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제2의 단통법이냐 출판 살리기냐 '도서정가제의 괴로움'

2014. 11. 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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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부터 전면 실시되는 '정가제'에 대해 소비자, 출판, 서점업계의 시선과 반응은 복잡하다. 제도 도입 취지는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강자들에 맞서 약자들의 생존을 지원해 출판산업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있다. 하지만 입법취지를 살리기에 허점이 많다는 목소리도 높다. 보완대책과 기다림이 필요해 보인다.

'비정상가격' '올해 마지막 최대 할인 막차!' '마지막 세일, D-20'

대형 온라인서점 홈페이지 첫 화면마다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는 문구들이 자극적이다. 뒤따라오는 홍보문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대 90%까지, 추가 할인쿠폰이나 마일리지까지 제공한다며 유혹한다. 어디나 '도서정가제' 시행 전 마지막 할인이라는 내용이 강조되고 있다. 사려던 책은 없지만 다시 오지 않을 가격이라는 말에 괜스레 할인도서 목록을 내려보게 만든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지역 오프라인 서점의 모습. 지역서점들은 매출 다각화를 위해 북카페 등 다양한 영업방식을 도입하고 있지만 대형서점과의 경쟁에서 자생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 김태훈 기자

이통사와 대형서점 과점형태 비슷

오는 11월 21일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시행령 개정안 시행을 앞둔 출판·서점업계 풍경이다. 그날을 기점으로 전면적인 '도서정가제'가 실시된다. 이름은 도서정가제이지만 내용은 정가에 적용되는 할인폭을 고정시킨다는 것이 골자다. 지금은 신간의 경우 현금 할인 10%, 마일리지 등 추가 할인 9%를 합해 최대 19%까지 할인받아 책을 살 수 있다. 나온 지 18개월이 지난 구간이나 실용서, 초등학생용 참고서 등은 아예 정해진 할인율 없이 출판사나 서점이 자유롭게 할인율을 적용해 싸게 팔 수 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 이후로는 할인율이 총 15%를 넘길 수 없다. 출간 후 18개월이 지난 구간이건, 실용서나 참고서건 간에 예외는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책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제도다.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 든다. 그렇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과 닮았다. 사실상 과점 형태로 휴대전화 단말기 유통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이동통신사들의 자리에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을 대입시키면 구도도 비슷하다. 보조금으로 가격을 경쟁하던 휴대전화 시장처럼 도서 유통업계는 할인율과 마일리지로 치열하게 가격 경쟁을 벌여 왔다. 제도 시행 이후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가격 경쟁의 혜택이 사라지고 오히려 부담만 높아질 것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또 하나의 악법이 나온 셈이다.

그런데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단통법의 얼마 안 되는 순기능 가운데 하나가 알뜰폰 사업자처럼 저렴한 요금제로 승부하는 업체들의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도서정가제 역시 출판·서점업계에서는 슈퍼 '갑'인 대형서점들과 자금력 있는 대형 출판사들 사이에서 새우 등 터지고 있는 중소 출판사와 지역서점들을 위해 도입됐다. 입법 취지 자체는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강자들에 맞서 약자들의 생존도 지원하는 산업생태계 복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가격 경쟁을 제한하면 출판업계에서는 콘텐츠의 질로, 서점업계에서는 가까이서 구매할 수 있다는 편리함으로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 애초의 복안이었다.

취지는 좋다.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소비자다. 책값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주로 온라인 서점에서 초등학생 자녀의 참고서를 구입하는 주부 안은경씨(34)와 함께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고 있을 내년 1학기 책값을 예상해 봤다. 안씨가 3학년 2학기인 자녀 지용이를 위해 이번 학기에 산 참고서는 모두 5권이다. 국어·수학·영어 참고서 각 1권씩에 수학 문제집과 전과를 합해 모두 7만500원이 들었다. 20~25% 현금 할인을 적용한 액수에 마일리지는 약 1%가 적립됐다.

같은 참고서들을 내년 1학기에도 같은 가격에 산다고 가정하고 계산하면 현금 할인 최대한인 10% 할인율을 적용해도 8만2350원이었다. 현금 구매액으로 따지면 16.8%, 마일리지를 최대로 적립받는다 쳐도 책값이 11.8% 오른 것이다. 안씨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책값이 순식간에 10% 넘게 오른 게 아니고 뭐냐"며 "내년부터 아이를 학원에 보낼까도 생각했는데 학원에서 쓸 참고서 값 오를 것도 감안하고 계산해야겠다"고 말했다.

