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 읽기] 친박의 귀환..코너에 몰리는 김무성
애당초 박근혜 대통령이 최경환 부총리와 황우여 부총리를 비롯한 친박을 대거 내각에 기용할 때는 나름 생각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김무성-유승민 투톱체제였던 새누리당을 그다지 미더워하지 않았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당시의 새누리당이 자신의 의중과 뜻을 잘 뒷받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래서 친박 핵심을 내각에 포진시켜 내각을 통해 자신의 정책을 추진하려 했던 것 같다.
이런 전략은 일정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여당은 대통령과 시민사회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당 대신 내각을 통해 정치를 한다는 것은, 이런 완충 역할을 해주는 존재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범퍼 없는 자동차를 몰고 가는 형국이다. 때문에 이런 선택은 정말 고육지책이다. 당연히 박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는 분명 이런 측면에서의 한계를 느꼈을 법하다.
그래서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나름의 노력을 했고, 그 노력의 결과가 바로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원내대표 자리에서 내려오게 한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그런 노력의 결과일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자리에 원유철 의원이라는 ‘신박(新朴)’이 등장했고,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 원유철 원내대표는 청와대 의중을 충실히 당에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최고위원회 구성도 달라졌다. 새누리당 최고위원들이 선출됐을 때만 하더라도 최고위원회의는 비박이 압도했다. 비박 성향 최고위원이 대거 선출됐고, 친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은 서청원 전 대표와 김을동 최고위원 정도였다.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친박 이정현 의원이 가세했지만, 여전히 친박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중도적 입장을 견지했던 이인제 최고위원이 친박적 성향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김태호 최고위원도 마찬가지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오히려 가장 앞장서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비박을 공격하며 청와대와 친박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최고위원회의에서 비박은, 김무성 대표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형국이 됐다.
이런 변화로 인해 청와대 입장에선, 더 이상 친박을 내각에 포진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제 당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됐으니 보다 확실하게 당을 장악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더구나 앞으로 정리해야 할 상황도 존재한다. 하나는 국정교과서 정국을 돌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천 룰 문제, 즉 오픈 프라이머리나 아니면 여론조사를 통한 공천 문제 그리고 전략 공천 문제를 정리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특히 공천 룰에 관한 문제는 내년 총선에서 친박들이 어느 정도 국회에 진출할 수 있느냐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일 뿐 아니라 차기 대선 후보 경선에서 청와대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때문에 청와대로서는 지금 친박들의 원대 복귀를 명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면 지금 이런 상황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예상해보자.
일단 국정교과서 정국은 여당 입장에선 그리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김무성 대표 입장에서도, 국정교과서 문제가 본의 아니게 자신의 문제처럼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문재인 대표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월 18일 문 대표는 서울 강남에서 열린 ‘엄마들이 뿔났다! 친일 교과서 반대 강남·서초 엄마들과의 대화’ 행사에서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선대가 친일, 독재에 책임이 있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대표는 “그 후예들이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이 이번 교과서 사태의 배경이고 발단”이라 주장했다. 결국 국정교과서 논쟁이 선대 논쟁으로 이어진 형국인데, 이런 접근은 정치공학적으로 잘됐다고 말하기 힘들다.
이유는 이렇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과 독재에 대한 문제는 이미 지난 대선 때 이정희 후보에 의해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이런 접근이 야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하다. 일반 국민 입장에선 또다시 이 문제를 들고나오느냐는 식상함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는 김무성 대표 아버지 행적에 대한 문제 제기다. 문제의 진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전략적 차원에서 보자면 야당은 오히려 전선을 넓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략적으로만 보자면 전선을 확대하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사안의 핵심을 간단명료하게 파고들어 전선은 좁히되 충격은 크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런 전략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김무성 대표로 하여금, 국정교과서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게끔 만들었다.
이렇게 되면 여야 간 타협의 여지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를 본의 아니게 일심동체처럼 움직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략적으로는 둘 사이를 갈라놔야 하는 것임에도 말이다.
이런 상황은 결국 정부 여당과 야당이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국민들은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그뿐 아니라 여야 대치 상황이 길어지면 권역별 비례대표제 문제 같은 사안에 대한 협상의 여지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친박들이 속속 당내에 복귀하고 있는 상황은 여야 간 타협의 여지를 더욱 축소시킬 수 있다. 결국 야당이 여당보다 잃을 게 많게 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친박의 복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또 다른 분야가 새누리당 내의 공천 룰이다. 친박들, 특히 중진급 이상 친박들이 복귀한다는 사실은 당내에서 논의 중인 오픈 프라이머리 실시를 물 건너가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전략공천 지역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일단 오픈 프라이머리를 포기하면 비박계가 상대적 다수인 현 새누리당 의석 분포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한마디로 보다 많은 수의 친박 성향 정치인들이 공천될 수 있다는 말이다. 더구나 대구·경북 지역에 전략공천을 할 경우, 친박의 색채는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김무성 대표의 대권 가도에 많은 장애물이 등장한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장애물은 당내 친박과 비박의 분포가 달라짐에 따라 대선 후보 경선에서 지금보다는 입지가 불리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친박들의 당내 복귀로 인해 친박들 입김이 강해져 김무성 대표가 하고자 하는 일에 제동을 걸 확률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청와대나 친박은 바로 이런 점도 염두에 뒀을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정가에 나돌고 있는 김 대표의 ‘12월 위기설’의 현실화 가능성이다. 만일 김 대표 체제로 내년 총선이 치러지고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김 대표 체제는 더욱 공고화되고 김 대표의 대권 가도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이를 친박과 청와대가 과연 두고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만일 청와대와 친박들이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면 김 대표 체제를 총선 전에 흔들 가능성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도 지금쯤 친박들이 대거 당으로 귀환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어쨌든 김무성 대표의 입장에선 이제 투쟁하는 일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국정교과서 문제로 야당과 싸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고, 동시에 오픈 프라이머리 문제를 비롯한 공천 룰을 둘러싸고 더욱 강해진 친박들과 싸워야 한다. 만일 국정교과서 문제에서 야당에 양보라도 하게 되면 선대의 친일 논란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오픈 프라이머리나 전략공천 문제에 대해 물러서면 본인의 말을 완전히 뒤집는 꼴이 된다. 이렇듯 이 싸움에서 김무성 대표가 밀리기라도 하면 대권 후보로서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된다.
한마디로 김무성 대표 입장에선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됐다. 이런 상황은 미래 리더로서 김무성 대표의 판단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도 작용할 수 있다. 유권자들은 이런 상황에서의 김무성 대표의 판단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30호 (2015.10.28~11.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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