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이제 정치인으로서의 명예를 버렸다"

2012. 5. 1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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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

'논란의 핵' 이정희 직격 인터뷰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대중적 이미지를 지닌 몇 안 되는 진보 정치인이었다. 2008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해 2010년 당 대표 자리에 올랐다.

이 대표는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파문과 관련해 '진보의 아이콘'에서 '당권파의 수장'으로 변신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는 11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파문과 관련한 당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대해 "없는 사실까지 지어내는 것은 옳지 않다" "사실확인도 해보지 않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또 그는 당권파를 제외한 당 내부와 일반 여론이 당권파의 이해관계를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이정희'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지적하자 "나는 이제 정치인으로서의 명예를 버렸다"고 말했다. 당권파는 부정선거 논란의 책임을 지고 모든 경쟁부문 비례대표 후보자·당선자가 사퇴해야 한다는 당 전국운영위원회 결정에 강력 반발하며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파문의 근본 원인은 뭐라고 보나?

"비례대표 후보 경선 시비가 불거진 뒤 이에 대한 당 대표단의 대처는 어느 하나 원칙에 근거한 것이 없었다. 문제가 생기면 계속 뒤로 미루며 정치적 해법이라는 이름으로 미봉하려고 했다. 그게 사태의 발단이라고 본다.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통합에 이르기까지 당이 많은 분들 의견을 좀더 모으고 화합해서 갈 수 있도록 당의 흐름을 만들지 못했다. 그게 이번에 의심과 불신이 증폭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당권파는) '원래 그랬잖아, 또 그랬을 거야' 한마디로 정리되는 상황이다. 뭘 그랬는지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하던 대로 했겠지' 하는 의심이 당 진상조사 과정에도 상당히 많이 작동했다고 본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총체적 부정이 있었다고 했고 그 해법으로 정파와 관계없이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 모두가 사퇴하자는 것 아닌가. 왜 당권파만 반발하냐는 지적이 있다.

"솔직히 지난달 29일부터 2일까지는 더 조사하지 말자는 입장이었다. 왜 그랬냐면 사건을 낱낱이 밝히게 되면 노동자·농민의 조직이 상처받을 게 두려웠다. 부실이 광범위했고, 그 부실이 선거 자체를 무효까지 끌고 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드린 것만으로도 당시 나는 사퇴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1일) 다른 대표들께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본인들은 이 당의 집행에 관해 어떠한 권한도 행사한 적이 없다,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나는 그렇게 판단한다면 책임을 온전히 홀로 지는 게 맞다고 봤다. 또 사실 지금 공동대표를 제외하면 당원과 국민으로부터 일정한 기대와 신망을 받는 분들이 당에 많지 않았으니 더 조사하지 않고 부실에 대해서는 내가 전체적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왜 당권파만 반발하냐고?사건 낱낱이 밝히게 되면노동자·농민의 조직이상처받을까 두려웠다

이 당의 힘은 합의와 신뢰인데지금은 모두가 서로를 의심그렇게 만든 게 나다

-그런 모습이 사람들이 알던 '이정희'였다면,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온 뒤 당권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일일이 책임을 가려보자고 나서는 이 대표는 과거와 달라진 것 같다는 이들이 많다.

"4일 아침 사실관계를 하나하나 확인해가면서 보고서를 읽었는데, 나는 많이 분노했다. 국민들 앞에서 잘못이 많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없는 사실까지 지어내면서 '이것이 잘못이다' 말하는 건 옳지 않다. 십수년간 온갖 비난을 다 들어가며 진보정당 만들려고 애쓴 현장의 노동자, 농민인데 왜 그들에게 사실 확인 한번 해보지 않나, 하는 분노가 있었다. 너무 법률가적 태도라 할 수도 있지만 100명의 범죄자를 놓쳐도 한 사람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면 안 된다, 이게 근대의 상식이고 원칙이다."

-지금 여론은 법적 책임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묻고 있다. 이 대표는 당 주요 인사의 정치적 진퇴와 관련해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태도인데, 앞으로 모든 정치적 사건 및 사안에 대해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할 것인가?

