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기습철거' 왜 이지경까지 왔나

2008. 8. 2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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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새청사 욕심에 '걸림돌 제거' 판단

문화재위 미지근한 태도도 사태악화 한몫'등록 안되면 맘대로 철거' 제도부터 뜯어야

지난 26일 문화재위원회가 서울시청을 사적으로 가지정함으로써 서울시의 본관 철거 공사는 중단됐고, 시청 본관은 현상을 보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서울시가 문화재위의 사적 가지정 결정에 법적 대응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혀 양자간의 갈등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청 본관 보존 문제와 관련해 양자가 충돌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서울시가 지난 2006년부터 현 시청 자리에 새 시청사를 짓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시청이 위치한 터는 전체적으로 장방형에 규모도 큰 편이지만 문화재인 기존 시청사가 전체 부지의 왼쪽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나머지 터를 활용해 새 건물을 짓기는 상당히 곤란하다. 게다가 바로 옆에 역시 사적인 덕수궁이 있어서 건축행위에도 상당한 제한을 받는다. 새 시청 건물을 짓기 위해 서울시는 2년 동안 6차례나 설계를 고쳐 문화재위원회에 제출해왔다.

특히 이번에 서울시가 가장 먼저 철거에 나선 태평홀과 오른쪽 날개 건물의 경우는 북쪽으로 튀어나와 있어 새 시청을 짓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서울시는 시청 본관에 대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다" "안전도에 문제가 있다" 심지어 "일제의 잔재다"라는 식의 철거를 위한 논리를 펴왔다. 서울시는 문화재위에서 사적 지정에 나서기 전에 하루 빨리 헐어버리는 것이 새 시청 건물을 짓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김정동 근대문화재 분과 문화재위원은 "서울시가 새 건물을 짓는 데만 관심이 쏠려 있어서 이 건물의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며 "그렇게 장대한 새 시청을 지으려면 용산이나 한강가나 뚝섬같은 곳을 알아봐야지 이 터에는 적합한 스케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여기에 이른 데에는 문화재위원회의 미지근한 태도도 한몫을 했다. 서울시는 2006년부터 새 시청을 짓기 위해 태평홀 등 시청 본관의 상당 부분을 헐겠다고 공언해왔고, 실제 설계에도 이를 반영해왔다. 그러나 문화재위는 시청 본관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사적 지정을 검토하지 않았다. 서울시가 철거를 시작한 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충분히 사적이 될만한 건물"이라고 말했으나, 그런 가치에 걸맞은 대접을 해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중요한 근대 건축 문화재의 관리를 소유자의 선의에 맡기는 등록문화재 제도의 전면 재검토도 필요하다. 이번 문화재위에서 지적했듯 "지정문화재 제도와 달리 사유재산권을 규제하지 않는 유연한" 등록문화재 제도는 이번처럼 소유자의 일방적인 철거를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특히 서울시처럼 문화재위의 권고를 무시하고 건물을 헐어도 제재 수단조차 없는 상황이다. 황평우 문화재 전문위원은 "가치 있는 건축물들은 등록문화재가 아니라 반드시 지정문화재로 보호·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김규원 이정훈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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