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FOCUS] 스위스는 거절한 무상복지, 여의도선 법안 쏟아지네요

김강래,정석환 2016. 6. 1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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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금 폐지·진료비 무료·통행료 공짜..표의 유혹에 빠지다
스위스 국민이 최근 '노(No)'를 외친 무상복지 바람이 한국의 여의도에 불고 있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1년6개월 앞두고 정치권과 선심성 정책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유착'이 20대 국회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매일경제신문이 지난달 30일 국회 임기 시작 후 발의된 법안을 분석한 결과 '무상 시리즈' 법안이 대거 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법안이 정작 국회 문턱을 넘을 경우 필요한 수조 원대 예산에 대한 재원 마련 방안은 불투명하다. 더구나 이들 법안에는 중산·고소득층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법안도 포함돼 있어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10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무상복지 공약이 쏟아지는 이유는 결국 표 때문"이라며 "인기를 얻는 가장 쉬운 방식"이라고 말했다. 권 원장은 "무상복지 공약만 남발하면 결국 그리스, 아르헨티나처럼 될 수밖에 없다"며 "최근 스위스 사례처럼 실현 불가능한 공약에 대해서는 아무리 그럴듯 해보여도 국민이 반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학생 이하 입원진료비 무료' '고교 무상교육 실시' '취준생에게 월 40만원 지급' '대학 입학금 폐지' '명절에 고속도로 공짜'.

20대 국회가 임기 시작 2주 만에 쏟아낸 선심성 법안들이다. 유권자의 환심을 얻기 위한 '무상 시리즈'다. 어린이, 고등학생, 취준생, 대학생 이상까지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법안들이 고루 등장했다.

무상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주로 국가의 부담을 전제로 하는 정책들이 많다. 문제는 국가 곳간에도 '한도'가 있다. 2016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우리나라 2016년 국가채무 예상치는 645조2000억원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사상 처음 40%를 넘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고교 무상교육을 전면 실시하도록 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고교 무상교육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도 추진했으나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실현하지 못했다. 고교 무상교육을 전면 실시하면 연간 2조3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뚜렷한 재원 마련 방안은 없다. 야권 관계자들에게 재원 마련 방안을 물어보면 "법인세를 인상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원론적인 답변만 되돌아온다. 김 의원은 현재 내국세 수입의 20.27%로 재한돼 있는 교육재정을 25%로 확대하면 고교 무상교육을 포함한 무상보육·교육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무상복지의 또 다른 문제는 중·고소득층에도 똑같은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이다. 한양대 교육복지정책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교생 중 60.7%가 이미 고교 학비를 지원받고 있다. 저소득층·한부모·농어업인 자녀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면 나머지 40%인 중·고소득층이 혜택을 받게 되는 셈이다.

노웅래 더민주 의원은 대학 입학금을 폐지하자며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지난 8일 국회에 제출했다. 노 의원 측은 "수업료(등록금) 대비 입학금 비율이 우리나라가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입학금의 사용처도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 법안을 들여다보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입학금 징수 제한에 따른 학교의 손실을 보전할 수 있다'는 규정이 담겨 있다. 2014년 유기홍 전 더민주 의원이 발의한 같은 법안에 대해 소관 상임위 검토 보고서는 "2013년 입학금 규모 5091억원을 기준으로 3년간 입학금 보전금액을 산출할 경우 최대 1조5000억여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등록금 대비 입학금 비율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교육재정경제연구에 실린 '우리나라 대학 입학금 규제의 타당성 분석 연구'에 따르면 2013년 한국 국공립 학부·대학원의 등록금 대비 입학금 비율은 0.9%, 사립대학은 3.6%다. 중국은 베이징대가 1.5%, 일본은 교토·오사카 등 대학이 52.6%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만 16세 미만 아동이 입원하여 진료를 받는 경우 그 비용을 전부 국가(건강보험공단)가 부담한다"고 명시했다. 건강보험이 17조원에 달하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니 이 재원을 활용해 아동 복지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2014년 기준 입원 병원비는 총 1조7000억원이고, 환자 본인부담금은 5215억원이다. 그러나 최근 정진엽 복지부 장관은 "2025년이면 보험 재정이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14년 발표한 '건강보험 중장기 재정추계 모형연구' 보고서는 "그동안 건강보험 재정은 당기 재정수지 흑자가 커졌을 때 보장성을 확대하거나 수가를 인상함으로써 이후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 추세로도 2020년이면 건강보험에 국고보조금 11조9000억원, 2030년에는 23조5000억원이 투입돼야 한다.

