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군, 이념 편향 역사서적 장병들에게 읽혀 논란.. 일제 식민지배 정당화한 책 보급

황경상 기자 입력 2014. 6. 18. 00:02 수정 2014. 6. 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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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대비태세 강조한 책".. 정치적 중립 위반 지적도

군 당국이 특정 이념에 치우친 역사서를 장병들에게 보급하는가 하면 독후감까지 쓰도록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다. 해당 도서들은 일본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제주 4·3사건을 폭동으로 규정하는 등 최근 논란이 된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의 역사 관련 발언들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군이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경향신문 공익제보 사이트 '경향리크스'에 제보된 내용을 확인한 결과 육군학생군사학교(학군교)는 지난 3월 <조선은 왜 망하였나>(송복 지음·일곡문화재단), <송의 눈물>(정순태 지음·조갑제닷컴) 등 '국방부 보급 역사도서' 3종 7250세트를 배부하고 학군, 학사·여군사관, 간부사관 후보생들에게 독후감을 쓰라고 지시했다. 각군 병과학교에서 진행된 고등군사반 등에서도 해당 도서를 배부하고 독후감을 쓰도록 했다.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는 지난해 7월 건국이념보급회에서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이주영 지음·건국이념보급회 출판부) 900여권을 기증받아 장병들에게 배포한 뒤 독후감 및 동영상 공모전 시상식을 열었다.

해당 도서를 확인한 결과 <조선은 왜 망하였나>는 "조선조의 권력은 철저하게 편가르기였다"(170쪽)라며 조선의 문화 수준을 폄훼한 일제 식민사관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을 펼쳤다. 또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조선은 쇠망의 길로 줄달음쳤다"(160쪽) 등 일본 식민지배가 당연한 귀결인 것처럼 묘사했다. "이조 500년 허송세월 보낸 민족"이라며 '식민지배는 하나님 뜻'이라고 말한 문 지명자 발언과도 맞닿아 있다.

<송의 눈물>엔 "좌파 정권 당시 북한 김정일에게 수십억달러 현금을 제공한 이적 행위를 국법으로 처벌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양심' 운운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어둡다"(6~7쪽)고 기술돼 있다. "한국도 문화권력이 선동적 좌파 지식인들에게 장악되고 있다는 점에서 송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나라"(9쪽)라고 서술하기도 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책 속 독후감에서 "남송의 진회(秦檜)가 적과 화친한다면서 이적 행위를 해간 과정은 북한과 화해한다면서 안보를 해체해간 햇볕론자들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은 제주 4·3사건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고만 규정(142쪽)하면서 군경의 무고한 주민 학살은 언급하지 않았다. 친일 행위를 두둔하는 듯한 언급(145~147쪽)도 있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대표적 악질 친일경찰로 꼽히는 노덕술을 체포한 사실에 대해선 "이승만이 볼 때, 공산주의자들이 살인, 방화, 파괴를 일삼고 있는 마당에 경험 있는 경찰관들을 잡아들이는 것은 현명하지 못했다"고 서술했다. 경찰들의 반민특위 공격에 대해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옹호했다. "친일파 숙청은 해방 직후부터 좌익들이 끈질기게 요구해오던 문제"라며 친일파 단죄를 좌익만의 주장인 것처럼 쓰기도 했다.

국방부 측은 "장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대비태세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기에 배부한 것"이라며 "수방사의 경우 장병들이 기증도서 내에 첨부된 공모대회 홍보지를 보고 개별 응모했으며 시상식만 공동으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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