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한미FTA '묻지마식' 방송

2006. 8. 8.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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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톡톡 라운지'에 올라온 한 고교생의 질문 글

EBS교육방송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묻지마 방송'으로 합리적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 보다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 EBS의 한미FTA에 대한 일부 프로그램은 협상 내용을 찬찬히 살피고 경제적 득실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극적이고 편향된 시각을 담은 화면과 구호들로'PD수첩 따라하기' 내지 '선명성 경쟁'에 나선 모양세다.

이 때문에 한미FTA의 효과에 관한 객관적인 분석, 심층적인 토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제작자의 어설픈 이데올로기로 채우고 있다는 시청자들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방송의 영향력에 민감한 청소년들 사이에서 방송 내용을 인용한 'FTA 괴담'이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교육방송까지 PD수첩식 자극적 보도 확대 재생산

EBS는 7월31일과 8월 2일 '지식채널e'라는 코너에서 '아무도 모른다'라는 제목으로 한미FTA와 관련한 5분짜리 영상물을 잇따라 방영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초·중·고교생 등 청소년과 학부모들을 주시청자로 하는 EBS로서는 '반교육적'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한미 FTA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기 힘들었다면 적어도 균형잡힌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이 나름대로 판단할 여지를 남겨뒀어야 했다.

이 프로그램은 한미FTA 협상장, 반대시위장면, 생산현장 등의 배경화면에 나레이션 없이 배경 음악과 함께 주요 메시지를 자막으로 처리해 내보냈다. 한미FTA처럼 "복잡하고 난해하며 광범위한"(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의 EBS 출연 언급인용) 정책 주제를 한 줄짜리 자막으로 처리하다보니 곳곳에서 논리 비약과 자극적 FTA 반대 구호들로 가득했다.

'위력은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는 <투자자-정부제소권> '미 기업이 한국정부를 제3기관에 제소하여 배상 받을 수 있다'는 자막을 내보냈다.

여기에는 '미국 투자자의 한국정부 제소'라는 일면만 부각됐을 뿐 미국 정부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우리 기업도 소송할 수 있다는 상호적 전제가 빠져있고, 이 조항이 다른 나라에 투자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외국인투자자가 혹여 부당한 행정조치로 인해 받게 될 불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 내지는 투자분쟁조정절차라는 기본적인 이해나 경제논리적 학습이 전혀 없었다.

FTA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경제논리적 학습 없어

'도대체 내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최종합의문은 협상타결 즉시 공개, 그러나 협상 중 세부내용에 대해서는 3년간 공개하지 않는다'는 한 줄 자막만 내보냈다. 한미FTA에 대해 지금까지 1, 2차 협상을 통해 알려진 내용만도 방대한 데 무책임한 자막만으로는 시청자들에게 막연한 심리적 거부감을 주는 데 급급했다.

한미FTA에 대한 엇갈린 주장을 짧은 자막으로 소개하면서 '한미FTA 제2의 을사조약' '광우병 소고기와 유전자 조작식품 유통' '취직은 어렵고 해고만 쉬워질 것''약값과 의료비, 수도-전기 등 공공요금 급상승 ' '미 투기자본과 다국적 기업만 도움' 등 반대론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퍼뜨리는 검증되지 않은 괴담수준의 구호를 여과없이 그대로 내보냈다. 얼핏 구호들만 보면 PD수첩 빼끼기 요약본에 가깝다.

또 전국 성인남여 800명중 89.5%나 한미FTA를 잘 모른다는 여론조사(리서치앤리서치) 내용을 인용하며 '아무도 모른다'는 주제를 잡은 후 '과연 한국과 미국은 FTA를 체결할 것인가? 그리고 책임은 누가 지는가?'라는 질문 자막을 던진다.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정책에 대한 시청자들의 막연한 불신을 부추기고 정부는 무책임하다는 식이다.

'시대는 정책을 만들고 정책은 개인 삶을 관통한다'는 자막과 함께 '그러나 89.5%, 아무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이 프로는 정책에 대한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는커녕 정책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을 꺾어 놓았다.

5분짜리 '감성'다큐에 복잡다단한 정책주제를 피상적으로 묘사

'지식채널e'라는 코너는 원래 과학 생명 문화유산 가족 교육 등 이 시대 다양한 문화코드를 재미와 지식을 섞어 소프트 터치 영상물로 소개하는 일종의 '쉬어가는' 코너다. 화장실을 '1.5평의 우주'라고 묘사하며 배설물에 관한 문화적 사회적 물리적 의미를 전달하기도 하고, 사랑에 관한 시리즈 영상물을 내보내기도 한다. 일종의 '감성'다큐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가 있다.

하지만 이 감성 다큐 소재로 한미FTA라는 복잡하고 전문적인 내용의 정책주제를 그것도 5분짜리 영상물로 제작해 프로그램 사이사이 4번이나 방영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번 한미FTA에 관한 영상물의 경우 평소 교양방송을 추구하는 EBS답지 않았다는 지적과 함께 한미FTA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접근으로 학생들을 의식화하려 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또 EBS는 8월6일 'EBS 미디어 바로보기' 프로그램에서 '한미FTA 공방과 진실'이라는 미디어 이슈를 다루면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멕시코 양극화의 주범이라는'PD수첩식' 보도를 그대로 답습했다.

또다시 '멕시코 양극화=나프타 탓' 재탕

프로그램 초반 한미FTA와 관련한 정부와 방송사간 공방의 의미와 문제점을 전문가 토론을 통해 소개하고, 한미FTA를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와 문제점에 대한 보도와 전문가 토론으로 언론보도의 바람직한 방향을 내놓았다.

이 자리에서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한미FTA는 복잡하고 난해하고 광범위하다. 그런데 (언론이) 그런 것에 대해 표피적인 접근만 하지 심층접근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며 "분야별 산업별 피해를 분석하고 해석해서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이 프로그램은 '한 컷의 진실: 나프타 체결 12년, 멕시코는 길을 잃다' 는 주제로 한 인터넷 매체 취재진의 편향적인 시각의 취재내용과 사진 등을 장황하게 소개했다. 멕시코시티 도심 노점상과 노숙자, 실업자의 사진과 신문기사가 등장하고 중소기업 도산, 해외자본에 넘어간 은행, 민영화로 사라진 수송용 철도 등 판에 박힌 'FTA 탓'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한편의 감성 드라마 수준이다.

청소년들에게 한미FTA를 소개하는 관련 프로그램에 왜 경제전문가나 경제학자를 한 사람도 등장시키지 않는 것일까. 적어도 청소년을 위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채널이라면 보다 고민하고 연구하고 자료를 찾아 기획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EBS를 즐겨보는 시청자로서 지나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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