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외교부·KOICA 외국인 연수생 한국인 성추행 사건 덮으려다..

구교형 기자 2013. 10. 1. 11: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두 달여 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주관한 연수에 참가한 해외 연수생들이 한국인 여성을 강제추행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외교부와 KOICA는 사건 초기 문제를 대충 덮으려다가 피해자 가족이 경찰 고소에 이어 청와대 신문고에 민원을 접수하는 등 사건이 확대되자 "다른 직장을 구해주겠다"고 회유했다. 그 사이 가해자들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갔고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지만 '소재불명'으로 기소중지됐다. 20대인 피해자는 외교당국의 사과와 가해자 처벌을 바랐지만 외교부와 KOICA의 무성의한 대처 속에 더 큰 상처만 입게 됐다.

■두 차례 잇단 성추행…진상조사 때 계약직 보낸 KOICA

1일 경향신문과 민주당 박병석 의원실 공동취재 결과 KOICA는 7월14일부터 8월3일까지 '정보통신 개발정책' 과정에 르완다 정보기술(IT) 분야 공무원 15명을 초청했다. 그런데 연수 사흘째인 16일 피해자 ㄱ씨(20)가 두 차례 성추행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오후 8시40분 서울 중구에 있는 한 호텔 옥상에서 르완다인 ㄴ씨(27)는 ㄱ씨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접근해 어깨를 끌어안고 키스를 시도했다. 이어 오후 9시 같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또다른 르완다인 ㄷ씨(36)는 서빙 중이던 ㄱ씨에게 팁 1000원을 주면서 "언제 근무가 끝나냐"고 물었다. ㄱ씨가 "시간이 없다"며 돌아서자 ㄷ씨는 ㄱ씨의 손목을 잡아당기면서 객실번호를 알려줬다. 이어 "일이 끝나면 내 방으로 와라", "오늘 내 방에서 자고 가면 안되겠냐"고 했다.

KOICA는 사건 발생 초기 대수롭지 않게 대응했다. 이튿날인 17일 오후 1시30분 KOICA는 연수 업무를 위탁받은 국제교류증진협회로부터 전화로 사건 내용을 보고받았다. 4시간 뒤 KOICA 계약직 직원 정모씨(여)와 증진협회 직원들이 호텔에 도착했다. 가해자들은 모두 외국인 남성인데 진상 파악에 여성을 보낸 것이다. 동아프리카 팀장 황모씨와 르완다 담당 과장 조모씨(여) 등 간부들은 현장에 동행조차 하지 않았다. KOICA 관계자는 "피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직원을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고 해명했다. ㄱ씨는 이 자리에서 "가해자들 호텔를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튿날 KOICA는 호텔 측과 "피해자 근무시간 조정과 휴가부여를 통해 연수생들과 마주치지 않게 하겠다"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과거에도 KOICA는 해외 연수생들의 성추행 사건을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 지난해 6월 도심관광 일정 중 아프가니스탄 연수생이 공연을 관람하다 옆 좌석에 앉은 여성 봉사자의 얼굴, 손, 팔과 다리 등을 만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여행 가이드가 연수생들에게 성추행 발생을 경고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같은해 7월에는 알제리 연수생이 현대자동차 공장 방문 후 숙소로 이동해 짐을 푸는 과정에서 통역보조원을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했지만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해마다 100여개국 4000여명의 해외 연수생들이 KOICA를 통해 국내에 들어오지만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면 졸속으로 수습하는 관행 탓에 말 못하는 피해자들만 늘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일부다처제라 개방적이다"…경찰에 고소장 접수되자 외교부에 늑장보고 한 KOICA

ㄱ씨는 KOICA의 사건경위 파악 과정에 '2차 피해'를 입었다. ㄱ씨가 7월18일 작성한 경위서에는 "(KOICA) 담당자가 '원래 아프리카 쪽 사람들은 일부다처제의 문화가 있고 개방돼 있다'고 하던데 그런 일반화로 설명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해자들이) 르완다 사람들 치고는 순하다'고 하는데 '~치고서'라는 말은 전혀 변론이 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KOICA 간부들이 주고받은 e메일도 이들의 안이한 상황 인식을 보여준다. 동아프리카 팀장 황씨는 같은 시각 르완다 사무소 소장에게 보낸 e메일에서 "생각했던 것 보다는 사건이 경미한 편"이라고 했다. 르완다 사무소 소장은 다음날 "가급적 원만하게 잘 끝났으면 좋겠다"고 회신했다.