"법률 영역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이란 두 가지다. 내용의 측면에서는 실제 유죄를 확증할 근거가 없다면 무죄라는 것이고, 절차의 측면에서는 정해진 법적 절차를 거치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것이다. 나는 정치의 영역이라 해도 적어도 내용의 측면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보장돼야 한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기 전 진보 언론까지 그의 사과를 요구했을 때도 나는 '지금의 수준이라면 확실한 유죄의 증거가 안 보인다', 이렇게 생각했다. 따라서 그 시점 노 대통령에 대해 유죄라 단정한 채 공격하는 건 옳지 않다고 여겼다. 지금도 그 입장은 똑같다."

-4일부터 5일까지 이어진 운영위원회에서 이 대표는 19시간짜리 필리버스터를 보여줬다. 자신이 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나?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워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민주주의자인지 아닌지는 스스로 평가하기보다 보는 사람이 평가할 것이다. 다만 통합진보당의 민주주의 수준은 그동안 신라시대 화백제도였다. 모두가 합의해야 한다. 중요한 사안이라도 표결처리보다는 합의로 처리하자는 것이 통합의 정신이었다."

-정신을 구현하는 것은 제도이고 제도는 사람이 만든다. 운영위 의사진행규칙을 보면 위원의 토론 종결 요청이 있으면 의장은 이를 받아들여 표결에 부치도록 돼 있다.

"회의 규칙대로 하자, 이러면 형식적으로는 맞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그 조직이 화합해서 앞으로 분쟁이나 분란이 없도록 갈 수 있게끔 하는 절차다. 많은 이들 생각과 격차가 상당히 존재하는 행위지만, 지금까지 통합진보당은 다수결로 결정한 적이 없었다."

-경기동부연합, 혹은 한대련 소속으로 보이는 당원 수십명이 당시 운영위 회의장을 가로막고 고함을 지르는 등 회의 진행을 방해했다. 그때 현장에서 그들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봤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 의사표현과 관련해 나는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에 서 있다. 내가 집회 및 시위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 원칙이 있다. 명백하게 급박하거나 현실적 위험이 아니면 사전에 제한하면 안 된다는 것이 내 원칙이다. 그들이 나를 비판하는 사람이든, 옹호하는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당시 현장에서 그들은 나를 옹호하는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정희'에게 바란 건 '당권파의 수장'이 아니었다.

"적어도 비난받을 것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모습이 일단 그렇게 비치니 내가 상당히 비판받겠구나, 모르지 않았다. 나에게 형성된 이미지가 뭔지도 안다. 그 이미지를 지키고 싶었으면 거기에 맞는 행동을 했을 것이다. 자리를 잃더라도 명예를 지켜야 추후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열어두는 것인데, 그 순간 내가 진상조사위의 부실조사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 달라, 그리고 논의해 달라는 것조차 공감을 얻지 못하는 통합진보당 안에서 나는 명예를 버리는 걸 감수했다."

-정치인으로서의 명예를 버린다, 생각했던 일인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겠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노래(님을 위한 행진곡) 가사지 누가 명예를 버리겠나. 숱한 비난 받을 거 다 알았다."

-이 대표는 진보정당에 있는 몇 안 되는 대중정치인이었다. 그런 이 대표에게 명예를 버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나?

"이 순간을 위해 나의 미래를 버리는 것이다. 내 미래를 버리는 건 별로 안타까운 게 아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 그런데, 아쉬운 건 그거다.(울음) 이 상황을 극복하고 일어서야 하는데, 그리고 성장해야 하는데, 내가 진보진영이 다시 성장하는 과정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 자격조차 완전히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비난받는 건 중요하지 않았는데 그게 고통스러웠다. 관악을 사퇴할 때는 내가 결단하면 당은 극복할 수 있었으니 많이 울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정말 고통스럽다."

-정치를 하면서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인가?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다. 심지어 나도 '이제 당신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며 운영위 전자회의에 대해 입증하라고 해봤다. 100% 당신이 한 것이라고 입증할 증거가 있냐고.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 의심이 지금 당을 완전히 감싸고 있다. 총선이 끝난 지 한달 만에. 그게 정말 고통스럽다. 내가 만들어온 이 당의 힘은 신뢰인데, 지금은 그 신뢰가 깨졌다. 그렇게 만든 게 나다. 작은 실수가 얼마나 큰 후과를 불러올지 모르고 실수했고, 무원칙하게 분쟁을 질질 끌고 확대시키고. 이런 부족함을 갖고 어떻게 무엇을 책임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나 자책이 많다. 힘드냐고 묻는다면 지금이 가장 힘들다."

최성진 이정애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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