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그것이 알고 싶다'

이범준 기자 2015. 2. 2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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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들 때문에 붙잡혀 갈까… 단 10분 만에 문답으로 이해하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을 아십니까? 어려운 단어가 줄줄이 등장하는 것이 이름만 봐도 어렵지요. 일명'김영란법'으로 불리는 그 법안입니다. 들어보기는 했어도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겠고, 법 없이도 사시기 때문에 관심이 없다고요? 더구나 공무원도 언론인도 아니라 관계도 없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령 여러분의 아들이 대학에 다닙니다. C학점을 하나 받아 장학금을 못 받을 상황이 됐다고 합니다. 담당교수를 찾아가 재채점을 요청하며 읍소했다면 부정한 청탁일까요, 아닐까요? 기자가 무슨 이런 황당한 예로 '약을 파냐'고요? 제가 지어낸 게 아닙니다. 실제로 지난 1월 국회에서 의원들이 심각하게 논의한 내용입니다. 김영란법에는 사립학교 교원도 포함됩니다.

현재 김영란법안은 3단계 국회 처리절차 가운데 2단계에 있습니다. 지난 1월 공무원 관련 법안을 담당하는 정무위를 통과했고, 법기술적인 측면을 살펴보는 법제사법위원회에 있습니다. 이후 본회의만 통과하면 시행됩니다. 그러면 이 법안 그대로 일상으로 파고듭니다. 대상은 공무원을 만나야 하는 시민 모두입니다. '10분 만에 이해하는 문답식 김영란법', 이제 시작합니다.

Q '김영란법'은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만들었다? No!

A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언론인 포함을 비롯해 논란이 되는 많은 부분이 김 전 위원장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공무원이 금품을 수수하면 대가성이 없어도 처벌한다는 것은 2012년 8월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입법예고된 것이 맞다. 이 부분이 김영란법의 핵심이다. 하지만 정부를 대표하는 법무부는 의견수렴 등을 이유로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듬해인 2013년 5월 오히려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입법예고안을 참고해 유사법안을 잇따라 낸다. 김영주 안과 이상민 안이다. 8월 들어 정부가 법안을 냈고, 10월에는 민주당 김기식 의원이 또 다른 법안을 낸다. 모두 4개의 법안이 묶여 토론이 됐고, 지난 1월 정무위를 통과할 때 다시 대폭 수정됐다. 원안과는 크게 달라졌다. 이제는 정무위 안이라고 부르는 게 낫다.

Q 금지되는 부정청탁은 딱 15개 유형으로 정해져 있다? YES!

A 김영란법이 새롭게 금지한 부정청탁은 금품 전달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그 자체로 불법이다. 정부 안에서는 '법령을 위반하거나 지위·권한을 남용하게 하는 청탁·알선 행위'였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무엇이 부정한 청탁인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예외 유형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선출직 공직자·정당·시민단체 등이 공익을 목적으로 법령 개폐를 요구하는 경우 등이다. 정당한 청탁인 셈이다.

하지만 국회는 정부 안이 불법을 포괄적으로 정하고 합법을 예외적으로 허용해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사 처음에 나온 사례인 학점 수정 요청을 예로 들었다. 처음은 정당하지만 두 번이 되면 부당하다고 했다. 그래서 무엇이 부정한 청탁인지 명확히 하겠다며 15개를 만들어 정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부정청탁은 15가지만 존재하게 됐다. 정무위 의원실 한 관계자는 "일단 이렇게 정했지만 상황을 봐가며 차차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부정한 청탁에 대해 국회 본회의가 매번 새로 정해야 한다.

지난해 5월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김영란법을 심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언론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방안이 논의됐고, 결국 올해 1월 공공기관에 언론사를 포함시켜 통과시켰다. 이 부분이 논란의 중심이 되면서 논의의 방향이 바뀌어 버렸다. / 박민규 기자

Q 한번에 100만원 또는 연간 300만원까지는 받아도 상관이 없다? No!

A 현재 형법에 정해진 뇌물죄는 금액에 상관없이 범죄다. 기소와 재판 과정에서 형량이 달라질 뿐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5만원도 뇌물이다. 2013년 대법원은 10만원도 안 되는 축의금은 뇌물이 아니라는 항소심을 뒤집었다.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았다면 뇌물"이라고 했다. 따라서 얼마가 되더라도 뇌물이다. 다만 반드시 대가성이 있어야 하는데, 대가성이 있으려면 직무 관련성이 전제다. 그렇지 못하면 수십억원을 받아도 무죄다.

이런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바로 김영란법이다.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 없는 금품을 처벌하려는 것이다. 권익위 안은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형사처벌, 없으면 과태료였다. 대가성은 따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무위 안은 처벌 기준을 직무 관련성이 아닌 금품의 과다로 바꿨다. 동일인에게 1회에 100만원, 연간 300만원 초과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이다. 다만 100만원 이하 금품수수는 직무와 관련이 있을 때만 과태료를 물게 했다. 결과적으로 죄질은 직무 관련 100만원이 더 나쁜데도, 직무 무관 300만원이 더 무겁게 처벌된다.