ㄱ씨로부터 경위서를 접수한 KOICA는 연수생들을 상대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했다. 그런데 교육에 소요된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KOICA 관계자는 "연수생들을 상대로 경고 및 주의 차원에서 성추행 예방교육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이 별 문제 없이 연수를 받는 사이 ㄱ씨는 큰 충격에 시달렸다. 딸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아버지가 그 이유를 묻자 ㄱ씨는 호텔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실을 털어놨다. 26일 ㄱ씨 아버지는 가해자들을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고소했다. 경찰 조사에서 계약직 직원 정씨는 "자체 조사 결과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 주장에 신빙성이 크다"고 진술했다. 같은날 오후 8시부터 이튿날 새벽 3시까지 가해자들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KOICA 측에 '가해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를 해야 하니 소재를 알려달라'고 하자 '자진 출석하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경찰이 출석을 통보하자 그제서야 KOICA는 외교부 개발협력과에 성희롱 사건을 구두로 보고했다. 27일 새벽 3시 경찰 조사 후 가해자들은 연수생 대열에서 이탈해 KOICA 본부에 있는 연수센터에 격리됐다. 출국 전날인 8월3일 KOICA는 ㄱ씨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가해자들이 사과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ㄱ씨 아버지는 이를 거절했다. 이튿날 ㄱ씨 가족의 강력한 처벌 요구에도 연수생 전원은 예정대로 본국으로 가는 비행기편에 탑승했다. 경찰은 가해자들의 범죄가 구속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서 출국금지 조치를 하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두드리자 진상파악 나선 외교부…그제서야 KOICA는 피해자 부모에 사과 전화

8월9일 조씨의 아버지는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접수했다. 19일 외교부는 민원 접수 내용을 KOICA에 이첩했다. 외교부는 앞서 KOICA로부터 구두 보고를 통해 사건을 인지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움직이자 마치 처음 사건을 알게된 것처럼 KOICA에 공문을 보냈다. 외교부는 공문에서 "귀 단에서 실시한 '르완다 정보통신 개발정책' 국내초청 연수와 관련해 여성가족부를 통해 우리부로 민원이 들어온 바, 내용상 귀 단에서 처리해야 할 사안이므로 이를 이첩하니 가급적 조속히 처리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외교부가 미리 사건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위해 KOICA에 일부러 공문을 보냈다고 의심할만한 대목이다.

KOICA는 외교부로부터 민원이 이첩되자 발빠르게 움직였다. KOICA는 22일 외교부에 보낸 주간보고서에서 "대응 준비 중"이라고 썼다. 보고서 작성 전날 사건 발생 직후 처음으로 르완다 담당 과장 조씨는 ㄱ씨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사과했다. 23일에는 르완다 사무소에 공문을 보내 가해자들의 소재와 업무 복귀 여부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27일 KOICA 르완다 사무소에서 작성한 피해자 면담 결과에는 "가해자들은 귀국 후에도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자신들이 범죄자가 되면 실직은 물론 르완다 내에서의 생활 자체가 불가능 해질수 있다는 걱정을 토로했다"고 적혀 있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KOICA는 사건 무마에 나섰다. 조씨는 29일 ㄱ씨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호텔 취직을 알아봐 주겠다"고 말한 뒤 이력서를 받았다. 이후 연수업무를 위탁한 국제교류증진협회에 전화를 걸어 취직을 알선해달라고 떠넘겼다. 30일 증진협회 직원은 "조씨의 소개"라면서 4개 호텔에 이력서를 접수하라고 했다. 이 직원은 얼마 뒤 "다른 호텔 지배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인사부서에서 직접 연락할 것"이라고 회유했다. 그러나 이날 이후 외교부, KOICA, 증진협회 어느 누구로부터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9월6일 서울중앙지검은 가해자들 소재 파악에 나섰지만 이미 출국한 뒤여서 사건을 기소중지 처리했다.

박 의원은 "해마다 국내에 들어오는 해외 연수생 수가 급증하면서 자국민을 상대로 한 성추행 사건이 빈발하고 있지만 외교부와 KOICA는 무대책으로 일관, 사건 축소·은폐에만 급급해 하고 있다"면서 "최소한 가해자들에 대한 형사처벌과 함께 사건 당사국으로부터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