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개성공단 주재원 "한 회사 20명 한꺼번에 실직"..폐쇄 2주 "생계 막막"

김보미 기자 2016. 2. 2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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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개성공단이 폐쇄된지 2주가 지났다. 정부는 피해 최소화를 약속했지만 하루아침에 공장이 사라진 입주기업들은 일거리를 잃었고, 그 사이 개성을 터전으로 일해왔던 직원들은 실업자가 됐다. 이들은 공단 직원들을 위한 정부 대책이 전무하다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공식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23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직원 40여명이 모여 어려움을 토로했다.

개성에 주재하며 공장의 의류생산을 관리했던 ㄱ씨(50)는 공단 폐쇄 이틀 뒤인 12일 사직서를 냈다. 다른 주재원 7명을 포함해 남측 사무실에서 일하던 직원 12명도 마찬가지다. 한 회사에서 일하던 20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었다. “생산공장, 창고, 물류까지 다 개성에 있어요. 완제품도 못가져 나온게 수십억원 어치인데 사업을 계속 할 수 있겠습니까. 회사가 없어졌는데 사장도 퇴직시키는 것 말곤 답이 없잖아요.”

개성 근무 조건으로 입사한 뒤 열흘 일하고 이틀 남측으로 나와 가족을 만나는 생활을 한 지도 5년이 넘었다. ㄴ씨는 “국내에 일자리가 있었으면 개성에 들어갔겠느냐”며 “당장 4대보험이 없어졌고, 가족들의 생계도 막막하다”고 했다.

6년째 개성에서 일했던 ㄷ씨(46) 역시 회사에서 이달 말일자로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혼자 10개 생산라인을 맡아 북측 노동자들에게 바느질을 알려주며 일했다”며 “회사에서 정부가 주는 휴직수당이라도 받는게 낫지 않겠냐고 해서 지난주까지 본사로 출근하다가 그러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관계자들이 23일 서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한반도 평화실현과 개성공단중단 조치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개성 내에서 북측 노동자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공장을 관리했던 남측 주재원들은 849명이다. 1~2주에 한번씩 집으로 퇴근하던 이들에겐 개성이 주 일터였지만 옷과 생활용품, 현지에서 쓰려고 바꿔둔 달러도 숙소에 고스란히 남겨둔 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이들 대부분은 개성에서 근무하는 조건으로 채용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단이 없어져 가뜩이나 사정이 어려운 입주기업들이 이들에 대한 고용을 유지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주재원들이 가장 많은 곳은 입주사의 60%를 차지하는 봉제공장이다. 봉제 생산업이 거의 사라진 국내에서 직원들은 재취업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공단 내 한 업체에서 다른 업체로 이직하는 식으로 일자리를 찾아 가족들과 떨어진 개성 생활을 감수해야만 했던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의류공장의 품질 관리를 맡았던 ㄹ씨(55)는 주재원 15명 중 혼자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7년 이상 오래 일했던 다른 근로자와 달리 경력이 1년 반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주중에 아이도 떼놓고 개성에 들어가 일했는데 현지에서 일했던 직원들에 대한 대책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아 억울하다”며 “당장 월급이 끊기는 노동자 생계에 대한 고민도 없이 정부가 공단 폐쇄를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 입주사들을 상대로 세탁영업을 했던 ㅁ씨는 “정부가 기업들을 지원해 직원에 대한 보상을 한다지만 2013년 폐쇄 때도 지원은 없었다. 주재원 80%는 실업자가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개성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이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정부에 공식적으로 대책마련을 요구하기로 했다. 한 개성주재 직원은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남쪽 본사의 파견직으로 돼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개성 근무자로 돼있어 보상이 안된다는 이야기도 있더라”며 “정부의 잘못으로 일자리를 잃었으니 대책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대위 공동대표를 맡은 신윤순씨는 “주재원 대부분이 회사 완제품 등을 챙기느라 개성 내 자신들의 물건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는데 정부는 이에 대한 보전책은 물론 한순간 일자리 잃어버린 보상에 대한 언급도 없다”고 밝혔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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