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방패 삼은 국정원, '불법' 시인한 셈

2015. 7. 2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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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국정원 해킹] 북한 대상이더라도 대통령 서면 승인 필요, 한국 국적인과의 통신일 경우 법원 허가도 받아야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해킹업체 '해킹팀'으로부터 구입했다고 시인한 '원격 제어 시스템'(RCS·Remote Control System)은 국내에서 무단으로 활용하면 불법이다. 지난 7월6일 유출된 해킹팀 내부 전자우편을 보면 RCS는 문서 파일이나 인터넷 주소(URL)에 악성코드를 심어 특정 인물의 데스크톱, 노트북, 스마트폰 등을 해킹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파일 및 메신저 대화 내용을 들여다보고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이용자 주변을 도촬하거나 특정 파일을 삭제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주장 근거 삼은 조치 들여다보면

통신비밀보호법은 "우편물이나 전기통신에 대하여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전자장치·기계장치 등을 사용하여 통신의 음향·문언·부호·영상을 청취·공독하여 그 내용을 지득 또는 채록"하는 감청(통신제한조치)에 대해 법원의 영장을 통해 허가받도록 정하고 있다. 법원은 '국가보안범죄를 계획 또는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어려운 경우'에 한정해 두 달 동안 감청을 허가할 수 있다. 검사는 법원에 감청 기간을 추가로 두 달까지 연장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제5·6조).

이병호 국정원장은 지난 7월14일 국회 정보위원회 답변을 통해 "2012년 1월과 7월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각각 10명씩 20명분의 프로그램을 구입했고 모두 북한 공작원을 상대로 쓰거나 연구·개발용으로 썼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또 "북한 공작원을 대상으로 활용한 이상 불법이 아니다"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아이디( devilangel1004@gmail.com) 소유자는 해킹팀 직원들과 전자우편을 통해, 2013년 10월 '서울대 공과대학 동창회 명부'나 '천안함 문의'와 같은 제목으로 생성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파일에 악성코드를 심어달라고 요청했다. 또 지난 3~4월 국내 분식집이나 벚꽃 축제 등을 소개하는 블로그 인터넷 주소 등에도 같은 내용을 요청했다. 국정원은 이에 대해 국내에서 암약하는 '남파 간첩'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국내외 민간인을 사찰 대상으로 삼았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는 대목이다.

국정원이 북한 공작원을 대상으로 한 감청이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통신비밀보호법의 '국가안보를 위한 통신제한조치'(제7조)다. 이 조항은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상당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에 한하여 대한민국에 적대하는 국가, 반국가활동의 혐의가 있는 외국의 기관·단체와 외국인 등의 통신에 대해서는 서면으로 대통령 승인을 얻으면 4개월 동안 감청을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4개월 연장 가능). 단, 이 경우에도 통신의 상대방이 내국인인 경우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정하고 있다.

"감청 설비 도입 때는 국회에 통보해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문병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7월15일 보도자료를 통해 "RCS를 대북 및 해외 정보 수집 용도로만 썼다는 국정원의 주장이 100% 사실이라도 이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며 "북한을 대상으로만 RCS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개별 건마다 대통령의 승인을 서면으로 받아야 하고 대통령 승인을 받았더라도 감청 대상자가 한국 국적의 내국인과 통신할 때에는 추가로 법원의 허가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문 의원은 "통신비밀보호법상 국정원이 감청 설비를 도입할 때에는 국회 정보위원회에 통보해야 하는데, 국정원은 RCS 도입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다. 이 역시 명백한 법률 위반이며 떳떳했다면 국회에 보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을 방패 삼으려 했지만, 결과적으론 국정원 스스로 불법행위를 시인한 셈이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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