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형 프랑스 민영화의 시사점

2008. 9. 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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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개조'를 슬로건으로 2007년 5월 취임한 사르코지 대통령은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축소지향적 공공부문 수술이 공공노조의 반발을 야기하면서 파업의 계절인 11월 '다소 뜨거운 가을'을 경험했다. 하지만 '프랑스 병' 치유에는 개혁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소신을 바탕으로 정면 대응과 여론에의 호소라는 강온 대처 전략을 통해 열흘 만에 파업을 종료시켰다. ■ 프랑스의 현재: '파업의 계절' 재래(再來) 저지하고 시장개혁 시도사르코지의 강력한 대응과 여론의 외면으로 기세가 꺾였던 공공부문 노조는 2008년 4월에 일어난 교사노조의 파업에 학생들이 가세하자 동력을 얻어, 1000만 명이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의 총파업으로 기록된 1968년 5월을 상기하며, 전국적 총파업으로 연결했지만 결국 1일 파업으로 막을 내렸다.대처를 연상시키는 파업 대응과 함께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개헌을 성공시키고, 그루지아 사태 중재 등을 통해 외교력까지 평가받고 있는 사르코지가 "과연 공공부문의 개혁을 축으로 하는 국가개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은 비슷한 시기, 유사한 문제의식 속에서 공공부문 선진화를 추진하는 우리나라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다.돌이켜보면 프랑스는 공장제 수공업 육성을 위해 주요 산업을 국가 통제 하에 소유·경영하였던 콜베르주의를 연원으로 하는 국가개입주의 전통 때문에 시장주의 개혁에 대한 저항이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강한 편이다.따라서 최근 10년 간 민영화를 위시한 공공부문 개혁이 미풍에 그쳤었고 향후 개혁의 전도도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프랑스가 시장주의 개혁에 성공하려면 자신들의 과거에서 개혁의 추동력을 제약하는 인자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도 선진화의 DNA를 강건하게 하기 위해서 개혁의 제약 인자와 추동 인자를 판별하는 작업에 프랑스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프랑스의 과거: 탈국유화·재민영화 넘어 민영화 조류에의 편승 노력1980년대 프랑스에서는 정권의 성향에 따라 국유화와 민영화가 번갈아 시행됐지만 국제경쟁이 심화된 1990년대 이후에는 보수, 진보 정파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민영화를 중요한 정책의 축으로 고려했다. 프랑스의 민영화 추진은 크게 셋으로 시기 구분을 할 수 있다.먼저 1986년에서 1988년에 이르는 1차 민영화 시기는 1981~82년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한 직후 경제활성화를 명분으로 단행한 3차 국유화 조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대응의 성격이 강했다. 미테랑에 의한 국유화 조치는 은행, 보험, 철강, 알루미늄, 석유·화학, 기계설비, 전자 등 광범위한 것으로 1936년의 1차 국유화(군수, 항공, 철도)와 1945년 2차 국유화(석탄, 항공운송, 전력, 가스, 은행, 보험)보다 압도적인 규모로 진행되었다.1986년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 보수연합의 시락 총리는 좌우동거 정부의 상황에서 의회의 주도권을 동력으로 5개년 민영화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출발부터 미테랑 대통령이 민영화 관련 법령에 서명을 거부함에 따라 1986년 6월 헌법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정책이 시행되는 등 파행을 겪었던 민영화계획은 1987년 찾아온 세계 증시의 폭락사태, 1988년 총선에서의 사회당 재집권 등으로 원안인 65개 민영화 대상 공기업 중 비교적 신속하게 추진한 13개 공기업만이 민영화되는 데 그쳤다.1946년 우파인 드골에 의해 국유화되었던 Societe generale 은행을 비롯한 7개 은행과 석유, 목재·제지, 통신, 전기, 방송업을 영위하던 공기업들이 민간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는데, 특히 Societe generale 은행은 정부와 함께 적극적인 민영화 마케팅을 벌여 일반 공모와 종업원 지주제, 안정주주제의 도입 등을 통해 완전 민영화에 성공하였다.

