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레나강을 가다] '소수민족' 야쿠트인, 러시아인과 융화.. 극동지역 개척 전초기지로 우뚝 서다
야쿠츠크의 제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비. 말을 타고 달리는 야쿠트 민족 영웅 ‘만차리’의 조각이 세워져 있다. |
이후 신생 소비에트 정부는 1922년 야쿠티야 자치공화국을 만들고 야쿠츠크를 그 수도로 정했는데, 야쿠츠크는 오늘날 영구 동토 지대에 건설된 도시 중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우리나라 창원과 자매도시 관계를 맺고 있는 야쿠츠크의 2017년 총인구는 약 30만명에 이르는데 이중 야쿠트인이 약 50%를 차지하고 러시아인이 40% 정도, 그 외에 우크라이나, 키르기스, 에벤키, 부랴트, 아르메니아, 에벤인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에는 우즈베키스탄, 체첸 등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이주해 오는 무슬림 인구도 늘어남으로써 두 곳의 회교사원도 생겨났다.
베케토프와 야쿠트인의 첫 만남. 레나강 중류 지점에 있는 야쿠츠크는 1632년 베케토프라는 러시아인이 강 우안에 요새를 건설하면서 만들어졌다. |
올해 7월 야쿠츠크 시내를 거닐면서 마주친 동상과 기념물은 무척 새롭게 다가왔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지난 25년여 동안 주로 우랄산맥 서쪽 지역, 우랄 및 서시베리아 지역에 위치한 도시를 방문했는데 그곳은 모두 러시아인이 주민의 대다수를 이루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봐왔던 기념물, 동상의 주인공은 대부분 러시아인이었는데 이곳 야쿠츠크 길거리에서 마주친 동상의 주인공은 확연히 달랐다. 러시아인과 함께 한국인처럼 생긴 야쿠트인이 동상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외에도 동상의 모티프도 러시아인과 소수 민족, 즉 야쿠트인 간 교류, 화합 그리고 조화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많았다. 따라서 이들 동상은 필자로 하여금 이곳이 러시아의 극동지역, 특히 러시아인보다 지역 소수민족이 더 많이 사는 야쿠츠크임을 새삼스레 일깨워 주었다.
이 같은 기념물의 예로 2007년 야쿠츠크 도시 설립 375주년을 기념하여 레나강변에 세워진 33m 높이의 기념탑 하단부에 설치된 거대한 부조를 들 수 있다. 기념비를 둘러싼 4개의 부조 중 하나는 러시아 탐험가 베케토프와 야쿠트 원주민 간의 첫 만남을 묘사하고 있고, 그 옆 부조는 1880년대 러시아 정부에 의해 야쿠츠크로 유형 보내져 이곳에서 살면서 최초의 야쿠트어 사전을 편찬했던 러시아인 언어학자 페카르스키와 야쿠트인 지식인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세 번째 부조에는 러시아인 정교회 사제가 야쿠트인에게 세례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부조에는 모두 야쿠트인, 러시아인이 등장하지만 러시아인이 이곳에 와서 지역 주민에게 모피를 세금으로 거둔 억압 정책을 묘사한 부조는 없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기념물이 지방 정부의 허가와 지원으로 건립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러한 조형물은 오늘날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지방정부와 모스크바 중앙정부의 관계와 입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양 민족 간 조화와 화합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야쿠츠크 시내의 LG센터 빌딩. |
그럼 이 부부 동상의 주인공들은 누구일까? 실제 인물들이다. 러시아 남성은 세묜 데지네프로 1638년에 야쿠츠크로 와서 야쿠트 여인과 결혼했는데 동상의 여인상이 바로 그의 야쿠트인 아내 아바카야다이다. 데지네프는 이후 야쿠츠크에서 동쪽으로 탐험을 계속해서 추코트카 지역에 다다랐고 거기서 콜리마강을 따라 북극해로 나아가 동진하다가 베링해협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1648년 경 추코트카 지역의 아나디르 강어귀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곧 데지네프가 덴마크 탐험가 비투스 베링보다 베링해협을 80년 먼저 항해한 것을 뜻하고 동시에 아메리카 대륙과 마주한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 최초로 도달한 유럽인이라는 것이다. 야쿠츠크는 이렇게 러시아 탐험가들의 북동시베리아와 극동지역 개척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다.
송준서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HK교수 |
야쿠츠크 시내를 거닐면서 만났던 기념비, 동상들은 야쿠츠크가 러시아인들이 북동시베리아와 북태평양 지역을 탐험·개척할 수 있게 하여 유라시아 대륙 동편 끝까지 이르는 영토를 갖게 하는 데 전초기지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동시에 이들 동상은 야쿠트 민족은 17세기 러시아인들이 이 지역에 처음 나타난 이후 오늘날까지 조화와 화합의 묘를 발휘하여 러시아인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왔음을 보여주며, 그들의 ‘조국’ 러시아를 위해 시민의 임무를 충실히 다해왔음을 보여준다. 한국이 향후 북극권을 통한 물류를 개발하고 시베리아지역 자원개발 참여를 위해서는 극동 연안 지역에서 더 내륙으로 들어가서 북동시베리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해왔던 야쿠츠크를 방문해 이민족들과 조화와 화합을 이루어내고 유지해온 야쿠트인들의 경험과 전통을 배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송준서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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