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김정은 정권, 충성파 200명으로 유지.. 獨裁 흔들 요인은 돈과 건강"

뉴욕/김덕한 특파원 2016. 5.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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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핸드북' 쓴 美 뉴욕대 앨러스테어 스미스 교수

지난 8일 북한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결산) 보고를 하는 김정은 제1비서의 목소리는 떨리고 탁했다. 정보기관 당국자는 건강에 이상이 있는 징후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것을 확신할 수는 없다. 북한 '최고 존엄'의 건강 상태는 극비 사안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안정성이 어느 정도인지도 역시 늘 베일에 가려 있다. 북한 정권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정상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도 한두 가지 벌어지는 게 아니다. 2011년 전제왕정이 아닌 나라에서 스물여덟 나이에 3대 세습으로 권좌를 넘겨받은 김정은은 고모부(장성택 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를 비롯한 측근 실력자들을 느닷없이 연이어 처형했다. 생활고를 못 이긴 탈북자가 줄을 잇고 있는데도 핵무기·미사일 시험을 강행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를 자초하고 있다.

미국 뉴욕대에서 최근 각광 받는 교수 중 한 명인 앨러스테어 스미스(Alastair Smith·50) 교수를 만난 것은 그 때문이다. 스미스 교수는 지난 2012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 '독재자의 핸드북(Dictator's Handbook)' 저자다. 통치의 본질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법칙, 권력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논리를 날카롭게 분석해 화제를 모았다. 로마의 카이사르, 태양왕 루이 14세 등 절대권력자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짐바브웨의 무가베, 김정은 등 당대의 독재자, 부시와 오바마 등 민주정부 지도자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권력의 속성을 파헤치고 권좌를 지키기 위한 생존 법칙을 분석했다. 그는 지금의 김정은 정권을 어떻게 보며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을까. 조선노동당 제7차 당대회가 열리기 직전인 지난 4월 말 뉴욕 맨해튼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측근 200명으로 유지되는 北 정권

―여러 독재 정권을 연구했는데 북한 김정은 정권의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인가.

"권력 유지를 위해 지지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민주 국가 정치지도자나 북한 독재 정권 지도자는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지지자 수에서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은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수천만 명의 지지가 필요한 반면 북한은 측근들(insider) 약 200명의 충성심만 확보하면 된다. 김정은은 극소수인 측근들에게 권력과 부(富)를 제공해 충성심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 측근들을 언제든지 외부 신진세력으로 교체할 수 있을 정도로, 대기하고 있는 충성세력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현재의 측근들이 숙청당하지 않기 위해 과도한 충성심을 발휘하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독재자 김정은에겐 매우 이상적인 통치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고모부인 장성택을 비롯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등 최측근 인사들조차 계속 숙청하고 있는데 21세기에 그런 숙청이 계속 자행된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것 아닌가.

"독재자는 집권 초기에는 권력 유지를 위해 과거 정권 인물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장성택은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현금 흐름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권 초기 권력 유지에서 장성택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장성택이 독립적인 권력과 영향력을 가지려 했다는 것은 아무리 고모부이지만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정은은 독재 권력을 유지하는 법을 잘 알고 있는 셈이다. 집권 1~2년 후 정권이 안정되면 과거 인물에 대한 숙청이 이뤄지는데 김정은은 집권 4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지속적으로 숙청을 자행하고 있다. 다소 비정상적인 건 맞다."

―그런 숙청 때문에 이너서클이 불안해지면 정권도 불안해지는 것 아닌가.

"김정은의 잔혹한 숙청은 절대적 충성심을 가진 인물만 측근으로 둘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다. 측근의 수가 적고 이들을 충원할 수 있는 외부 세력이 많기 때문에 가능하다. 김정은으로서는 소수 측근에게 배분해야 할 권력과 부를 일반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건 자신의 권력 유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측근들의 반란 위험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주민의 복지 증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건 김일성·김정일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북한 독재 정권의 속성이다.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주민 수백만명이 굶어 죽어도 군부와 소수 측근은 아주 잘 보호받았다. 소수 측근의 충성심만 유지시키면 정권의 안정성은 높아진다는 걸 북한 정권은 잘 알고 있다."

―과거 왕조시대에도 기근이 들고 폭정에 시달리면 민란과 같은 봉기가 발생했는데.

"북한에서 일반 대중 봉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일반 주민에 대한 통제 및 감시 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 주민들의 사소한 동정까지 파악이 가능하다. 과거 조선시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측근들의 불만, 알력 등으로 김정은을 암살하는 사건, 즉 '북한판 10·26'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나.

"북한 시스템상 우발적인 암살이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거사를 일으키는 경우를 상정할 수는 있겠지만, 측근들 입장에서는 거사 후 새로운 지도자가 자신들에게 지금과 같은 측근의 지위를 계속 유지시켜 줄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 또 김정은 교체 시도가 실패하면 자신들은 무자비하게 처형될 것이고, 성공한다 하더라도 새로 옹립한 지도자가 자신들을 숙청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게 될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김정은 암살 시도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다."

"김정은 암살 가능성 매우 낮아"

―그렇다면 내부 분열에 의한 북한 정권 붕괴 혹은 교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얘긴가.

"북한에 쿠데타나 암살 등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는 김정은이 측근들에게 경제적 보상을 해 주지 못하는 상황뿐이다."

―김정은 정권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만큼 안정돼 있다는 말인가.

"독재자가 5년 이상 집권에 성공하는 경우,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권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돼 간 것이 일반적이다. 김정은 정권은 현재 권력 유지 측면에서는 안정적이다. 이것이 흔들릴 수 있는 요인은 두 가지다. 앞서 말했듯 건강과 돈이다. 김정은의 건강에 이상이 없고 중국과 활발한 교역을 지속해 측근들에게 보상할 수 있는 돈이 계속 공급된다면 향후 10년 내에 김정은 정권에 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지금 북핵·미사일 시험과 관련, 국제사회가 대북(對北) 제재를 하고 있는 것은 김정은 정권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보는가.

"독재자에게 제재(sanction)는 득과 실 양면이 있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에 대한 제재는 후세인 권력을 안정화시키는 데 되레 도움을 줬다. 제재 때문에 무역과 국경이 통제됐지만 뒷문이 열려 후세인은 측근들이 밀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도록 경제적 보상을 함으로써 충성심을 강화시켰다. 권력이 더 견고해진 것이다. 측근들에 대한 경제적인 보상이 어려워지는 게 독재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다. 대북제재가 북한의 현금 수입을 절대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도록 실질적 관리가 된다면 그것은 김정은에게 타격이 된다.

김정은 권력 유지의 근간은 무자비한 측근 갱집단(ruthless thug)이다. 이 측근들에게 지속적으로 경제적인 보상을 해줌으로써 권력이 유지되는 것인데 중국과의 교역 제한은 김정은에게 필요한 현금 흐름을 제한해 상당한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다. 제재가 효과적으로 유지되려면 북한 교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 집권층이, 지속적인 대북 제재가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통일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독재자에게 핵심은 '돈'과 '건강'"이라고 다시 말했다. 이 둘 중에 하나라도 이상이 생길 때 북한 정권에 충격이 올 수 있고 변화 가능성도 커진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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