과거 동료였던 전직 관료출신 인사들로부터도 '정치적 야심'을 위해 '무리한 타협'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된 것이다.

이 즈음 힐 차관보는 매우 힘들어하며 '사직의사'를 간헐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는 게 그를 잘 아는 우리 정부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결국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물론 조지 부시 대통령까지 힐 차관보의 협상안에 대한 지지를 보내줬고 이후 북.미 양측간 협상은 급진전됐다.

힐 차관보의 협상팀에서 실무를 총괄하던 성 김 국무부 한국과장이 이후 몇차례 방북해 핵신고 협의를 했다. 그 과정에서 북한도 '성의'를 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1만8천822쪽에 달하는 영변 핵시설 가동일지를 미국측에 넘겨준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북한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지만 확실하게 과거 핵활동을 공개한다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중요한 자료'를 넘겼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특히 이런 과감한 행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단이 없고는 성사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북한의 행보를 주시했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폭파 아이디어를 미국에 밝혔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당시 북한이 냉각탑을 구체적으로 지칭했는 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영변 핵시설을 다 부순다면..'이라는 표현은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07년 3월 미국을 방문, '파격행보'를 보였던 김계관 부상이 힐 차관보와의 대면에서 '전면적인 핵폐기를 단행할 경우 미국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면서 북한의 핵폐기 의지의 상징으로 영변 핵시설 폭파 의향을 내비쳤다고 한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이후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 해결이 지체되면서 다소 분위기가 얼어붙기도 했지만 결국 미국이 중앙은행까지 동원해 그해 6월 BDA 문제가 해결되고 중유 5만t의 도착이 확인되자 북한은 영변 핵시설 가동을 정식으로 중단했다.

그 이후 미국쪽에서 북한의 핵시설 폭파 아이디어를 원용해 그 가운데 상징성이 있는 냉각탑의 폭파 가능성을 북측에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생중계 아이디어가 북.미 간에 오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26일 한 모임에서 "이 문제(냉각탑 폭파)는 작년 여름부터 한미간 아주 긴밀히 협의해왔던 것"이라면서 "그 당시 미국에서 CNN을 데리고 와 한번 생중계하면 강경파의 발목잡기가 힘들지 않겠냐고 (제의)했는데 그게 지금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영변 핵시설 전체의 폭파라는 북한측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현실적으로 냉각탑이라는 대상을 선정하게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핵 신고를 분리(플루토늄과 우라늄 및 핵확산)하고 1만8천822쪽에 달하는 핵관련 자료를 제출하며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한다는 일련의 합의들이 북한과 미국 간 주고받기의 결과물이라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벼랑끝 전술'을, 유리한 국면에서는 주로 '과시용 이벤트' 전술을 구사해온 북한이 이번 사례에도 이를 적용했다는 것이 외교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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