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재난·통상 '한우물 공무원' 키우겠다더니

최희석 입력 2016. 10. 2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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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 불이익 없어야 전문분야에 힘 쏟아" 인사처 적극 요구부처영향력 약해질까 행자부 난색 표명..인사개혁 지지부진

행자부, 승진정원 권한 지키려 몽니…전문직 공무원제 좌초 위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 맹활약한 웬디 커틀러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1988년 공직 생활을 시작한 이래 28년간 통상 업무만 맡았다. 특히 한국·일본과의 통상 업무를 20년 이상 맡은 통상 전문가였다. 그는 한국 협상 파트너들의 과거 발언과 습성까지 줄줄 꿰고 있었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통상 경험도 짧은 한국 측 협상 파트너들을 협상의 고비마다 궁지에 몰아넣곤 했다.

인사혁신처는 지난 9월 20일 한국에서도 커틀러 전 부대표처럼 평생 '한 우물'만 파는 '전문직공무원'을 양성하겠다고 나섰으나 한 달도 안돼 흐지부지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당초 인사혁신처는 3~5급 허리 직급에 통상교섭, 안전, 인사조직 등에 정통한 전문가를 양성하겠고 발표했으나 행정자치부와의 갈등으로 좌초 위기에 빠져 있다.

현재 양측은 전문직공무원의 경우 계급별 정원을 정하지 않고 부처별 정원만 정해 관리하는 '통합정원관리 제도' 도입 여부를 놓고 첨예하게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인사처는 통합정원관리가 도입되어야 평생 한 우물만 판 전문직공무원들이 승진에서 밀리지 않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계급별 정원을 정하면 승진이 어렵게 돼 전문직을 지원하는 공무원이 극소수에 그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한다.

인사처 관계자는 "전문직공무원은 수석전문관과 전문관 두 직급으로 나눌 계획"이라며 "수석전문관 20명, 전문관 40명과 같이 계급별 정원이 결정되면 수석전문관 중에 결원이 생길 때만 전문관이 승진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오랫동안 한 우물만 파는 전문관들은 여러 보직을 옮겨 다니는 일반직 공무원보다 승진에서 밀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행자부는 통합정원관리에 난색을 표한다. 행자부는 공무원들의 계급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행자부 관계자는 "전문관들 대부분이 경력이 쌓이면서 수석전문관으로 승진하고 결국엔 대다수가 수석전문관이 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무원의 계급 인플레를 막고 더 나아가 공무원 인건비 상승을 막는 것도 행자부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행자부 관계자는 "관계법령을 면밀히 따져봐야 하지만 높은 계급의 정원이 더 적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해 통합정원관리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인사처는 "공무원 인건비는 총액 수준에서 통제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 현재도 부처 단위로 인건비 총액을 편성해 관리하는 총액인건비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사처 관계자는 "심지어 전문직공무원에게 제공될 전문직 수당조차도 총액인건비 내에서 관리되는 형태로 설계 중"이라며 "전문직공무원이 더 쉽게 승진한다고 해서 인건비 총액이 더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행자부가 '자기 밥그릇 지키기'를 위해 통합정원관리를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있다. 계급별 공무원 정원을 정하는 행자부의 핵심 권한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자부는 이른바 '조직권'을 통해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 정수, 계급별 정원, 실·국·과의 수까지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자칫 전문직공무원의 계급별 정원을 각 부처에 맡길 경우, 조직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의 한 관계자는 "통합정원관리가 도입되고 행자부가 승진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전문직공무원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행자부의 권한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인사처가 전문직공무원제를 도입하려는 것은 순환보직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박근혜 대통령도 세월호 사고 이후 대국민담화를 통해 "순환보직제를 개선해서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행정학자 출신 유민봉 의원(새누리당)은 지난 13일 국정감사에서 "어렵고 전문성 있는 일을 하는 공무원에게 보수를 더 주는 인센티브 구조가 없다"고 지적하며 "전문직공무원제를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말했다.

[최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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