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맛이 죽여? 난 너덜너덜해지다 죽어

2012. 4. 2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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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생명
실내낚시터 물고기들

[한겨레]

25일 서울 영등포구의 실내낚시터. 수조 안에서 등지느러미에 옷핀으로 붉은 꼬리표를 단 잉어가 헤엄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전국 도처에서 운영중인 실내낚시터 거의 모든 곳이 경품을 내걸고 있습니다. 사행심도 문제인데, 생명을 담보로 사행심을 조장해야 할까요? 물고기로 태어났으니 그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걸까요? 탐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주는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들에게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사는 세상을 보여주자고요~.

비릿한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검은 물 위에 둥실 떠 있는 건 물고기가 아니라 형광색 막대였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실내낚시터, 주인인 이아무개(39)씨가 물고기를 보여주겠다며 기자를 안내했다. 이씨가 가로 5m 세로 10m 깊이 70㎝의 좁은 수조에 떡밥용 사료를 휙 뿌리자 가라앉아 있던 물고기들이 사료를 먹으러 수면 위로 올라왔다. 좁은 수조 안에서 물고기들은 바글거렸다. 1500마리 정도라고 이씨는 귀띔했다. 헤엄칠 자유를 잃어버린 물고기들은 뒤엉킨 채 서로의 몸을 쉴 새 없이 타고 넘었다.

실내낚시용으로 쓰이는 물고기들은 잉어, 붕어, 향어, 메기, 비단잉어, 새끼철갑상어 등이다. 힘이 좋은 잉어가 제일 많다. 100g의 몸집이 작은 물고기부터 3㎏의 묵직한 물고기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잉어와 향어가 1㎏당 7천원, 붕어는 1㎏당 6천원에 500㎏~1t씩 묶여 거래된다.

뜰채로 건져낸 잉어의 살점이 뜯어져 있다. 아가미로 숨만 쉴 뿐 움직이지 않던 잉어는 냉동실에 넣어졌다.

물고기들의 고향은 대부분 중국의 양식장이다. 횟감용 생선을 주로 양식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잉어나 붕어도 횟감으로 생각하는 중국에서는 이들을 대량으로 양식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낚시용으로 들여오는 것이다. 은빛이 도는 한국 붕어랑 달리 검은색이 더 많이 돌아 ‘짜장붕어’라고 불리는 중국 붕어는 먹기도 한다. 한국산에 비해 값이 싸고 성장 속도가 빨라 많이 소비된다. 지난해 중국에서 수입한 잉어는 189만2507㎏, 붕어는 197만1415㎏이었다.

양식 물고기들은 항상 약품 탄 물에서 생활한다. 중국에서 배를 타고 들어와 검역을 거치는 7~10일 동안 스트레스를 받거나 폐사하지 않도록 물에는 쇼크방지 약품과 방부제를 섞는다. 낚시터 수조에도 쇼크방지 약품, 박테리아와 미생물의 번식을 막는 약품, 수돗물의 염소 냄새를 없애는 약품이 필수다.

낚고 풀어주고 또 낚고…
바늘에 찔리는 주둥이
경품 옷핀에 뜯기는 지느러미 약품 탄 수조에 먹이는 미끼
온몸에 상처 입고 힘이 빠지면
냉장고는 물고기의 무덤이다

배고픔은 낚시용 물고기들의 첫번째 숙명이다. 물고기들이 먹는 먹이는 손님들이 낚시할 때 날아오는 사료용 떡밥이 전부였다. 허기진 상태라야 물고기들이 더 잘 낚이기 때문에 따로 밥을 주지 않는다. 자연상태와 달리 지렁이 같은 동물성 먹이를 먹지 못하기 때문에 늘 영양이 부족해 살이 쉽게 빠진다.

바늘에 여러번 찔리는 아픔은 두번째 숙명이다. 여자친구와 함께 왔다는 대학생 김대현(22)씨는 “바다낚시보다 빨리빨리 손맛을 볼 수 있어서 온다”며 실내낚시터를 찾는 이유를 설명했다. 낚시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손맛이란, 까딱까딱 찌가 수면 위에서 위아래로 움직일 때 갈고리모양의 낚싯바늘이 물고기의 입안을 제대로 파고들 수 있도록 채는 느낌을 말한다. 김씨는 잉어를 낚아 무게를 잰 뒤 바로 수조로 던졌다. “한번 문 놈이 계속 물 수도 있고, 새로운 놈이 물 수도 있고… 어떤 놈이 잘 잡히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주인 이씨가 말했다. 물고기들은 배를 채우려면 바늘에 달린 떡밥을 물어야만 한다.

실내낚시터 물고기들 중 일부는 더 찔린다. 어떤 물고기들의 등지느러미에서 송사리(1천원), 가오리(2천원), 상어(5천원), 고래(1만원) 등 물고기 이름을 적어둔 꼬리표가 흔들거렸다. 꼬리표가 떨어질 때 물고기의 등지느러미는 같이 찢어진다. 쇠로 된 옷핀이 물 안에서 부식할 경우 세균에 감염되기도 한다. 꼬리표는 15~20개씩 일주일에 두 번꼴로 새로 다는데, 꼬리표 달린 물고기를 낚으면 산수유, 와인, 자전거 등 경품을 받거나 요금을 할인받았다. 경품을 타기 위해 낚싯바늘을 옆으로 던져 지느러미든 몸이든 아무 곳이나 걸려 딸려오는 물고기들을 건져내는 일명 ‘훌치기’를 하는 사람들도 꽤 된다.

물고기들은 아픔을 느끼지 않는 걸까? 2003년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와 에든버러대학 공동연구팀은 입술에 벌침을 쏘이거나 아세트산을 묻힌 무지개송어가 수조 바닥에 놓인 돌에 쏘인 부분을 문지르는 행동을 보였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다른 송어에 비해 먹이를 먹기까지 시간도 2배가 걸렸다. 학자들은 물고기도 아픔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2월18일치 토요판 생명면 ‘조홍섭의 자연보따리’ 참조)

이렇게 지내는 물고기들의 수명은 길어야 6개월 정도. 상처난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들이 달려들어 지느러미 등을 뜯어먹는다. 손님들이 손맛을 느끼지 못하는 힘빠진 물고기들은 냉장고 냉동실에서 얼린 후 종량제봉투에 담아 버린다. 낚시터에서 관리하기 나름이라지만 하루이틀에 1마리꼴로 죽어나간다.

실내낚시터 내부 모습.

지난 21일 토요일 밤 찾아간 서울 중랑구의 한 실내낚시터. 낚시를 해본 적 없는 기자는 한참을 기다려도 손맛을 느낄 수 없었다. 주인은 잉어들이 산란기라 적응시간이 필요하다며 뜰채로 수조 안을 휘휘 저었다. 움직임이 없는 물고기들을 깨우려 콸콸콸 물도 흘려보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옆자리에 앉은 직장인 정아무개(26)씨의 형광색 찌가 까딱까딱 움직였다. 순간 낚싯줄이 팽팽해졌고, 힘겨루기 끝에 ‘특제 떡밥’ 캔옥수수 한 알을 문 제법 큰 잉어 한 마리가 버둥거리며 끌려 나왔다. 뜰채를 사용해 건져내야 할 만큼 묵직한 1.9㎏짜리였다. 잉어는 물 밖에서도 계속 요동치다 바닥에 퍽 소리내며 나동그라졌다. 애처롭게 입을 뻐끔거리던 잉어는 한동안 입 주변에 붉은 피를 흘린 채 퍼덕이다 다시 수조에 던져졌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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