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마비 딛고 장애인들과 영화 작업 "노력으로 편견 깨자"

윤석만.이태윤 2017. 11. 2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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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학습대상 영화감독 김종민씨
세 살 때 머리 다쳐 오른손만 이용
비디오가게 점원 하다 영화 눈떠
장애인 대상 강좌서 함께 꿈 키워
24일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을 수상하는 김종민씨가 노트북으로 들고 포즈를 취했다. 노트북 속 화면은 김씨가 장애인들과 함께 제작한 단편영화의 한 장면이다. 임현동 기자
“학습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예술입니다. 마치 영화처럼요.” 지난 20일 영화감독 김종민(38)씨는 '학습'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천시 산곡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왼쪽 팔과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뇌병변 편마비’ 장애인이었다. 그는 3살 때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며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고 한다. 말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왼쪽 다리를 약간 절고 왼쪽 손도 불편하다. 노트북을 쓸 때도 타이핑을 오른손으로만 한다. 현재도 날씨가 추워지면 마비 증상이 심해진다. 그는 현재까지 장편 다큐멘터리 1편과 단편 영화 3편을 찍었다.

김 감독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3년 6월 1학년 때 고교를 그만둔 이후다. 고교 입학 이전부터 그는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이 덕분에 남들과는 세상을 좀 더 다르게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학교에서 여러 가지 과목을 암기식으로 배우기보다는 좋아하는 책을 자유롭게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학교를 그만둔 뒤 그는 철학·인문학 분야의 책을 손에 닿는 대로 읽었다.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 3~4편씩 영화를 봤다. 영화계의 거장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비디오 가게 점원 출신이었다는 사실도 이때 알게 됐다. 그처럼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영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눈치챈 손님 중에선 영화를 추천해 달라는 이들도 생겼다.

김씨는 지역 문화센터 등 영화 관련 강의를 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 나섰다. 인천인 집에서 서울로 매일같이 영화를 공부하러 다녔다. 학점은행제를 이용해 전문지식도 쌓았다. 실무를 배우기 위해 촬영현장에서 스태프로 일했다.
김종민씨가 인천 산곡동 집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김씨는 3살 때 머리를 다쳐 왼손과 왼다리가 불편하다. 그는 노트북을 쓸 때 오른손으로만 타이핑을 한다. 임현동 기자
그러나 영화 일만으론 생계를 잇기 어려웠다. 부동산과 자동차 영업, 웨딩홀 촬영 등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영화의 꿈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2012년 감독으로서 '다리 놓기'라는 영화를 첫 작품으로 찍었다. 청각장애인 여성이 시각장애인 남성을 만나면서 빚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작품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는 자신의 재능을 주변에 베풀었다. 2012년부터 초·중·고교생에게 UCC 제작, 영화 등을 가르치고 있다. 김 감독은 “내가 배운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면서 또 한 번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그에게 가장 뜻깊은 일은 장애인들에게 영화를 가르쳐준 것이다. 경기도 용인시 장애인 평생교육시설인 ‘우리동네평생교육학교’에서 장애인 대상의 영화 교실을 운영하게 됐다. 이곳 수강생들과 지난 7월엔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시나리오 작성과 연기·촬영·편집을 모두 김 감독과 그의 수강생들이 맡았다. 영화 제작에 드는 비용은 그가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에 자비를 보태고 주변 도움으로 충당했다.

이 영화는 제목이 ‘하고 싶은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김 감독처럼 뇌병변 장애를 가진 남성이다. 또박또박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주인공이 호감을 가진 카페 여종업원에게 '아메리카노 주세요'라는 말을 건네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 김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수강생들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에 따르면 그가 수업 초반에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는 수강생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함께 영화를 만들면서는 반응이 달라졌다. 김 감독은 "수강생 중에 영화로 자기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는 이도 있더라"며 “장애인들이 더 큰 꿈을 갖고 꿈을 이루는데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종민씨의 영화교실 수강생들이 그에게 보낸 메시지. 그는 2012년부터 초·중·고교생에게 UCC 제작, 영화 등을 가르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김 감독은 이처럼 스스로 꾸준히 평생학습을 실천하고 주변에 모범이 된 공로를 인정받아 김 감독은 24일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국무총리상)을 받는다. 본지와 교육부·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공동 주최하는 상으로 올해 14회째다. 평생학습을 위해 노력한 개인과 평생학습 확산에 기여해 온 단체에 주는 상이다.

김 감독의 다음 목표는 장편영화 제작이다. 현재 두 편의 시나리오를 작업 중이다.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엔 편견과 오해가 가득하지만, 사람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 끊임없이 배우고, 남들에게 알려주면서 세상의 편견들을 바꿔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 우수상(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은 김용이(52·대전 대덕구)씨와 박병준(48·경남 창원시)씨가 받는다. 김씨는 자동차 공업소를 운영하는데 40대 중반 나이에 대학생이 됐다. 하루 4시간씩 자며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산업인력공단의 현장 교수로 선정돼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박병준씨는 국가기술자격증을 17개나 땄는데 현재도 대학원 박사과정에 다닌다. 현재는 자기 이름을 넣은 전기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박씨는 어릴 적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고고 졸업 후 바로 취직했다. 이후 20여년간 일과 학습을 병행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고자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 활동도 한다.

제14회 평생학습대상 수상 명단
단체 부문 수상자로는 경남 김해시청, 서울 서대문구청, 안산시평생학습관 등 세 곳 선정됐다. 경남 김해시청은 작은도서관 문학 강좌 등 독서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청은 284개의 소규모 학습공동체를 만들어 주민의 평생교육을 돕고 있는 공로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안산시평생학습관은 길거리 학습관을 운영하며 생활밀착형 평생학습을 실천하고 있다. 올해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 시상식은 24일 오후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열린다.

윤석만 기자, 인천=이태윤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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