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이후'에서 배울 것은?

2014. 8. 2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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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1912년 4월15일,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발해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호화 유람선 타이타닉호가 북대서양의 얼음 바다 위에서 빙산과 충돌했다. 1등석의 부자 승객부터, 성공을 향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대서양을 건너던 3등석 승객 그리고 선원까지, 2224명이 타고 있던 타이타닉호에서 생명을 건진 이들은 710명에 불과했다. 생존율은 32%였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외치면서 시작된 미국과 영국 의회의 1차 진상조사는 같은 해 7월3일 끝났다. 조사 결과 빙산 경고를 무시한 선원과 자리를 비운 채 잠자던 선장의 근무태만, 그리고 태부족한 구명보트보다 미 국민들이 분노한 것은 1등석과 3등석 승객의 생존율 차이였다. 1등석 여성과 1·2등석 어린이들 생존율은 97%였다. 3등석 여성과 어린이들의 생존율은 46%와 34%였다. 남성은 1등석 승객의 경우 33%밖에 살지 못했지만, 3등석에선 불과 16%만 살아남았다. '유전생존, 무전사망'이었다. 미국 사회는 '타이타닉 이전'과 다른 이후를 요구했다.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치열한 정치적 논의 끝에 이듬해 누진소득세가 처음 미국에 도입됐다. 그렇게 '타이타닉 이후'의 미국은 달라졌다.

102년 하루가 지난 뒤,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전복됐다. 476명 승객 중 172명만이 구조됐다. 생존율은 36%였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외치며 시작된 우리 국회의 세월호 1차 진상조사(세월호 국조특위 정부 기관보고)는 7월11일 끝났다.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 구조 인원조차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우리 정부와 청와대의 부실한 대응 능력이 그대로 드러났다.

7월2일 해양경찰청 기관보고에서 공개된 사고 당일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해양경찰 사이의 유선전화 녹취록을 보면 생존자 집계가 370명부터 166명까지 계속 오락가락했다. 청와대가 당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21차례 했다던 유선·서면 보고 역시 매시간 내용이 뒤죽박죽이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사고 발생 뒤 '7시간' 동안 21번에 걸쳐 자꾸 바뀌는 부실 보고를 전화와 서면으로 받으면서, 왜 김기춘 비서실장이나 김관진 안보실장을 직접 불러서 따져 묻지 않았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여당과 청와대는 그런 실상이 세월호 특별법에 의한 진상조사를 통해 날것 그대로 드러나는 걸 막고 싶을 것이다. 7·30 재보궐 선거 이후 여당이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 보인 태도를 보면 그것이 얼마나 절박한지 알 수 있다. '보궐승리 안면몰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19일 담화에서 '국가 개조'란 표현까지 썼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대한민국의 정부기구이고,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정부 수반이다.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이 달라지기 위해선 과연 무엇이 잘못됐는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그 당시의 모든 상황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청와대와 박 대통령도 예외일 수는 없다.

물론, 유족들과 국민들이 세월호 특별법을 바라는 바가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정부의 잘못을 드러내자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을 리는 없다. 그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세월호 특별법이 '달라진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월호 특별법 정국을 지켜보는 유족과 국민들은 '과연 대한민국은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절망감에 빠져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유민 아빠를 만나는 것이 유족과 국민들이 절망감에서 벗어나 믿음을 회복하는 첫 시작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도 '세월호 이후'가 달라질 것이라는.

이태희 정치부 정치팀장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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