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만 누르면 '자동 청소' 되는 집, 이미 있다

2017. 8. 2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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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의 미래창
미국 발명가 프랜시스 게이브
67살에 완성한 30년 집념의 작품
여성의 가사노동 해방 소망 담겨
"집은 여성이 집안일로 무릎 꿇는 일에
하루의 절반을 보내도록 설계돼 있다"

[한겨레]

91살 때의 프랜시스 게이브와 자동청소주택, 핵심 장치인 천장의 스프링클러. 그레그 벤슨(Greg benson)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자동세탁기를 꼽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들이 고된 빨래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도구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세탁기로 빨래가 수월해지는 바람에 가사노동의 양이 되레 늘어난 측면도 있다. 사실 버튼 하나로 모든 게 작동되지 않는 한 가사노동이 번거로운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바로 그런 것이 가능한 집을 만드는 데 일생을 바친 여성이 있다. 지난해 말 101살로 숨을 거둔 프랜시스 게이브라는 미국 여성이다. 그는 지금까지도 전무후무한 세계 유일의 자동청소 주택을 만든 발명가다. 최근 그의 삶을 재조명한 <뉴욕 타임스> 등에 따르면 그는 자동청소 주택을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사노동은 고마워하는 사람도 없고 끝도 없는 일이다. 신경이 곤두서고 지루한 일을 누가 하고 싶겠는가? 여성 해방에 대해 좋은 말은 뭐든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집은 아직도 여성이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숙이는 따위의 일에 하루의 절반을 보내도록 설계돼 있다.” 그가 손수 설계, 제작해 1982년에 완성한 자동청소 주택은 버튼만 누르면 스스로 씻고 헹구고 말려 집안을 청결하게 해준다. 이 집을 구상한 지 약 30년, 제작을 시작한 지 10여년 만에 이룬 결실이었다. 그때 나이가 67살이었다.

게이브가 특허를 받은 ‘자동청소 주택’ 발명 장치들. 번호 ‘20’이 쓰인 장치가 스프링클러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각방 천장에 달린 스프링클러다. 벽에 부착한 버튼을 누르면 스프링클러가 세 단계로 작동한다. 첫 단계에선 아래쪽으로 비눗물 안개를 뿌려준다. 두번째 단계에선 이를 헹궈준다. 마지막 단계에선 따뜻한 공기를 뿜어 말려준다. 물과 비누를 돌아가며 뿌려준 뒤 공기로 말려주는 것이 자동세차 방식을 닮았다. 청소한 물은 경사진 바닥 배수관을 통해 밖으로 배출돼 개집까지 씻겨준다.

음식을 먹고 난 접시를 씻어서 그 자리에서 건조시키는 찬장, 캐비닛 안 옷걸이에 옷을 걸고 물과 공기를 뿌려 옷을 세탁·건조해주는 세탁 캐비닛도 있다. 특히 세탁 캐비닛은 옷장과 체인으로 연결돼 세탁 후엔 옷걸이에 걸려 있는 상태 그대로 옷장에 집어넣을 수 있게 돼 있다. 이 집에는 이런 발명 장치들이 무려 68개나 있다. 전통 주택들은 이런 물청소 세례를 견뎌낼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방과 마루의 바닥을 광택제로 코팅하고 가구는 투명 아크릴수지로 덧칠하는 등 다양한 방수 처리를 했다. 1984년 특허를 받은 이 주택은 많은 신문, 잡지에 소개되면서 단번에 유명세를 탔다.

자동청소 주택의 영감은 결혼 후 2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무화과잼이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는 정원에 있던 호스로 잼을 씻어냈다. 자동세척 아이디어가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동청소 주택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주택 모형을 만들어 돌아다니며 설명회를 열었다. 상품화를 위해 제조업체들과도 접촉했다. 하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그는 실패 이유를 진공청소기나 세탁기 업체들의 농간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년엔 특허 유지비를 마련하지 못해 2002년 특허권을 잃고 말았다.

자동청소 주택은 뜻하지 않게 여성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집을 청소할 필요가 없다면 남편들이 자신들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여성들의 항의에 그는 가사노동을 할 시간에 남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남편들이 그걸 더 좋아하지 않겠느냐고 대꾸해줬다.

게이브가 직접 제작한 자동청소주택 모형. 헤이글리박물관 소장품이다.

기이한 구경거리이던 그의 주택은 나중에 페미니즘 학자들로부터 기능성과 매력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여성 코미디언은 그를 러시모어산의 큰바위얼굴에 추가해야 한다는 찬사를 보냈다. 그럼에도 자동청소 주택이 끝내 외면받은 이유는 뭘까? 영국의 사회학자 주디 와이즈먼은 “남성 엔지니어들의 어젠다에서 우선순위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게이브도 생전에 “집이 갖고 있는 문제는 남자가 설계했다는 점이다”라며 “그들은 너무 많은 공간을 만들어 놓았고, 그것을 관리하는 일은 그들이 아닌 여성의 몫”이라고 말한 바 있다. 주변 사람들은 게이브한테 20년 후를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현실은 그를 끌어안을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을까?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발명 장려 프로그램 웹사이트의 게이브 소개글은 이런 말로 끝맺는다. “그의 집은 일부 사람들의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집의 많은 편의장치와 주택 모델은 장래 실제로 채택돼 사용될 것이다.” 엠아이티의 예측은 과연 들어맞을까? 희망사항일 뿐일까?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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