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법도 국어의 일부

2007. 9. 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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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 표기에 대해서 관대한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쇼파'면 어떻고 '소파'(이 표현이 바른 표기 - sofa, 이 또한 '긴 의자', '긴 안락의자'로 순화해서 사용할 것을 권장.)면 어떠냐는 것이다. 이 표현은 외래어이기 때문에 정해진 규칙이 없고, 그때마다 자의적으로 말하고 표현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일차적으로 외래어 표기법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외래어 표기법도 모른다.

외래어 표기법은 외래어를 한국어로 적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서 외래어 표기법은 국어의 일부다.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들어오는 말이기 때문에 태생은 외국이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말 속에서 사용되고, 우리들의 의식에 젖어든다. 이제는 우리가 널리 쓰는 국어가 된다. 외래어지만 어엿하게 국어사전에도 표제어로 오른다.

외래어를 외국어라고 생각해서 임의로 표기한다면 그 혼란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 된다. 예를 들어, '콘테스트(contest-경기, 경연, 대회로 순화해서 사용할 것을 권장.)'를 보자. 외래어이기 때문에 '컨테스트'라고 해도 틀린 것이 아니라고 우겨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식으로 우긴다면 왜 '컨태스트'는 안 되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저들 말대로 '콘테스트'는 외래어이기 때문에 '컨테스트'를 허용하면, '칸테(태)스트/쿤테(태)스트/퀸테(태)스트/?테(태)스트'로 걷잡을 수 없는 표현이 난무하게 된다.

'로열(royal)'이 바른 표기. '로열박스(royal box), 로열패밀리(royal family), 로열 인스티튜션(Royal Institution), 로열 젤리(royal jelly), 로열 소사이어티(Royal Society), 로열티(royalty)'
'윈도'가 바른 표기. 쇼윈도(show window), 윈도 클로스(window cloth), 윈도쇼핑(window-shopping)

우리가 언어 생활을 원활하게 하는 것은 '하늘, 가을, 강, 바람, 나무……'처럼 어형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정되어 있는 언어가 의사소통을 정확히 하도록 하고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도 가능하게 한다. 외래어도 마찬가지다. 깔끔한 언어 표현을 위해서 정해진 표기 규칙을 따라야 한다. 혹자는 외래어이기 때문에 하면서 표기를 임의대로 하는데 외래어이기 때문에 더 정확한 표기 방법이 필요하다.

외래어를 우리말로 표기하는 데는 1447년(세종 29) 간행된 《동국정운(東國正韻)》이 시작이었다. 이는 최초로 외래어인 한자음을 우리 음으로 표기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특히 당시 정리되어 있지 않던 국내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되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외래어 표기법의 정신과 일치한다.

그 뒤 1897년(고종 34) 이봉운(李鳳雲)의 《국문정리(國文正理)》, 1908년(순종 2) 지석영(池錫永)이 주석한 《아학편(兒學編)》등에서 일본어·중국어·영어의 표기를 시도하였다. 그러다가 조선어학회는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과 1940년 <외래어표기법통일안>을 통하여 외래어를 한국어로 적을 때는 국제음성기호(IPA)를 표준으로 하는 표음주의와 현재 사용하는 한글의 자모와 자형만을 이용하여 적는다는 원칙을 정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고,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한계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리끼리 통하자고 만든 규칙…바르게 쓰는 것이 과제

외래어 표기법이 오늘날의 기틀을 다진 것은 1986년에 제정·고시된 것이 바탕이 되었다. 1986년 1월 문교부는 표기의 기본원칙, 표기일람표, 표기세칙, 인명·지명표기 원칙 등 4장으로 된 외래어표기법을 새로 만들어 고시하였다.

현재의 외래어 표기법은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규칙이다. 이러한 외래어 표기법을 두고 심오한 학문적 배경을 근거로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슈퍼-(super)'는 '수퍼-(super)'라고 말하는 것이 원음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물론 외래어표기법은 원음을 그대로 표기하는 정신에 입각해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우리의 표기법이 원음을 그대로 반영하기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외래어 '서비스(service)'를 표기할 때도 우리는 된소리 표기를 하지 않지만, 이도 정확한 표기 방법이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쉬' 소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음운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늘 논란이 된다. 이는 결국 외래어를 아무리 잘 표기하더라도 그 나라 말을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외래어 표기는 외국어를 우리의 실정에 맞게 하는데 있다. 다시 말해서 외래어 표기는 외국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만들어놓은 규칙이다.

문제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우리가 정한 약속이다. 약속은 지켜야 빛난다. 우리의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 사람이 그 말을 못 알아들어도 괜찮다. 외래어 표기법은 우리끼리 통하자고 만든 규칙이다. 바르게 쓰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국정넷포터 윤재열(http://tyoonkr.kll.co.kr)

<윤재열님은> 현재 수원 장안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수필가로 활동합니다. 일상적인 삶에서 느끼는 단상들을 글쓰기 소재로 많이 활용합니다. 특히 우리의 언어생활을 성찰하고, 바른 언어생활을 추구하는데 앞장섭니다. 저서는 시해설서 '즐거운 시여행'(공저), 수필집 '나의 글밭엔 어린 천사가 숨쉰다', '삶의 향기를 엮는 에세이', '행복한 바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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