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장 있다고 '꽃길'만 걷는 거 아니잖아요

2017. 9. 2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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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교육] 학교 밖 청소년, 길을 찾다

[한겨레]

쌀(맨 왼쪽)과 솔(맨 오른쪽)은 지역에서의 자립을 꿈꾸며 가정집을 리모델링해서 충남 금산 유일의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가운데는 이들을 도와준 친구 김희진씨. 연하다 여관 제공

대학 진학 대신 ‘나만의 길’ 찾는 이들
일찍 세상 경험하며 하고픈 일 찾아
자립 꿈꾸며 지역 청년문화 만들고
외식업 등 생활 속 문제점 발견 뒤
직접 솔루션 만들어 창업까지 해
스스로 선택하니 실수도 값지다 생각

충남 금산의 유일한 게스트하우스 ‘연하다 여관’(이하 연하다, www.facebook.com/yeonhada). ‘지구에는 연하게(생태적으로), 지역에는 진하게 발자국을 남기자’는 뜻으로 지었다. 지난 5월 가정집을 개조해 문을 연 이곳의 주인은 ‘쌀’(전하연)과 ‘솔’(이다솔)이다. 서로 나이 차이도 나고 숙박하러 오는 사람들이 호칭을 어떻게 할지 애매하다고 생각해 별명을 부른다. 20대 청년인 두 친구는 대학 진학 대신 지역에서 자립하는 것을 택했다.

“고등학교 때 서울시 청년공간인 ‘무중력지대’에서 2주간 인턴을 했다. 그때 공간이나 기획에 관심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솔의 말이다. 실제 연하다는 단순히 숙박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청년문화복합공간으로 자리매김하려 애쓰는 중이다. 한 달에 한 번 마을장터를 열어 주민들의 재능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참가자들은 사진을 찍어주거나 직접 만든 공예품을 팔았다. ‘하나만 하는 워크숍’을 기획해 드림캐처(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주로 만드는 수제 장식)를 만드는 등 누구나 강사와 수강생으로 참여할 수 있는 행사도 열었다.

‘그래도 일반 고교나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많은 학생이 공교육을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런 코스를 밟았다고 해서 무조건 잘되는 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제도권 교육이 아닌 대안학교에 가거나 자퇴 뒤 혼자 공부하는 등 ‘학교 밖 경험’으로 자기 갈 길을 찾은 친구들도 있다. 이들은 “우리가 걷는 길이 분명 쉬운 길은 아니지만 ‘꽃길’만 깔린 인생은 어차피 없지 않으냐”고 입을 모은다.

지방에서 게스트하우스 열어 자립 기반 마련 연하다는 올해 초 충남 사회적경제네트워크의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으로 18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인건비는 따로 책정이 안 돼 편의점, 커피숍 알바, 포스터 디자인 등 투잡, 스리잡을 뛰면서 준비했다. 리모델링하고 집기를 들여놓을 때는 주변 친구들이 힘을 보탰다.

쌀은 “대학생인 친언니를 지켜보니 과제에 치여 힘들어하고 정말 배우고 싶은 걸 배우는지 모르겠더라.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삶 속에서 직접 부딪히며 배울 수 있을 거 같았다”고 했다.

솔도 “대학이라는 틀에 나를 맞추는 데 반항심 같은 게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대학은 특정 전공 하나를 택해야 했다. 가장 활동적인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대학은 나중에 필요하면 가자고 생각해 창업을 선택했다”고 했다.

쌀은 서울, 솔은 경기도 출신이다. 하지만 지역에서 자립하며 청년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이들은 “지역은 청년 문화가 없다. 주변에도 우리 또래가 있지만 부모 사업을 물려받거나 집에만 박혀 있다”며 “꼭 숙박하지 않더라도 연하다를 오가며 놀다 갈 수 있는 공간, 청년 아지트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남들이 안 가는 길인 만큼 열심히 살면서도 조바심이 날 때가 있다. 둘은 아직 인건비도 안 나오는 상황이라 다양한 수익 사업을 구상 중이다. 인근 가게와 상생하자는 뜻에서 상품권을 만들어 숙박객에게 나눠줬고 금산에 자전거길이 많아서 코스를 만들어 자전거를 대여하는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자퇴나 비진학 등 학교라는 테두리를 나오려는 후배들에게 건넨 그들의 한마디. “주변에 홈스쿨링 하거나 혼자 여행하는 친구들이 있다. 이들은 사람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며 상처받는 걸 힘들어했다. 하지만 혼자 공부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외롭고 어려웠다고 하더라. 무엇을 결정하든 주변 사람들을 만나라. 서로 배울 수도 있고 뭔가 시작할 때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쌀)

