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돈키호테식' 문화재 파괴

2008. 8.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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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가지정으로 혹 떼려다 혹 붙인 격"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서울시가 청사 본관 뒤편 태평홀을 중장비를 동원해 철거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날아들기 시작한 26일 오전만해도 문화재청은 물론이고 그 보존 운동을 벌이던 문화유산 시민운동단체에서조차 "설마 그럴 리가"라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개인이나 민간기관이라면 몰라도, 서울시가 앞장 서서 '문화재'를 파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반신반의하는 사이에 이미 서울시 청사를 구성하는 주요 부속건물 중 하나로 '등록문화재' 태평홀은 이미 반이나 파괴됐다.

현장으로 달려가 앙상한 골조를 드러낸 태평홀을 목격한 한 문화재위원은 익명을 전제로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격"이라는 격한 감정을 토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시의 태평홀 철거작업은 공교롭게도 그 보존활용 방안을 다루게 될 문화재위 근대문화유산분과와 사적분과 합동회의를 앞둔 시점에 전격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이 합동회의는 이날 오후 4시에 열릴 예정이었다.

이는 누가 봐도 서울시의 선공(先攻)이었다. 즉, 이날 문화재위에서 서울시청사에 대한 사적 지정 혹은 사적 가지정을 의결할 경우, 서울시가 당초 계획한 '해체 복원'을 통한 시청사의 도서관 활용계획은 무산된다. 이를 염두에 두고 문화재위 회의에 앞서 서울시는 일단 태평홀의 철거를 단행한 것이다.

결국 서울시가 우려했던 대로 문화재위 합동회의는 시청사에 대한 사적 가지정을 의결했다. 통상 이처럼 민감한 안건을 처리하는 데 문화재위 회의는 서너 시간을 넘기기 일쑤이고, 그래도 결론이 나지 않아 다음 회의로 미루는 일이 많았던 데 비해 이날 회의는 단 30분만에 결론을 내렸다.

이는 그만큼 문화재위가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회의 시간이 길어질 수록 태평홀이 더 많이 파괴된다는 긴박감에서 일사천리로 사적 가지정 의결로 이어졌다.

회의를 끝낸 뒤 한영우 사적분과 위원장이 발표한 문화재위 의결문에는 서울시의 행위를 "반 문화적이고 야만적인 처사"로 비난하는 표현도 포함됐다.

문화재위가 이처럼 격한 표현까지 의결문에서 사용한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문화재청 또한 서울시에 대한 '배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시청사 일부를 해체하겠다고 문화재청에 통보한 시간이 어젯밤(25일)이었다"며 서울시의 '기습'에 가까운 철거에 당혹감을 나타냈다.

등록 문화재는 '국가 문화재' 일종이긴 하지만 여타 문화재와는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국보나 보물, 명승 및 사적, 그리고 천연기념물과 같은 국가지정 문화재는 그 보호 조치를 법적으로 강제하지만, 등록 문화재는 말 그대로 '문화재'로 '등록'될 뿐이다.

국가지정 문화재가 그 보존을 위해 각종 사유재산권을 제한하는 데 반해 등록문화재는 이런 법적 강제력이 전혀 없다.

8월 현재 397건이 '등록'된 등록문화재는 그렇기 때문에 수난이 많다. 법적으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에 쉽게 말해 그 소유주가 때려부수어 없애 버린다 해도 아무런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한다.

그럼에도 문화재청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여타 문화재가 지나치게 '골동품' 위주로 지정되어 있고, 나아가 문화재 지정은 거의 필연적으로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을 부르는 점을 감안해 그 한계를 나름대로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즉, 현재의 역사적 가치보다는 미래의 역사적 가치를 내다보고 지금 단계에서 일단 문화재 자격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 등록문화재라 할 수 있다.

이에 의해 서울시 청사는 본관과 태평홀 등이 등록문화재 52호로 '등록'됐다.

하지만 서울시는 등록문화재의 이런 근본적인 한계점을 파고 들어, 원형 보존을 요구하는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에 선공을 편 것이다. 때려 부수어 없앤다 해도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닌 것이며, 실제 26일 일어난 태평홀 철거 행위도 법상으로는 명백히 불법은 아니다.

서울시는 영원한 철거가 아닌 '복원을 위한 철거'를 표방했다. 건물 안전진단 결과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일단 철거를 한 다음, 최대한 원형을 살려 복원한다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제시한 이런 복원안을 검토한 문화재청과 문화재위는 그것이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건물 신축이라는 이유를 들어 원형 보존을 거듭 권고했다.

26일 문화재위 합동회의는 이에 급제동을 걸었다. 시청사를 법적 구속력을 동반하지 못하는 등록문화재 대신 국가사적으로 가지정한 것이다. 더불어 문화재위는 이미 서울시가 파괴한 태평홀 등을 원형대로 복구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따라서 서울시의 '돈키호테' 같은 행동은 애꿎은 문화재만 파괴한 셈이 됐으며, 그에 따라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인 셈이 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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