Q 세금이 투입되어 국정감사를 받는 언론사만 김영란법 적용대상이다? No!

A 현재 정무위 안에서는 대한민국 모든 언론사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대상이다. 정확히 언론중재법 2조 12호에 따른 언론사인 방송·신문·잡지·인터넷사업자에 근무하는 대표자와 임직원이다. 따라서 잡지사의 운송직도, 인터넷사의 경비직도 이 법의 대상이다. 이유는 정무위가 적용 대상을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정하고, 공공기관에 언론사를 포함시켜서다. 권익위 원안에는 없던 내용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과정은 전혀 논리적이지가 않다. 당초 공공기관을 정의하면서 공직 유관단체를 포함시켰는데 여기에 KBS와 EBS가 들어 있었다. 이유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임원 선임 시 정부의 승인·동의·추천 등이 필요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똑같이 세금이 들어가는 MBC와 연합뉴스는 왜 빠져 있냐는 주장이 국회에서 나왔다. 하지만 두 회사에는 간접적으로 세금이 쓰일 뿐 직접적으로 투입되지는 않는다. 국정감사 대상도 아니다. 그런데도 두 회사, 특히 MBC를 빌미로 논의를 시작하다가 '같은 언론사'라는 잣대를 들이대 모든 언론사로 확대했다. 이런 식이라면 같은 법조인인데 판·검사는 포함되고 변호사는 제외된 이 상황도 이상하다.

Q 언론인에게는 금품을 주지 않으면 부정한 청탁이 통하지 않는다? YES!

A 김영란법은 한마디로 공직자에게 부정한 청탁을 하거나, 대가성 없이라도 금품을 건네면 처벌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여기에 언론인을 끼워넣으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의료인이나 금융인보다 언론인이 공적인 역할이 더 크냐, 공적 영향력만 치면 천재과학자나 방랑시인이 더 크지 않겠냐는 반론이 잇따랐다.

그러자 정무위는 언론인을 금품수수 처벌 대상에는 넣으면서도, 부정청탁 15개 유형에서는 언론인 관계조항을 만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언론인은 부정한 청탁을 받아도 돈이 오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좋게 이해하면 부정한 청탁을 받아도 꿈쩍하지 않을 존재라고 봤을 수도 있다지만, 그러면 공무원에 대한 모독이 된다. 정무위 관계자는 "언론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상민 위원장과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김영란법 처리방향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법사위가 여론의 움직임에 따라 정무위의 안을 대폭 손질할 가능성도 있다. / 강윤중 기자

Q 김영란법이 통과되면 검찰은 일에 치여 비명을 지를 것이다? No!

A김영란법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지적하는 것은 적용대상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언론인을 제외하더라도 모든 공직자와 공직 유관단체를 포함한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사혁신처가 지정한 806개 공직 유관단체에는 남해마늘연구소·임실치즈테마파크·산청한방약초연구소 등도 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검찰이 수많은 사건을 다 보지는 못할 것이고 결국 선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단기적으로는 검찰이 정치적 수사를 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법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된다. 간단히 말해 "왜 나만 가지고 이러냐"며 저항감이 생기고, 그러면 대중에게 법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앙대 로스쿨 이인호 교수는 "누구라도 어길 수 있는 기준으로 법을 만들면 안 된다. 법은 악한 사람을 목표로 해야만 전반적으로 효과를 낸다. 대상을 고위공직자로 축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Q 한 번도 보지 못한 친척들 때문에 검·경에 붙잡혀갈 수 있다? No!

A이완구 국무총리가 지난달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정무위 안을 보면 금품을 받으면 안 되는 '가족'은 민법 779조의 가족이다. 배우자·직계혈족·형제자매, 그리고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다. 직계혈족은 (조)부모와 (손)자녀다.

이 가운데 생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은 얼굴을 모를 수 없으므로, 배우자나 부모자녀나 형제자매 가운데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 총리의 집안이 어떤지는 몰라도 사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를 지냈던 이 총리가 쟁점사안을 몰랐을 리는 없고, 일부러 부풀려 거짓말을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는 원안에 없던 언론인이 더해지면서 위헌논란으로 이어지는 현재 상황과 관련이 있다. 형법은 키우면 키울수록 위헌세포가 생겨 죽게 마련이다.

이제 김영란법 기초를 마스터하셨습니다. 추가로 공부하실 분은 <주간경향> 홈페이지에서 참고자료를 다운받아 보시면 됩니다. 2013년 정부제출 원안(귄익위 안), 2014년 국회 정무위원회 공청회 자료집, 2015년 정무위원회 통과 안, 2015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 자료집입니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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