“조금 무모해져도 괜찮다. 미래 행복을 위해 지금 행복하지 않은 일을 한다지만, 나중에는 그 행복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지금 행복한 일을 일단 해보라. 그래야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제대로 알 수 있다.”(솔)

‘노쇼’ 고객 방지 예약 시스템 만들어 창업 서울시 마포구 서울창업허브 8층에 있는 ‘테이블 매니저’(www.tablemanager.io). 이 업체를 운영하는 최훈민(23)씨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한국디지털미디어고를 다니다 자퇴하고 제도권 교육을 비판하는 1인시위를 벌였다. 이후 학생이 주도하는 ‘희망의 우리학교’를 만들어 교육운동을 벌였다. 청소년 선거권을 요구하며 모바일 모의투표 시스템을 만들어 진행하기도 했다.

2년여 동안 활동하면서 그는 청소년들을 만나러 돌아다니고 서명을 받으려 애썼다. 그 과정에서 아이티(IT)를 활용한 것이 전환점이 됐다.

“오프라인에서 여러 행사를 꾸려본 적이 있는데 장소 섭외, 사람 모으기 등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러다 에스엔에스(SNS)를 활용해봤다. 순식간에 2000명이 참여하고 언론에서 먼저 관심을 보이며 연락해왔다. 아이티가 단순 기술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도구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는 이를 계기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시장조사를 하고 아이템을 바꾸다 음식점에서 방문 예약하는 고객을 관리하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일명 ‘노쇼’(예약해놓고 방문하지 않는 경우) 고객 방지 시스템이다.

'테이블 매니저' 최훈민 대표는 '노쇼' 고객 방지 예약 시스템을 개발해 창업했다. 최화진 기자

최 대표는 2014년 창업해 현재 14명의 직원을 두고 150군데 업체를 관리하고 있다. 처음부터 잘 풀렸던 건 아니다. 가지고 있던 돈 500만원으로 시작해 초반 어려움을 겪을 때는 부모님 카드를 빌려 점심을 해결하기도 했다. 중학교 때부터 배운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술로 웹사이트 만드는 알바도 했다.

“레스토랑을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설명하고 한 곳씩 계약을 맺었다. 사실 ‘노쇼’ 고객도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만든 시스템은 전화가 오면 사전에 방문했던 고객 정보가 3단계(당일 취소-노쇼-블랙리스트)로 떠서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테이블 매니저' 누리집 화면 갈무리.

교육운동 경험 덕에 사람들을 만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괜찮다는 판단이 들면 주저하지 않고 부딪쳐봤다.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고등학교 중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었을까. “자퇴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대단하다고 했다. 내가 이상한 결정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똑같은 결과물을 내도 당연히 하버드대 나온 사람이 나보다 더 좋은 대우나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를 그만뒀던 것은 나에게 그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학력 자체가 의미 없다는 게 아니라 투자하고 희생하는 것에 비해 의미가 있다거나 효율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그는 “학교를 그만둬도 큰일 나지 않으며, 학교에서 모든 학생을 한길로만 가게 하는 것, 모든 학생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그는 현재 생활정책연구원에서도 활동 중이다. ‘내 삶을 바꾸는 깨알정책’을 모토로 생활 속 소소한 변화를 위해 연구하고 직접 정책을 제안하는 시민단체다. 교육에 관심이 사라졌거나 딴 길로 샌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활동 영역이 넓어진 셈이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맞다 싶으면 과감히 도전하라”고 했다. “대학을 나와도 막연한 불안감이 생기는 건 똑같다. 주변의 시선이나 남의 말을 듣고 포기하면 안 된다. 내가 선택한 일이라면 그걸 하다가 실수를 해도 제대로 반성할 수 있다. 내 선택이 아니면 문제가 생겨도 남 탓을 하거나 뭘 잘못했는지 몰라 잘못을 반복하게 된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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