재정적자 감소 방안 중 하나로서의 민영화 추진

두 번째 민영화는 1993년 4월 집권에 성공한 우파 발라뒤르 정권에 의해서 1993~96년 사이에 이뤄졌는데, 경제적·재정적 요인이 추진의 동력을 제공했다. 당시 프랑스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GDP 대비 정부재정적자 비중이었다. 1993년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GDP의 4.43%를 기록하였다. 유럽통합의 전제 조건을 협의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유럽경제통합을 위한 각국 정부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중의 기준을 3%로 제시함으로써 프랑스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민영화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된다.1993년 제정된 민영화법에 의해 진행된 2차 민영화를 통해서 철강공기업인 Usinor-Sacilor를 포함하여 담배, 보험, 알루미늄 등 상업 부문의 10개 공기업들이 민영화되었는데, 정부는 1차 민영화를 통해 얻은 매각 수입 약 710억 프랑의 2배에 해당하는 약 1,400억 프랑의 수입을 획득했다.이 중 약 550억 프랑의 매각 수입을 안겨 준 Usinor-Sacilor의 경우 3차 국유화기에 정부가 철강업계의 업황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각기 민간 기업으로 출발하였던 Usinor와 Sacilor를 합병하기로 결정한 뒤 1987년 통합회사가 되었다가 재민영화된 사례이다.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는 Usinor-Sacilor를 유럽 최대, 세계 3위의 철강회사로 올려놓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철강산업의 침체로 부채가 자본금을 상회하게 된 Usinor-Sacilor의 경영위원회는 민영화를 지지했고 정부도 재정적 동기에 의해 민영화의 추진 탄력을 배가하였다.이러한 노력의 결과, 노조의 고용불안 및 노후 보장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킨 사회협약(Accord social)이 체결된 것을 비롯하여 안정주주 그룹을 위시한 기관투자자 및 외국인 투자자의 유치 등이 주효해 민영화에 성공했다.1997년 집권한 조스팽 정부는 우파정부에 의해 실행된 민영화 조치를 전면 보류하겠다는 선거공약을 부분적으로 파기하고 민영화 대상 기업의 업종 및 재무구조에 따라 선별적인 민영화를 추진하는 '신중한 민영화 정책'으로 선회하였다.그 결과 자본 개방 방식을 통해 France Telecom(통신공사)과 Air France(항공운송공사)에 대한 부분 민영화가 이루어졌다. 사회당 내각의 민영화 추진에 대해서 공산당마저도 민영화에 대한 기존의 반대 입장에서 후퇴하여 공기업 자본의 '소규모적 개방'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할 정도로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어떻게 보면, 2차 민영화를 추진했던 우파 쥐뻬 총리가 하려고 하던 것을 좌파인 조스팽이 실용주의적 국정철학을 바탕으로 성사시킨 셈이 되었다.조스팽의 경제구조조정을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와 세계적인 기업 육성 전략은 공익설비산업의 대표 공기업인 EDF(전기공사)와 GDF(가스공사), SNCF(국영 철도회사) 등이 민영화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사실 이들 공기업은 종사자들의 강한 저항으로 민영화 추세는 잠시 주춤했으나, France Telecom의 정부지분이 32%대로 낮춰지는 등 공익설비산업의 민영화가 추가적인 진전을 보이면서 2005년부터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 ■ 프랑스 현재와 과거의 교차: 민영화의 성과와 한계국가우위 사회인 프랑스의 민영화는 법률 제정을 통해 추진 여건을 정비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민영화의 추진시기와 민영화 실시대상 기업을 지정하는 '정부가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이 1986년 7월 제정됐다.

법률 기반으로 다양한 민영화 방식 추진

민영화를 추진할 '민영화위원회'의 임무와 권한, 그리고 민영화 대상 기업에 적용할 민영화 방식의 구체적 내용, 예를 들면 매각 대상 정부지분의 외국인 매수 가능 비율, 개인 투자자의 지분 취득 한도, 장내 매각과 기관투자자를 통한 장외 매각의 비중, 안정주주 구성 및 황금주의 권리, 그리고 종업원지주제에 운용 사항을 규정한 '민영화 적용양식에 관한 법'이 1986년 8월 제정되어 1차 민영화의 법률적 근간을 형성하였다.1988년 재선에 성공한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이 더 이상의 새로운 국유화도 추진하지 않고, 재민영화도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Ni-Ni(ni renationalization, ni nouvelles privatization) 정책을 표방하면서 주춤했던 민영화는 우파로의 정권교체를 계기로 1993년 7월 13일에 제정한 민영화법에 보다 정교한 추진체계를 인입하면서 재항진을 시작하였다.이 법은 새로운 민영화 대상기업을 공지하고, 1986년 '민영화 적용양식에 관한 법'의 내용을 수정·보완하는 것이 주조를 이루었다. 민영화 방식에 대한 수정·보완은 민영화 경험, 금융시장 및 경제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서, 변경된 주요 내용으로 첫 번째는 안정주주 구성원을 선정할 수 있는 권한을 민영화위원회에게 부여하는 것이었다.또한 외국인 투자를 유인 혹은 권유하는 조치를 적극 도입하였는데, 동법 제 8조는 비유럽연합 소속국가의 외국인들에게 주식 매입 참여를 장려하고 있다. 민영화 대상기업 지분의 20%까지 이들의 참여가 보장되며, 산업·상업·금융상의 협력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20% 이상의 지분도 가질 수 있도록 명시하였다.