도서정가제 이후 시장에서의 비용과 편익을 분석하면 가장 큰 부담은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할인율이 높은 실용서나 참고서만이 아니라 전체 도서로 넓혀 분석을 해도 마찬가지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도서정가제 이후의 시장 상황을 예측한 보고서를 보면 소비자들은 책 1권당 약 220원씩 가격이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도서 평균가격인 1만4678원에서 1.5% 가격인상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진흥원이 시장 전체의 비용과 편익을 분석한 시나리오 중 가장 보수적으로 접근한 시나리오에서도 도서 수요가 7%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소비자와 대형서점에서 비용이 늘어나는 대신 지역서점 수는 2% 증가하는 등의 편익이 발생해 전체 경제효과는 7012억원에 달한다는 것이 분석의 요지다.

참고서 값 오르게 돼 학부모들 민감

이대로라면 소비자 부담 증가는 피할 수 없지만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의 시장점유율을 낮춰 지역서점 등 골목상권이 살아나는 효과가 생기는 셈이다. 그러나 학교 앞에서 문구 판매를 겸업하는 서점을 제외한 순수서점 수는 지난해 기준 전국 1625곳에 불과할 정도로 급격하게 줄어든 상황이다. 이 가운데 매장규모 100평 이상의 대형서점 318곳을 제외하면 지역서점 수가 2% 늘어난다고 해봐야 전국적으로 30곳에도 못 미치게 되는 셈이다.(박스기사 참조)

도서 수요가 줄고 출판시장이 더 빠르게 위축되면 중소 출판사부터 타격을 입는다. 중소 출판사 입장에서 도서정가제를 두고 기대와 불안이 뒤엉키는 이유는 복잡한 업계 사정 때문이었다.

"책이란 상품에서 가격이란 경쟁요소를 빼면 내용과 질로만 경쟁할 수 있을 것 같죠? 절대 안 그래요." 전체 직원 수가 10명이 채 안 되는 한 중소 출판사의 영업담당 김모씨(41)는 도서정가제에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 지금은 출판사도 너무 많고 책도 너무 많이 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 많은 책들이 고객들한테 잠깐이라도 노출되려면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보여야 되는데, 그건 작은 출판사에서는 하기 힘든 일이거든요." 애초에 마켓팅 비용에서부터 대형 출판사와 나란히 경쟁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책의 판매량은 대형서점 MD가 어느 책을 어디에 배치하는지에 크게 좌우된다. 출판업계에서 도서정가제의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서점 MD 입장에서는 소비자 판매가보다 출판사가 서점에 공급하는 공급가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 이후 판매가가 고정되면 공급가를 낮추려고 서점들 사이의 경쟁도 더 치열해지겠죠. 지금 (도서정가제) 시행을 앞두고 할인해서 막 풀어젖히잖아요. 그건 지금도 그 가격에 책을 들여와 판다는 거고, 정가제 하더라도 출판사한테서 그런 낮은 가격으로 받는 건 다르지 않을 거라는 얘기죠." 김씨는 공급가격은 낮게 유지되지만 상대적으로 판매가는 높아지면서 늘어난 차액은 고스란히 대형서점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가제로 생기는 편익을 중소 출판사와 지역서점으로 흘러들어가게 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 이유다.

중소출판사들 기대와 우려 교차

출판사들 입장에서 '비정상가격'으로 책을 공급하면서도 대형서점들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현금 수급이 힘든 유통구조 때문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시에 운영하는 소수의 대형서점들이 전체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동안 주로 지역서점으로의 유통망을 담당했던 광역도매상으로의 공급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수개월 단위로 결제대금 지급이 늦춰지는 등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불리한 도매상들의 대금 지급방식 때문에 상대적으로 결제주기가 짧은 대형서점에 대한 출판사의 의존도가 높아졌다. 생존을 위해 대형서점 의존도를 높이는 방향을 취했지만 그만큼 시장상황에는 더 민감해졌다.

