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불발 미스터리'..국회에서 무슨 일이?

입력 2008. 9. 12. 15:04 수정 2008. 9. 1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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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정치부 이재준 기자]

여야가 물밑 협상을 통해 절충점을 찾고도 결국 추경 예산안 처리에 실패하면서, 그 배경을 놓고 12일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과 민주당 박병석 정책위의장이 절충안에 잠정 합의한 건 전날밤 10시. 두 사람은 각 당 지도부와 논의한 최종안을 갖고 임 의장의 방에서 협상에 임한 결과 합의를 도출해냈다.

박병석 정책위의장은 "여야간에 수십 차례의 직접 협상과 전화 접촉이 있었고, 이때 '원만한 합의'를 봤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은 임태희 의장의 제안으로 밤 10시 30분쯤 홍준표 원내대표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방에는 홍준표 원내대표와 주호영 수석부대표, 최경환 수석정조위원장이 있었다.

잠시 뒤 홍준표 원내대표와 양당 정책위의장이 머리를 맞댔다. 합의 내용을 '부대조건'으로 달기로 하고 문서로 정리했다는 게 박병석 의장의 설명이다.

◈ 여야 지도부 11일밤 '추경 합의'

세 사람은 △공기업에 예산 보조를 통한 가격 관리는 하지 않는다 △가정용 농어촌용 자영업자 중소기업용 전기료를 금년말까지 인상하지 않는다 △계수조정소위에서 삭감된 재원을 대학생 등록금 지원, 노인 틀니 지원, 경로당 난방 지원, 다자녀가구 건강보험 지원 등 서민용 예산으로 쓴다 등 3가지 조항을 메모지에 써내려갔다.

다만 임 의장이 첫번째 조항의 '금년말까지 인상하지 않는다' 부분을 '현재까지 발생한 인상 요인을 가격에 전가하지 않는다'로 수정해달라고 요구, 그대로 반영됐다.

박병석 의장은 "홍 원내대표의 메모지와 만년필로 합의안을 작성해 직접 낭독하면서 확인까지 했다"며 "홍 원내대표가 예결위 간사와 협의해 반영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박 의장은 "이에 따라 합의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예결특위 회의장으로 갔지만, 이한구 위원장이 합의사항과는 무관한 추경예산안을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최인기 의원도 "정책위의장 간 협상이 진행되고 있어 그 결과를 보고 소위를 진행하자고 말했다"며 "그러나 이한구 위원장이 '그런 것을 뭐하러 묻느냐'고 거부한 뒤 일방적으로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 이한구 "민주당이 막판에 틀었다"

민주당은 특히 "홍준표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양동 작전을 썼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한구 위원장의 독단에 의한 강행 △여당 내 전달 과정에서의 엇박자 △청와대 등 외부로부터의 강력한 주문 등 세 가지 가능성을 그 배경으로 꼽았다.

그러나 이한구 위원장은 민주당의 이같은 비판을 정면 부인했다. 민주당이 막판에 합의 내용을 틀었다는 것.

이 위원장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민주당이 한전에 대한 보조금 지급엔 동의했지만, 가스공사에 보조금을 주자는 안을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양당 합의 내용을 깨고 처리를 강행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나도 과거 10년간 여당이 예산 심의하면서 독주하는데 진절머리가 났었다"며 "이번에 모든 과정을 야당과 철저히 협의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현재 한나라당과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모두 "결렬될 이유가 없는데 영문을 모르겠다", "이게 왜 합의가 깨졌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 본회의 처리 직전 '통과 불발'

어찌됐든 이한구 위원장은 자정을 살짝 넘긴 이날 12시 6분을 기해 추경예산안 통과를 선언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선진과창조를위한모임 예결위 소속 의원들은 정부 원안에서 5977억원을 삭감한 4조 2677억원 규모의 조정안을 의결했다.

본회의로 넘어간 추경안을 처리하기 위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지역구로 내려가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긴급 호출을 받고 속속 모여들었다.

160여명이 모이면서 의결 정족수를 채운 찰나, 예결위 통과 과정에서 국회법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예결위 상황을 지켜본 민주당 원내 행정실의 한 당직자가 절차상의 문제점을 발견해낸 것.

◈ '원천무효'된 '예결위 강행'

총 50명인 예결위 의결을 위한 정족수는 26명. 그러나 당시 추경안 통과 직전 예결위에는 25명이 모여있었다.

이에 한나라당은 불출석한 황영철 의원 대신 '사보임'을 통해 윤리특위 소속 박준선 의원을 예결위원으로 출석시켜 추경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의사과에 '사보임 요구서'가 접수된 건 이한구 위원장의 의결 선언이 있기 딱 1분 전인 12시 5분. 국회법상 '사보임'의 경우 의사과가 요구서를 접수한 뒤 해당 위원회에 변경 통지 공문을 보내야 효력이 생긴다.

그러나 민주당 확인 결과, 의사과가 변경 통지를 발송한 시간은 12시 32분으로 기록돼 있었다. 이에 따라 예결특위에서의 추경안 처리는 '원천 무효'가 됐다.

◈ '재처리'도 '직권상정'도 실패

한나라당은 부랴부랴 다시 예결특위를 열어 의결을 시도하려 했지만, 이미 12시 9분을 기해 이한구 위원장이 산회를 선포한 뒤였다.

국회법상 산회를 한번 선포하면 같은 날 회의를 다시 열 수 없게 돼 있어 '재처리'가 물건너간 것. 이에 한나라당 지도부는 마지막 카드인 '국회의장 직권 상정'을 시도했다.

홍준표 원내대표 등은 김형오 국회의장을 찾아가 "추경안이 심사소위에서 처리된 건 유효하다"며 직권 상정을 요구했지만, 김형오 의장측은 "사보임 절차에 하자가 확인된 만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이 '합의 당사자'로 지목한 홍준표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이날 추경안 처리 무산 직후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을 뿐, 전날 상황에 대해서는 현재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결국 "국민들에게 추석 선물을 안기겠다"며 추경 처리를 확신했던 한나라당은 보기 드문 '희극'만 귀향길 국민들에게 안긴 셈이 됐다.zzle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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