이와 같은 법제도적 장치는 프랑스 공기업 민영화의 방식을 다변화할 수 있게 하였다. 비록 경쟁부문의 공기업을 주로 매각하기는 했지만 거대 기업이 적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신속한 민영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민영화법에 근거하여 다양한 방법을 활용했기 때문이다.투자자그룹(일반 개인 투자자, 전·현직 종업원, 안정주주, 외국인 투자자)별로 매각 배분비율을 사전에 결정하고, 고정 가격 공모제를 통한 국민주 매각과 안정주주 그룹에 대한 직접 매각방식, 종업원에 대한 우선 배정방식을 배합해 사용함으로써 매각의 지연을 최소화하고, 종업원과 일반 대중의 참여 인센티브를 제공하였으며, 급격한 경영권의 변동과 매각 차익만을 노린 주식 집중 매입을 차단하였던 것이다.1차 민영화가 시작되기 직전인 1985년 전체 고용의 20%, 2차 산업 고용의 26%를 차지할 정도로 팽창되어 3,058개에 달했던 프랑스의 공기업 수는 산업전반에 걸친 민영화의 조류에 밀려 2006년 현재 845개로 감소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가 지배주주인 기업은 에너지 분야, 운송 분야, 시청각서비스 분야, 방위 분야에 포진해있다. 사르코지 정부는 이처럼 여전히 비대한 공공부문의 비효율을 제거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사르코지의 개혁 시도를 의지대로 실현하기에는 적지 않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존 민영화 추진의 한계에서 배태된 것이다.

국가지시형 민영화의 전형으로서 추가 동력 확보 미흡

민영화의 성공조건 가운데 하나는 민간의 참여를 촉진하는 것이지만, 알려진 대로 프랑스의 민영화는 재정적자의 축소를 목표로 한 것이므로 정부의 역할이 두드러진 '국가지시형 민영화(state-directed privatization)'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것은 영국의 민영화가 위기 돌파를 위해 시장을 활성화하는 전략적 설계였던 것과는 근본적인 차별성을 갖는다. 이러한 차별성은 민영화의 개념에서부터 드러난다. 프랑스에서 민영화는 해당 기업의 소유권이 정부에서 민간으로 이전되었다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즉 규제완화라든가 시장구조의 변화 등은 민영화 논의에서 제외되었다.프랑스가 선택한 협의의 민영화 개념은 민영화 대상 기업 선정으로 연결된다. 사르코지 집권 이후 항만 민영화 등이 추진되고는 있지만, 과거 3차례의 민영화에 있어서 대상 공기업은 대부분 경쟁부문의 공기업들이었다.경쟁부문의 공기업이란 민간부문과 대등한 조건 하에서 생산 및 서비스 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기업으로서 은행, 금융회사, 상공업부문의 기업, 보험회사를 의미한다. 1986년 민영화 기본법에 명시되어 있는 민영화 대상 65개 기업은 모두 경쟁부문의 공기업들이며, 1993년 법에 명시되어 있는 21개 민영화 대상 기업들도 중 Air France나 Compagnie generale de maritime(공파니 제네랄 드 마리팀, 운송)를 제외하고는 모두 경쟁부문의 공기업들이었다. 1997년 이후 시도된 3차 민영화 대상 공기업에는 공익설비산업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Thomson Multimedia와 같은 가전제품회사와 Credit Lyonnais 은행 등 경쟁부문 공기업이 다수 선정되었다.시장 조성을 통한 경쟁체제를 지향하는데 미흡했던 프랑스 정부는 경제력 집중과 급격한 경영권 변동을 우려하여 안정주주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그러나 비록 정부로부터 안정주주 그룹으로 지배구조가 전환되기는 하였지만 경영의 효율성을 도모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우선 안정주주 그룹의 수가 너무 많다는 문제가 있다. Societe generale 은행의 경우 18개의 안정주주가 있는데 18가지의 이해관계를 조화시킬 수 있는 경영전략이 도출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안정주주 그룹으로 참여하고 있는 기업들이 서로 다른 여러 회사의 안정주주 그룹으로 얽혀 있다 보니, 경영권 행사에 제약이 불가피하다는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나아가 안정주주 선정권과 민영화된 기업의 경영진 구성에 대한 영향력을 정부가 보유하고 있어 여전히 정부개입이 유지되고 있고, 이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공기업의 지분 인수를 꺼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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