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IB가 먼저 홍기택 사퇴 요구" 정부, 진상 숨긴채 딴청 부렸다

이진석 기자 2016. 7. 15.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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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한국인 후임 가능성 희박한데 될 것처럼 계속 호도] AIIB에 휴직 카드로 시간 벌며 비밀리에 파문 무마 작업 홍기택 AIIB 부총재 후임 자리도 국장 자리도 거절 당했지만 유일호 "완전히 떠난 건 아니다" 홍기택 사퇴 요구한 AIIB, 대우조선·돌출 발언 문제 삼아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가 돌연 휴직계를 낸 것은 AIIB 측의 사임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정부는 홍 부총재로부터 AIIB의 사임 압박 상황을 보고받고 '휴직' 카드로 시간을 벌면서 사태를 무마하려고 했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AIIB는 중국이 주도하는 첫 국제금융 기구로 우리나라는 37억달러(약 4조3400억원·5년 분납)의 분담금(지분율 5위)을 내기로 하고 부총재 5명 가운데 한 자리를 확보했었다.

14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홍 부총재는 지난달 22일쯤 AIIB 측으로부터 "일주일 내에 사임 등 거취를 정하라"는 요구를 받고 이를 기획재정부에 알렸고, 이 내용은 청와대에도 보고가 됐다. AIIB 측은 산업은행 회장을 지낸 홍 부총재가 대우조선 감독 부실 책임에 휘말린 데다 지난달 초 국내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해서 논란을 키운 것 등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기재부 등은 AIIB 측에 '휴직 카드'로 절충을 시도했고, 홍 부총재는 6개월짜리 휴직계를 냈다. 정부는 이 모든 경과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29일 국회 답변에서 "(홍 부총재가) 일신상의 이유로 휴직 의사를 AIIB 이사회에 구두로 보고해 받아들여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홍 부총재가 사실상 퇴출되고 후임도 한국인이 될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한국 몫의 부총재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상황을 호도해 왔다. AIIB 주도국인 중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차선책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부가 진상을 은폐하며 국민을 속였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유일호 부총리는 지난달 25일 베이징에서 열린 AIIB의 첫 연차총회에 참석, 진리췬 AIIB 총재와 가진 면담에서 홍 부총재 거취 문제를 논의했지만 이 역시 비밀에 부쳐졌다. 당시 기재부는 면담 관련 보도 자료를 통해 AIIB가 2017년 연차총회를 제주도에서 열기로 했다는 내용만 부각시켰다.

홍 부총재가 6개월간의 휴직에 들어간 지난달 27일에도 우리 정부는 함구로 일관했다. 휴직 사실은 하루 뒤 AIIB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면서 처음 국내에 알려졌다. 정부는 6월 말과 7월 초 AIIB와 몇 차례 협의를 진행하면서 홍 부총재 후임을 한국 몫으로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AIIB는 지난 8일 홈페이지를 통해 홍 부총재가 맡고 있는 투자위험관리책임자(CRO)를 국장급으로 강등해 새로 공모하고, 국장급인 재무관리책임자(CFO)를 부총재로 격상시킨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그런데 CFO 자리는 프랑스 출신 티에리 드 롱게마르가 이미 내정돼 있었다. 정부는 이런 사실을 최소한 2~3일 전에 알고 있었다. 당시 기재부는 루키 에코 우랸토 AIIB 행정 담당 부총재 등과 콘퍼런스콜(다자간 전화 회의)을 여러 차례 진행하면서 향후 인사 방향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았기 때문이다. AIIB와의 협의 과정에서 정부는 신설될 CFO 부총재 밑의 핵심 보직인 재정국장 자리라도 한국에 달라고 요청했지만 AIIB 측은 "국장급은 능력 위주(merit-based)로 뽑겠다"며 사실상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이었는데도 정부 인사들은 공개 석상에서는 계속 딴전을 부렸다. 유일호 부총리는 지난 11일 국회에서 "AIIB 부총재직은 대한민국의 손을 떠난 것이냐"는 야당의 질의에 대해 "솔직히 아직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고 좀 노력할 것은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홍 부총재는 휴직 후 복귀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귀한다 해도 2019년 2월까지 남은 임기 동안 무임소 부총재로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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