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올 일도 별로 없는데 설치할 필요 있나.."

입력 2009. 4. 1. 19:51 수정 2009. 4. 1. 22:1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부기관 장애인 편의시설 '나몰라라'…40개 중앙행정기관 설치실태

장애인용 접수대도 없고 장애인 전용 주차장도 턱없이 부족한 장애인정책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 "휠체어가 필요하다면 장애인이 직접 타고 오면 될 것 아니냐"고 무책임하게 되묻는 또 다른 중앙부처의 담당자….

대다수 중앙 및 지방 행정기관은 법으로 설치가 규정된 장애인 편의시설 가운데 일부만을 갖추고 있을 뿐이었다. 정부기관 스스로 장애인 접근권을 침해하는 셈이다. 특히 민간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는 부처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율이 극히 낮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수동 휠체어를 타고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찾는 장애인은 외부 계단과 내부 계단에 설치된 2개의 고정형 리프트를 갈아 타야 입장이 가능하다.

◆'불량'한 행정기관 편의시설=

민원실 등에 휠체어 장애인들을 위해 설치토록 한 장애인용 접수대를 설치한 곳은 40개 중앙행정기관 가운데 국방부와 경찰청 등 4곳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대부분은 장애인용 접수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규정을 모르고 있거나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없는 높이의 접수대를 설치했다. 한 중앙행정기관 담당자는 "접수대를 따로 마련하지는 않았지만 회의용 탁자를 마련해 장애인이 와도 이용할 수 있게 했다"고 궁색하게 해명했다.

장애인편의법 시행규칙은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접근할 수 있는 접수대(또는 작업대)를 0.7∼0.9m 높이로 설치하고 전면과 하부에 활동공간을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화재 등으로 대피가 필요할 때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경보 및 피난 설비를 설치하지 않은 기관도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부, 국세청 등 16곳에 달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건물 입구에 설치하도록 한 촉지도, 점자안내도, 음성안내기 등 시각장애인용 안내설비를 갖추지 않은 기관도 12곳이나 됐다. 그나마 여성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은 "안내설비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조속한 시일 내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취재팀에게 알려왔다.

하지만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부는 보안상 이유 등으로 직원의 안내를 받아야 할 경우가 많아 촉지도가 필요없다"고 어이없는 답변을 했다.

이 밖에 공공건물의 입구나 민원실, 안내실 등에 의무적으로 설치돼 있어야 할 휠체어, 확대경, 보청기기 등 비치용품을 한 가지라도 갖춘 곳도 겨우 9곳에 불과했다. 한 행정기관 관계자는 "휠체어가 필요하면 장애인이 타고 오면 될 것 아니냐"고 취재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편의시설을 설치했지만 막상 장애인의 편의가 무시된 사례도 있었다.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는 2004년 무렵 촉지도식 점자안내판을 비롯한 법정 의무시설을 설치했다고 밝혔으나 주출입구에 설치하도록 돼 있는 촉지도는 별관에만 있다. 정부청사관리소 관계자는 "본관은 정부조직 개편 이후 내부 공사를 하고 있어 아직 유보 상태"라고 해명했다.

또, 지난해 본관 후문에 경사로를 신설했지만 경사가 가팔라 전동휠체어만 통행이 가능하고 수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고정형 리프트 2개를 갈아타야만 입구에 들어갈 수 있게 돼 있다. 지난해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된 1층 로비에도 장애인용 승강기 앞에 점자블록 두 칸이 있는 것을 제외하곤 시각장애인 유도시설이 전무했다. 정부중앙청사는 복도의 바닥표면을 미끄러지지 않는 재질로 평탄하게 마감해야 한다는 규정도 무시한 채 대리석 마감재를 사용했다.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1층 로비 화장실 앞에 점자 블록 등 아무런 유도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다.

◆"우리 건물도 아닌데"… 임차 부처 '나 몰라라'=민간 건물을 빌려 사용하는 부처의 편의시설 설치 현황이 더욱 심각했다. 지난해 3월부터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 6층과 7층 일부, 8∼10층과 12층 일부를 임차해 사용 중인 보건복지가족부는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이 11면으로 전체 1135면의 0.9%에 불과했다. 법정 장애인 주차구역 비율은 2% 이상이어야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설치를 강요할 순 없지만 현대를 설득해 하나하나 설치해 나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건물은 복지부 입주에 앞서 참여정부 시절 해양수산부가 같은 공간을 2005년 3월 이후 사용했지만 이때도 편의시설은 거의 설치하지 않았다.

서울 무교동 프리미어 플레이스 건물 4개 층을 사용하는 여성부도 장애인 진입로와 전용 주차장 2개면, 휠체어가 장애인 편의시설의 전부였다. 여성부 관계자는 "임차해서 사용하다 보니 시설 설치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촉지도식 점자안내판은 조만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행정안전부도 채용관리과, 인사정보과, 소청위원회 등 일부 부서가 이 건물 6개 층을 임차해 사용 중이지만 아무런 시설을 갖추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여의도 광복회 건물 9층 가운데 8개 층을 사용하는 국가보훈처도 장애인들의 출입이 잦은 공간이지만 안내시설, 경보시설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서울 서대문구 의주로 임광빌딩에 입주한 국민권익위원회 역시 안내설비가 갖춰지지 않았으며, 세종로 KT 건물에 입주한 방송통신위원회도 안내시설과 경보시설 모두 갖추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임차건물(중구 무교동 금세기빌딩)을 사용하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들의 방문 빈도가 높다는 점을 감안, 편의시설 모두를 설치해 대조적이었다.

이태영 기자 wooahan@segye.com

ⓒ 세계일보&세계닷컴(www.segye.com),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공짜로 연극ㆍ영화보기]

[☞세계일보 지면보기]

<세계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