이찬열 더민주 의원이 발의한 '유료도로법 개정안'은 19대 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법안이다. 설·추석 등 명절에 고속도로 통행비를 면제하는 것이 골자다. 2013년 같은 내용을 담은 최민희 전 더민주 의원의 법안에 대해 소관 상임위 검토 보고서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할 경우 인근 국도 등에서 고속도로로 자동차가 유입되어 고속도로 혼잡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26조원 이상의 적자를 안고 있는 한국도로공사에도 상당한 재정 타격이 간다고 한다. 하루 이자만 31억원이 넘는 도로공사 수입은 '유료도로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5년간 총 641억원, 연평균 128억원 감소할 전망(국회예산정책처 비용 추계)이다. 도로공사는 피해액에 대해 국가로부터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이 의원 측은 "며칠 통행료 면제 때문에 재정이 악화된다고 반대하는 것은 도로공사의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아예 돈을 주는 법안도 국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조정식 더민주 의원이 발의한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개정안'은 저소득층 취준생 9만5000명에게 매월 1인당 40만원의 구직촉진수당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0년 무상급식·2012년 기초연금…선거에서 이기게 할 순 있어도 선거 뒤에 성공한 경우는 없다

국내에서 선거철마다 '무상복지 바람'이 부는 이유는 결국 선거에서 승리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승리를 가져다준 '무상복지 공약'으로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내건 노령층(65세 이상) 기초연금 인상 공약과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전국에 불어닥친 '무상급식 열풍' 등이 꼽힌다.

문제는 천문학적으로 치솟는 비용에 따른 국민 부담 증가와 현실적인 재원 마련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2012년 당시 새누리당은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매달 20만원 지급'을 골자로 하는 기초연금 공약을 내걸었고, 전통적 지지층인 노년층 표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공약은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실현 방안을 모색할 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할 경우 2014년부터 2017년까지 60조3000억원이 필요하고, 2060년이 되면 한 해에만 387조4000억원이 소요된다는 재정 추계 결과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엄청난 비판을 감수하며 '소득 하위 70% 노인들에게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해 10만~20만원을 지급한다'는 방향으로 기초연금 설계를 수정했다. 이 과정에서 '원조 친박'인 진영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부와 갈등을 빚다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민주당을 필두로 한 야권은 '무상급식'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저소득층, 농어촌 학생을 위주로 2012년까지 197만명에게 무상급식을 펼친다'는 공약을 제시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에 맞서 야권은 '2011년부터 초·중·고 모든 학생에게 친환경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덕분에 민주당은 전국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광역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 2010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불어닥친 '무상급식 열풍'은 2011년까지 이어졌고,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주민투표를 진행했지만 투표율 미달로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여소야대 정국을 맞이한 20대 국회에서도 '무상복지 공약'은 넘쳐날 전망이다. 특히 2017년 대선이 열리는 만큼 정치권에서 각종 '무상공약'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10일 매일경제와 통화하면서 "영국처럼 잘사는 나라도 1945년 노동당이 '요람에서 무덤까지'와 같은 공약으로 집권하자 보수당에서도 '무상복지' 공약으로 경쟁하면서 영국 경제가 20~30년 동안 헤매고 주저앉았다"며 "선거에서 이기게 해주는 무상복지 공약은 있어도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무상복지 공약은 없다"고 강조했다.

20대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한 더민주는 '2018년까지 소득 하위 70% 노인들에게 기초연금 30만원을 차등 없이 지급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더민주에서 기초연금 공약을 대선까지 끌고 간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기초연금 공약 현실성을 둘러싼 논란은 되풀이될 전망이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각종 '무상복지 정책'이 넘쳐나는 점도 국가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는 '무상 3대 복지(청년배당·무상산후조리원·무상교복)' 추진에 그치지 않고 무상생리대까지 추진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주도로 진행 중인 '서울시 청년수당 정책'은 보건복지부와 갈등 끝에 협의 중이다.

일각에서는 복지 정책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GDP 대비 복지비용 지출이 높은 수준이 아닌 것도 분명한 사실(OECD 평균 21.6%·한국 10.4%, 2014년 기준)인 만큼 무상복지와 선별적 복지 논쟁에 매몰되지 않고 복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최운열 더민주 정책위 부의장은 매일경제와 통화하면서 "복지 분야는 아직 우리가 안 가본 길이다. 경험이 없기에 '보편적 복지' 주장이 부담되는 것 같지만 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복지 수준이 낮다"며 "우리 국격에 걸맞은 복지 수준으로 가야 한다. 선별형 복지, 무상복지, 보편적 복지를 구분하지 말고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합리적 기준을 마련해 복지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강래 기자 /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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