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 신중하던 여권, 슬슬 '북한 끌어들이기'

이용욱·장관순 기자 2010. 3. 3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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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책임론 차단·보수층 결집 등 효과"북 개입가능성 배제한 적 없다" 급선회"실체 규명은 없이 혼란만 부채질" 비판

정부와 여권이 천안함 침몰 사고의 원인을 놓고 서서히 북한을 겨누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건 발생 직후인 지난 28일 "원인에 대한 섣부른 예단과 그에 따른 혼란이 생겨서는 안된다"고 밝히는 등 당초 여권은 천안함 침몰 사고와 북한을 되도록 연관짓지 않으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사고에 대한 원인규명 작업이 길어지면서 여권 내부에서 북한과의 연관성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는 양상이다.

당장 정몽준 대표는 30일 라디오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백령도에서 들려온 (침몰) 소식은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 안보상황에 놓여 있는가를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고 밝혔다. 북한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안보'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북한과의 연관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힌다.

군 당국도 '북한 배후론'을 공식 거론했다. 김중련 합참차장은 이날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비공개로 보고하는 자리에서 "북한의 반잠수정이 어뢰 두 발을 장착할 수 있는데, 그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의도적 공격 가능성을 거론했다. 기존에 제기됐던 '북한 기뢰와의 충돌 사고' 의혹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도 지난 29일 국회 국방위 답변에서 "정부나 국방부 할 것 없이 북한의 개입 가능성이 없다고 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이처럼 근거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미리 북한을 거론하기 시작하는 것에는 복합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실종자 수색작업 등 정부와 군의 미숙한 대응에 대한 비난여론을 희석시킬 수 있다.

특히 천안함 침몰 사고의 원인에 대한 규명작업이 늦어지거나 장기화될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공식화함으로써 정부와 군의 책임론을 차단하는 효과를 겨냥할 수도 있다. 북한의 개입 가능성이 커지면 그만큼 정부와 군의 책임론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북한의 개입설은 또 천안함 침몰 사고가 6월 지방선거에서 여권에 미칠 악영향을 제어해줄 수도 있다. 당장 보수세력 결집에도 유리하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청와대에서 오랫동안 원인에 대한 분명한 언급 없이 사안을 붙잡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북한 핑계를 대고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의 한 의원도 "국정원의 첫 보고를 받았을 때에는 '북한 연관으로 보기에 북의 움직임이 너무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조금씩 그쪽으로 몰고가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대응 행태가 불러올 부작용이다. 이미 천안함 사고에 대한 근거 없는 추측과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등 사회적 혼란이 크다. 이런 와중에 뚜렷한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을 끌어들이면 보수단체들을 중심으로 보복공격 여론이 제기되는 등 '신북풍 정국'이 조성될 수 있다. 한반도 정세를 급랭시킬 수도 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 미국이 곧바로 "북한의 개입 근거가 없다"고 정리하는 것도 예단에 기초한 북한 개입설이 자칫 한반도 정세에 돌발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감안한 것이다.

결국 "사고 원인과 관련해 근거 없는 추측과 유언비어가 난무하는데 이는 사태수습에 전혀 도움 안 되고 국민 혼란만 부추길 수 있는 만큼 무책임한 추측과 유언비어 유포를 자제해달라"는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발언을 무색하게 하는 행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의 행동 징후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북측의 개입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은 한반도 상황의 안정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고, 남남갈등과 남북갈등만 야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욱·장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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