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압박에 허위 계약까지, 우린 '벼랑 끝'에 있습니다

김주환 2017. 12. 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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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하기 좋은 세상 ①] '노동기본권 보장하라'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외침

[오마이뉴스 김주환 기자]

 11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2교 인근 광고탑에서 건설근로자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고공시위를 벌인 건설노동자들이 119구조대 등의 도움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국회가 내려다보이는 서울2교 광고탑엔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 '건설근로자법 개정안 통과'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 광고탑 난간 위에 2명의 건설노동자들이 차가운 강바람을 맞아가며 18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국회 정문 앞에선 '노동기본권 보장'과 '노조 필증 발급'을 요구하며 양주석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이 19일 간의 노숙농성을 진행하다 병원에 실려갔다.

대리운전노동자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과 노조 필증을 요구했다. 또 광고탑에 오른 건설 노동자들은 ▲ 10년 동안 하루 4000원으로 동결된 퇴직금 현실화 ▲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같은 날, 전국 2만 명의 건설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일손을 놓고 여의도에 모여 국회에 절박한 요구를 전달했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광고탑 위에 올라갔던 건설노동자들은 지상 위로 내려왔고, 노숙농성은 마무리됐다. 겨울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왜 이들이 노동자라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는 노동기본권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한 투쟁을 벌이게 된 걸까? IMF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본격화 한 정부와 자본은 파견법을 강행하면서 대리운전, 퀵서비스, 학습지, 보험모집인, 덤프, 레미콘, 화물운전 노동자들에게 '특수'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노동기본권을 부정하였다.

정부는 위 노동자들이 자영업자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학습지 노동자와 보험 모집인은 회사가 고용 책임을 피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강제로 개인사업자 신고를 하게 한 것에 불과하다. 대리운전,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개인사업자 신고조차 없다. 그리고 덤프, 레미콘, 화물운전 노동자들은 버스운전 기사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사용자와 정부가 그 책임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 낸 '위장' 자영업자들이다. 기업은 '특수'라는 단어를 붙여 노동자들의 발을 묶어놓고 운임은 동결하고 비용을 노동자에게 떠넘겼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에겐 '계약 해지'라는 형태의 해고를 일삼았다.

대부분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생존의 위기에 내몰렸다.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은 단결할 권리를 요구하면서 지난 20여 년 동안 절박한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그간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김태환, 박종태, 정종태, 이지현 열사 등 많은 노동자들이 '특수'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등져야 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은 260만 명에 이르게 됐다. 이들 대부분은 노동기본권은 물론이고 각종 사회보험에서도 배제된 체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업체에 뜯기는데 자영업자라니... 거리로 나온 이유

 11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열린 '2017 건설노동자 총파업 결의대회'를 마친 전국건설노동조합 노조원들이 청와대를 향한 행진을 위해 마포대교를 점거해 마포대교 남단이 시위자들과 퇴근길 차량으로 꽉 막혀 큰 혼란을 빚고 있다.
ⓒ 연합뉴스
10년 동안 일한 건설노동자의 퇴직금이 1천만 원도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건설기계노동자들은 이마저도 받을 수 없다. 회사에서 억지로 떠넘긴 레미콘 차량을 운행하는데, 운임단가가 맞지 않아 운행할수록 가족의 생활비조차도 충당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버스기사에게 '버스를 사서 운행하라'고 하는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경우를 감내하는 게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자본은 일감을 빌미로 노동자에게 억대가 넘는 덤프트럭과 화물차를 살 것을 강요한다.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빚을 내 차를 살 수 밖에 없다.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자본의 이윤을 위해 화물 노동자들은 차량 값까지 대신 내주고 있다.

학습지 선생님들에게 학생을 가르치는 것 외에 영업을 강요당한다. 실적이 저조하면 해고 위협에 시달리고, 허위로 계약을 만들고 수업료를 대납하는 황당한 상황까지 생긴다. 심지어 이에 지친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다.

대리운전과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20~30%에 이르는 과도한 수수료는 물론이고, 각종 보험료에 프로그램비 등의 비용을 뜯긴다. 또 일하지 않으면 벌금까지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수익의 절반 가까이를 업체에게 빼앗긴다.

우리가 일상 접하고 있는 택배·퀵서비스·대리운전노동자·배달·재택집배원, 우리 아이를 가르치고 있는 학습지 교사, 친인척 중 한 명쯤은 있을 보험모집인, 건설현장의 덤프·레미콘·굴삭기·타워크레인 노동자,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화물노동자... 모두 생계를 위해 남처럼 아니 남보다 더 힘든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일 뿐인데, '특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버티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촛불의 힘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ILO와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기다리면 될 텐데, 왜 추운 겨울날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느냐고?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절박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간 정치권은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대책을 공약(公約)하였으나 번번이 공약(空約)으로 끝나버렸다. 이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우선 행정 조치 등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해결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대리운전노조의 조직변경신고에 대하여 허가제를 방불케 하는 보완 요구를 반복하면서 두 달여를 끌더니 변경신고사항이 아니라는 형식적인 이유를 들어 반려했다. 국회에선 건설근로자법 개정안이 법안심사소위에 올랐으나,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끝났다. 손 쉬운 돈벌이를 포기할 수 없다는 기업의 입장 또한 그대로다.

벼랑끝에 내몰린 노동자들,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이 정·재계의 화두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새로운 일자리 유형이 바로 '플랫폼 노동'(디지털 플랫폼을 매개체로 하여 일자리가 거래되는 형태)이다. 플랫폼 노동은 절망의 벼랑에 서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일자리가 양극화된 한국 사회의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왜곡된 일자리를 정상화해야 한다. 정부는 노동조합의 조직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시작은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경기가 호전된다고 하는데 노동자,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기가 좋아져도 극심한 양극화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그 핵심 해결방안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미 위험 수위에 달해 있는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대책과 실천이 필요하다.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에게 더 많은 임금을 보장하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사용자가 자신의 책임을 면하거나 비용을 줄이기 위한 비정규직 사용을 자제하게 될 것이다. 실제 일부 국가에서는 비정규직에게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일수록 노동기본권을 더 원활하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도 이 사회의 260만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배제돼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생존의 위기에 처한 당자자의 절박한 외침이기도 하지만 이 사회에 희망을 만들기 위한 과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부는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한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 연대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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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주환씨는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정책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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