도서정가제의 '나비효과'를 걱정하는 출판업계 관계자들의 불안은 이렇듯 복합적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대로라면 판매가 상승이 시장의 위축을 부르고, 인건비 비중이 높은 업종의 특성상 비용 절감의 방향은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외주화가 지배적인 추세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이 이상의 노동력 쥐어짜내기는 도서 콘텐츠 자체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도 우려된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오른 가격에 비해 도서에 대한 만족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정착되면 콘텐츠 질 향상" 주장도

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도서정가제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실정에 대해서도 손을 대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서정가제 자체의 취지와 역할을 다할 수 있으려면 유통과정에서 현금을 투명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시장구조를 바로잡는 보완대책이 함께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서정가제의 효과 분석을 위한 전문가 자문회의에서 도서출판 박이정의 박찬익 대표는 "도서정가제 자체로는 유통과정에서 출판사에 돌아오는 마진을 투명하게 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현금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며 "어음을 할인해서 쓰고, 자금 회전이 어려워 마진도 줄고 직원 인건비까지 제한되는 현실을 개선해야 정가제의 효과도 제대로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인디서점'을 표방하며 독자적인 출판유통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서울 마포구의 한 서점 내부 전경. | 강윤중 기자

소비자들에게 일시적으로 높은 도서 가격이 부담이 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도서정가제 정착으로 콘텐츠 질 향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실상 출판사 직원들의 저임금 구조를 용인하고 저자들에게 낮은 인세를 강요하는 '비정상가격' 체제를 개선하려면 초기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높아진 도서 정가를 바탕으로 인기작가가 아닌 한 6~7%대로 시작하는 인세를 저자들에게 10% 이상 보장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우수 콘텐츠가 나올 환경이 된다"며 줄어들 도서 수요는 콘텐츠 만족도 향상으로 보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수열 서점조합연합회 정무위원장도 "도서정가제는 새로운 투자의 개념으로 접근해 유통시스템 개선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후약방문이죠. 너무 늦게 나왔어요."

서울 종로구의 한 인문사회과학서점 책방지기인 양돌규씨(42)는 정책의 '타이밍'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미 동네서점들 다 죽었는데 이제 와서 살린다고 해봐야 얼마나 살겠습니까." 서점업계는 도서정가제라는 원론에는 동의하면서도 구체적 내용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있다. 이미 죽은 업계를 살리려면 더 강력한 대책이 필요한데, 개정안에 나온 대책은 미온적이라는 지적이다.

도서정가제의 '정가'의 범위가 도서 가격과 마일리지 등 특정 부분에만 한정되는 점이 대표적인 문제다. 도서정가제가 부분적인 윤곽을 드러낸 2002년 당시에는 온라인 대형서점에 대해서만 할인을 허용하는 등 성장하고 있던 온라인 도서유통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정책적인 지원이 집중됐다. 반면 같은 시기 지역의 오프라인 서점은 할인을 통해 가격 경쟁에 나설 길이 막히며 고사했다. 전면적인 도서정가제 시행을 앞두고 위상이 뒤바뀐 오프라인 지역서점들이 온라인 대형서점에 대해 배송비 지원 같은 기타 할인혜택을 규제하라고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소규모 지역서점의 감소 추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2003년 3589곳이었던 전국의 지역서점은 2013년 1625곳으로 54.7%나 줄어들었다. 하지만 같은 오프라인 서점이지만 대형서점은 오히려 매장 수를 크게 늘리며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증가했다. 같은 시기 대형서점으로 분류되는 100평 이상의 서점은 200곳에서 318곳으로 59% 늘어난 것이다.

자금력의 차이에 따라 공급가격까지 차이를 보이는 것은 대형 출판사와 중소 출판사 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출판사와 공급가격을 협상하는 대형서점과는 달리 소규모 지역서점들은 도매상을 거치는 과정에서 판매서적에 대한 가격 경쟁력이 뒤처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특히 이 문제는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더라도 추가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심화될 여지가 크다. 지역서점들은 도서 정가의 범위를 유통과정 전반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동네서점'을 중심으로 지역의 정보 생태계와 공동체 공간을 되살리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부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마을 도서관의 경우도 지역에 밀착해 있는 동네서점을 통해 장서를 확보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서정가제를 시행 중인 유럽과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프랑스의 경우 '반 아마존법'이라는 이름이 붙은 도서정가제(재판매가격유지제)를 통해 오프라인 지역서점에서만 할인된 가격으로 도서를 판매할 수 있게 법제화하고 있다. 최성구 출판유통진흥원 팀장은 "독일의 경우 소비자들이 지역에서 쉽게 책을 접하고 살 수 있는 권리를 내걸고 도서 판매처를 다양하게 확보하는 정책을 펴 정가제를 뒷받침하고 있다"면서 "정가제 때문에 줄어드는 매출 문제는 서점이 지역문화의 거점으로 자리 잡아 매출 다각화를 이루는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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