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혈견 말고, 헌혈견을 모집하자

입력 2012. 6. 15. 15:40 수정 2012. 6. 1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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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생명 개 수혈치료의 세계

평생 피를 뽑히고 일생 마감하는 '공혈견'

"반려견 주인들 참여로 헌혈하고 건강검진 받자"

▶ 수혈도 동물에게서 먼저 성공했다. 영국의 의학자 리처드 로어는 1666년 건장한 개에게서 혈액을 뽑아 다른 개에게 옮기는 데 성공했다. 얼마 안 돼 인간에 대한 실험도 성공했지만 수혈을 이용한 치료가 본격화된 건 세계 대전을 겪은 20세기 들어서다. 총상을 입은 군인들 옆에는 '야전 수혈부대'가 있었고 비약적인 의학 발전으로 이어졌다. 동물 덕택에 인간은 혜택을 보고 있지만, 정작 동물은 수혈 치료를 온전히 받지 못한다.

당신의 개가 교통사고를 당해 긴급하게 피가 필요하면 어떻게 할까? 그 피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일반적으로 수혈 치료는 대형 동물병원에서만 시행된다. 치료비도 수십만원에 이른다. 수혈이 필요한 경우는 재생불량성 빈혈 등 내과 질환과 교통사고 등 출혈을 보완하는 외과 수술이다. 개가 양파를 많이 먹었을 때 나타나는 '양파 중독' 질환에서도 수혈이 시행된다. 적혈구 용적률이 20% 이하로 떨어지는데, 이때는 긴급 수혈을 실시해야 한다.

대한민국 반려견의 수혈을 책임지는 개는 이른바 '공혈견'이다. 수색탐지를 위한 군견, 시각장애인을 보조하는 인도견처럼 공혈견의 평생 업무는 다른 개를 위해 피를 제공하는 일이다. 주로 셰퍼드, 레트리버 등 대형견이 공혈견으로 채택돼 많게는 한 달에 한 번씩 피를 뽑히며 평생을 산다.

공혈견을 두는 곳은 민간 동물혈액업체와 대형 동물병원이다. 이를 고려하면 국내 공혈견은 300마리 이내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실태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이와 관련한 정부 지침과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대수술을 집도하는 일부 대학 동물병원의 경우 두어 마리 정도의 공혈견을 직접 키운다. 서울대동물병원 관계자는 "피를 뽑는 공혈견 세 마리가 있다"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채혈하지만 이마저도 부족해 동물혈액은행에서 사다 쓴다"고 말했다.

개의 혈액형은 세부 유형까지 따지면 13~15가지에 이른다. 처음 수혈을 받을 땐 혈액형이 달라도 받을 수 있다. 반면 사람의 O형에 해당하는 유니버셜 도너(모두에게 피를 줄 수 있지만, 받을 땐 같은 혈액형만 가능)는 5~10%밖에 되지 않아 수급이 쉽지 않다.

서울 논현동의 충현동물병원의 강종일 원장이 말했다. "급할 때엔 혈액을 갖고 있는 병원을 수소문하기도 하고, 환자로 왔던 대형견주에게 부탁하기도 하죠. 어떤 보호자는 너무 급해서 성남 모란시장에서 개를 가져온 경우도 있었어요. 물론 혈액 상태가 안 좋아 쓸 수가 없어요."

광우병 전문가로 알려진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의 박상표 정책국장도 서울 금호동에서 작은 동물병원을 운영한다. 얼마 전 그도 코커스패니얼 한 마리를 수혈을 위해 대학 동물병원으로 보냈다. "이윤을 위해 개가 평생 피를 뽑힌다면 윤리적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어요. 동물은 자발적 헌혈이 불가능하잖아요. 게다가 우리나라는 혈액 수급 여건이 좋지 않아요. 외국에서는 대형견을 많이 키우지만 국내는 소형견이 대부분이니까요. 몇 ㎏짜리 소형견에서는 채혈해봐야 얼마 나오지 않으니까 아예 채혈 및 혈액 관리시스템이 없어요."

어떤 면에서 공혈견은 '필요악'이다. 피를 필요로 하는 개는 있기 마련이고, 누군가는 피를 뽑아줘야 한다. 그렇다면 피만 뽑히고 일생을 마감하는 동물을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건국대 수의대는 2000년대 초반 동물병원에서 기르는 공혈견을 없앴다. 2009년엔 영국 동물학대방지연합(RSPCA)의 후원으로 동물헌혈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이를 주도한 김휘율 교수(수의학)가 말했다. "공혈견은 동물복지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캐나다, 영국, 미국 등은 이미 공혈견에서 헌혈견으로 전환하는 추세예요."

개는 헌혈하고 싶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개와 애착관계가 높은 보호자가 결정해야 한다. 헌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은 개에게 주어져야 한다. 보호자에게 돈으로 보상하지 않고 헌혈에 참가하는 개에게 건강검진 등의 서비스가 제공된다.

헌혈견은 보호자에 대한 전화 면접과 개의 건강검진을 통해 선발된다. 건국대 수의대의 경우는 소형견이 80% 이상인 국내 현실을 고려해 헌혈이 가능한 개의 무게를 20㎏으로 조금 낮추고 △1~8살의 중·대형견 △심장사상충 등이 없을 것 △예방접종 완료 등의 자격 요건을 만들어 건국대 동물병원 이용자를 중심으로 신청을 받았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동물 헌혈견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선발된 개는 단 2마리, 고양이는 1마리밖에 없었다. 김 교수는 "수십 건의 신청이 들어왔지만 대부분 체중과 나이에서 걸렸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동물병원에 유통되는 혈액의 거의 전부는 강원도 속초에 있는 민간업체인 '한국동물혈액은행'에서 채혈된다. 국내에서 유일한 개·고양이 혈액공급 업체다. 이 업체는 대량 사육한 개와 고양이에게서 정기적으로 혈액을 뽑아 각 동물병원으로 보낸다.

<한겨레>는 한국동물혈액은행에 취재를 요청했으나, 이 업체는 방역 문제 때문에 농장 공개가 힘들다고 밝혔다. 2003년 세계 2위의 공혈견 육성 농장을 지은 이 업체는 100~200마리의 공혈견을 기르는 것으로 업계에 알려졌다. 하지만 정확한 공혈견 사육량과 종과 연령은 밝히기 힘들다고 밝혔다. 한국동물혈액은행 관계자는 "불필요한 논란을 살 수 있기 때문"이라며 "바깥에 드러내도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시설에 자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개·고양이 혈액 공급처가 하나밖에 없는 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공급업체의 혈액 관리가 잘못되면 전국 동물병원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동물 혈액의 체혈과 관리·이송 등에 대한 정부 지침이나 기준이 없는 것도 제도적 허점으로 지적된다.

건국대 수의대는 조만간 동물 헌혈 프로그램을 재시도할 계획이다. 관건은 개들이 서로 피를 주고받을 정도로 다수의 헌혈견을 찾을 수 있느냐다. 동물복지 측면에서도 300마리의 공혈견이 '독박'을 쓰는 것보다 다수의 헌혈견이 서로 돕고 사는 게 바람직하다. 동물도 헌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김휘율 교수는 말했다. 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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