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균형재정 사실상 포기..증세론 수면 위로

이천종 2015. 9. 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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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등 켜진 나라 살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8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진리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초대 총재 지명자를 만나 만찬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확정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경기부양과 재정건전성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정책 당국자들이 안간힘을 쓴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하지만 현재의 세수여건으로는 각종 공약사업 이행과 경기활성화 조치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다. 결국 박근혜정부 초기 부르짖던 균형재정은 공허한 메아리가 돼버렸다. 전문가들은 국가 채무가 급속히 증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증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현 정부 내 균형재정 물 건너가

내년 예산안을 보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0.1%로 올라간다. 정부가 지난해 예상한 35.7%보다 4.4%포인트 높아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가채무비율을 ‘30%대 중반 수준’에서 관리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당국이 ‘40%대 초반 수준’으로 목표를 낮춘 셈이다. 지난해 ‘슈퍼 예산’과 올 추경으로 돈을 대거 풀었지만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사태와 중국 경기 둔화 등으로 효과를 보지 못해서다.

정부의 재정 상황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내년 37조원 적자(GDP 대비 -2.3%)다. 이런 적자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43조3000억원) 이후 7년 만에 가장 많은 것이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총지출-총수입)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흑자를 뺀 실질적인 재정건전성 지표다. 정부는 2년 전 세운 ‘2013∼201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2017년 관리재정수지를 GDP 대비 -0.4%로 줄여 사실상 균형재정을 이루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계획에선 2017년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1.3%로 수정했고 올해는 -2.0%로 또 후퇴했다.

국민 혈세로 갚아야 하는 중앙정부의 적자성 채무 비중도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올 본예산 대비 34조원 안팎으로 추정되던 중앙정부의 적자채무 증가액은 내년 예산에서는 4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빚 고삐 풀리나

정부는 재정건전성 악화와 국가부채 급증 부담을 안고서라도 재정을 확대해 ‘경제 활성화→세수 증가→재정건전성 개선’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40%를 넘어서긴 했지만 아직 국가채무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치인 114.6%(올해 전망치 기준)와 비교하면 크게 걱정할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방문규 기재부 2차관은 “전 세계가 확장 재정으로 자국 경기를 지탱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재정건전성을 고려해 적자를 내지 않겠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 “재정건전성 측면에서는 (한국이) 세계 1위라는 것을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인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론도 적잖다. OECD 최하 수준의 조세수입 탄성치를 보면 우리 경제가 성장해도 세금이 잘 걷히지 않고 있는 현실을 정부가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5∼201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5년간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을 2.6%로 잡았다. 같은 기간 총수입 증가율(4.0%)보다 1.4%포인트 낮다. 지난해 세운 2014∼2018년 계획 때는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4.5%)과 총수입 증가율(5.1%)의 차이가 0.6%포인트였는데, 격차를 더 크게 뒀다.

정부는 국가부채, 재정적자 한도를 법으로 정해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재정준칙을 도입하겠다는 방침도 강조했다. 정부는 특히 돈 쓸 일(의무지출)을 계획할 때 재원조달 방안도 함께 마련하도록 하는 ‘페이고(pay-go)’ 제도의 법제화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정부 입법뿐 아니라 의원 입법에도 페이고 원칙을 적용해야 하지만 여야 이견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페이고 제도의 조속한 법제화를 국회에 강력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재정 구조개혁을 단행해 내년 중 2조원을 절감할 계획이다.

◆증세론 다시 수면 위로

국가부채의 증가 속도를 우려한 증세론이 커지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논평에서 “매년 경제활력을 위해 큰 폭의 적자재정을 편성했지만, 세입이 확충되지 않아 재정적자 폭만 증폭되고 있다”며 “법인세 인상 등 증세를 통해 국가부채를 줄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도 논평에서 “차일피일 미루던 균형재정 달성시점은 어느새 없던 얘기가 됐다”면서 “경기회복 못지않게 재정건전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증세를 주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천 정책위의장은 “법인세 증세로 재정 규모를 늘리고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히 하며 사회 서비스 분야를 강화하는 방안으로 나라 살림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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