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치하면 노랜 누가 해..1년에 한 번 나훈아 구경오소"

민경원 2018. 3. 23.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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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5일 서울서 나훈아 앵콜 콘서트 시작
청주·부산으로 이어져, 하반기까지 계속
"몸을 만들기 위해 고생 좀 했다"는 나훈아는 23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시작된 앵콜 콘서트에서 한복부터 찢어진 청바지까지 다양한 의상을 소화했다. [사진 예소리]
“여기 올림픽홀은 어떻게 간대요?” 23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열린 ‘앵콜 나훈아 드림 콘서트’를 찾은 60~70대 ‘할매팬’들은 공연 시작 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3번 출구가 공사 중이어서 콘서트 장소를 찾아가기부터가 쉽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이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곳곳에 야광봉을 파는 상인들이 안내 표지판 역할을 했고, 중장년 관객들은 “내 생애 이런 것도 사 본다”며 소녀팬처럼 기뻐했다.

오후 7시 정각 무대에 오른 나훈아(71)가 동요 ‘반달’을 부르자, 3500여명의 관객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지난해 11월 11년 만의 침묵을 깨고 공식 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앙코르 공연 개최 소식을 발표 당시 소속사 측의 “모든 것이 2017년 공연과 똑같으니 못 보신 분들을 위하여 티켓구매를 양보하여 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는 당부처럼 2시간 동안 총 25곡을 선보이는 동일한 레퍼토리로 진행됐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의 노래를 기다리던 팬들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지난해 예매 시작 10분 만에 티켓이 매진되면서 직접 공연장을 찾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첫 공연이요, 운이 좋아 이번엔 3분 만에 끝난 예매전쟁에서 또다시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다시 한번 그의 모습을 눈과 귀에 담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다른 공연과 달리 일체의 사진 촬영도 불허하고 휴대폰에 검은 스티커까지 붙여야 했지만 팬들은 불만을 표하지 않았고, 이미 한 차례 11년간 굶은 노래를 풀어냈던 나훈아는 한층 더 농익은 무대 매너로 공연을 이끌어갔다.
나훈아는 무대 위에서 직접 의상을 갈아입으며 탄탄한 몸매를 과시했다. 공연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나훈아가 체크셔츠를 입자 20여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일제히 체크셔츠를 덧입었다.[사진 예소리]
1966년 데뷔 이후 ‘트로트 황제’로 군림한 그는 가히 ‘밀당의 고수’였다. 초반 40분여분 간은 스크린에 얼굴 한 번 클로즈업되지 않은 채 8곡을 내리 달렸다. 검은 바탕에 붉은 장미가 스팽글로 수놓아진 의상을 입고 나와서는 지난해 발매한 앨범 ‘드림 어게인(Dream Again)’에 수록된 ‘아이라예’ 등 신곡을 선보였다. ‘니 내를 사랑하나 아이라예/ 거라면 싫어하나 아이라예’하며 관객과 대화하듯 노래하는 한편, ‘잊으라 했는데 잊어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난 너를 잊지 못하네’(‘영영’)라며 서로에 대한 변치 않은 사랑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미발표곡 ‘예끼, 이 사람아’를 통해 2008년 ‘신체훼손설’ 루머 반박 기자회견 이후 자취를 감추고 살아온 시간에 대한 심경을 표현하기도 했다. 1절은 팬들이 저를 질책하는 내용이고, 2절은 저의 마음을 담았다는 자막이 뜨더니 이내 남녀 코러스 6명은 나훈아를 꾸짖는 대형으로 진용을 갖췄다. ‘소식 한번 주지 않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코빼기도 볼 수 없고/ 이 몹쓸 사람 오랜만일세’라는 노래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무 말도 못 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네요’라며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는 가객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남자의 눈물’을 부르며 울지 않은 적이 없다는 그는 순간순간 눈물을 훔쳤지만, 전처럼 슬퍼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지난해 11월 '드림 어게인'을 발매하며 11년 만에 컴백한 가수 나훈아. [사진 예소리]
대신 흰색 민소매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나서 여전한 청춘을 과시했다. “신문에서는 내가 뇌경색이라 말도 잘 못 하고 걷지도 못한다는데 멀쩡하게 걸어 다녀서 미안하다”며 “약국에도 안 가봤다”며 건강 이상설을 일축했다. 되려 “오늘은 나이 든 사람이 많이 왔는가배. 와이리 기운이 없노”라고 관객들을 안심시켰다. 야리꼴랑하게 노래가 슬퍼지려 할 때는 “내게 힘을 달라”며 손가락 하트를 요청했고, “몸의 나쁜 기운을 모두 빠져나가게 해주겠다”며 힘찬 박수를 유도했다. 무대 좌우는 물론 한가운데 설치된 계단까지 뛰어오르며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뽐냈다.
한복 차림으로 부채를 들고 ‘공’을 부르던 그는 “일부러 중간에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띠리’라는 후렴구를 넣었다”며 노래를 빙자한 진심을 털어놓았다. ‘띠리~’ 한 번에 “내가 정치하고 국회의원 하면 노래는 누가 부르나”며 속내를 내비쳤고, ‘띠리~ 띠리~’ 두 번에 “행복하셔야 합니다. 쎄가 빠지게 벌어서 지 알아서 지가 써야지. 1년에 한 번씩 나훈아 구경 오고”라며 지속적인 활동을 암시했다. 곧바로 “이건 그냥 농담이고”고 얼버무렸지만, 관객들은 “이제 1년에 한 번씩 볼 수 있는 거냐”며 행복해했다. “앵콜 대신 아름다운 우리말 ‘또’를 쓰자”는 나훈아의 제안에 “또!” “또! 또!”가 이어지자 ‘내 청춘’과 ‘갈무리’를 부르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23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앵콜 나훈아 드림 콘서트를 찾은 관객들이 기념 LP와 CD를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민경원 기자
공연이 끝나고 기념 음반을 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일기도 했다. 나전명기 장인이 만든 1000장 한정판 LP와 히트곡 선집을 사고자 하는 팬들이 몰려드는 등 아이돌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지난해 전국투어가 서울ㆍ부산ㆍ대구 등 3곳에 그쳐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 올해는 23~25일 서울을 시작으로 31일 청주, 4월 13~15일 부산, 20~22일 대구, 28일 전주 등 보다 많은 공연이 준비돼 있다. 5월에는 5일 울산, 12일 인천, 19일 원주, 26일 대전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하반기에는 창원ㆍ천안ㆍ일산ㆍ수원ㆍ광주ㆍ강릉ㆍ제주ㆍ아산ㆍ부천ㆍ진주ㆍ안동ㆍ춘천 등지에서 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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