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입양 보내고 평생 웃고 찍은 사진 한 장 없어요

송옥진 입력 2014. 7. 18. 20:37 수정 2014. 7. 18.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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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아픔 겪은 59세 김정숙씨

아이 불행해진다는 소리에 잠깐 맡기려고 보낸 보육원서 자꾸 입양 권유

40여년간 달라진 게 없어 "보육시설만 잘 갖춰져도 아이 포기하는 엄마 크게 줄 것"

김정숙씨가 16일 경기도 자택에서 수정씨가 입양될 당시 사진과 고아원에 아이를 맡겼을 때 받았던 인수증을 꺼내 보고 있다. 모녀의 만남은 수정씨가 중앙입양원 인터넷 홈페이지에 입양 당시의 본인 사진과 함께 가족을 찾는다는 글을 올려 놓은 것을 김정숙씨 조카가 발견해 이뤄졌다.

지난해 5월29일 인천공항 입국장. 초조한 눈길로 입국장 게이트를 바라보던 김정숙(59ㆍ가명)씨 앞에 딸 수정(38)씨가 나타났다. 세살 때 미국으로 입양 보낸 이후 34년만의 만남.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 온 김씨는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너무 울어 탈진한 엄마를 수정씨는 아무 말 없이 껴안았다. 김씨는 매년 2월15일 딸의 생일이면 의식 치르듯 끓였던 미역국을 이날 처음으로 수정씨와 함께 먹었다.

아이 불행해진다는 말에 떠밀려 보낸 입양

김씨는 미혼모였다. 동네에서 얼굴도 모르던 남자에게 끌려가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얼마 안 있어 배가 불러 왔다. 주변의 만류에도 김씨는 "아이는 내 살덩이고 내 일부"라고 생각해 낳기로 결심했다. 1977년 2월 김씨는 서울 면목동의 한 조산원에서 수정씨를 낳았다. 그 때 나이 스물 한 살이었다. 아이 아버지는 김씨가 아이를 낳자 방도 마련하고 돈도 조금씩 벌어 왔지만 오래 가진 않았다. 늘 술에 취해 떠돌던 아이 아버지는 객사했다.

김씨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2년 가까이 수정씨를 혼자 키웠다.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면 언니, 오빠 집에 아이를 맡기고 일거리를 찾아 다녔다. 하지만 1970년대 스물 한 살 미혼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김씨는 "잘 방만 있으면 동냥이라도 했을 텐데 감당이 안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누군가 서울 노량진에 있는 보육원을 알려주며 아이를 맡기라고 귀띔했다. 김씨는 방 한 칸만 구한 뒤 다시 데리러 오겠다며 아이를 보육원에 맡겼다. 돈이 생길 때마다 틈틈이 아이 옷과 먹을 것을 사서 보육원을 찾았지만 보육원에선 김씨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친엄마가 자꾸 찾아오면 아이가 보육원 생활에 적응을 못한다는 이유였다. 보육원은 대신 입양을 권유했다.

"돈도 없고, 어린 미혼모가 키우면 아이가 불행해진다. 대신 아이를 입양 보내면 거기서 잘 먹고, 잘 입고, 공부도 다 시켜주고, 공주처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처음엔 아이를 보낼 생각이 없었지만 자꾸 그런 말을 들으니 그 말이 진짜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1979년 친권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면서 아이가 원할 경우 언제든지 친엄마를 찾을 수 있도록 본인의 이름과 본적 등 자세한 인적 사항을 적었다. 하지만 수정씨의 입양 서류에는 친엄마에 대한 정보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고 했다. 수정씨는 '노량진경찰서 앞에서 버려졌음'이라고 기록된 단 한 줄의 정보와 함께 1980년 미국으로 입양됐다.

김씨는 아이를 입양 보낸 뒤 자신의 결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밀려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해 아들 딸 낳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큰 딸 수정씨에 대한 기억 때문에 고통의 응어리가 남았다.

밤마다 아이를 찾는 꿈을 꾸다 울면서 깨는 바람에 김씨는 "그만 잊으라"는 남편과도 많이 싸웠다. 김씨는 "딸과 연락이 닿은 뒤 내 사진을 보내달라 길래 사진을 찾아봤는데 평생 웃고 찍은 사진이 없더라"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아이를 데리고 길에서 굶어 죽더라도 내가 직접 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홀로 아이 키우기는 여전히 힘든 사회

김씨는 현재 입양인 원가족 모임인 민들레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씨처럼 미혼모였거나경제적 이유 등으로 아이를 입양 보냈던 가족들이 모여 미혼모와 입양인을 돕는다. 김씨처럼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고통스러운 가슴 속 이야기도 공유한다. 12~13명의 회원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지만 아이를 입양 보낸 가족들은 대부분 사실을 숨기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힘겨워 한다. 김씨는 "미혼모를 죄인으로 만들고, 입양만을 권유하는 사회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김씨가 혼자 아이를 낳은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미혼모의 삶은 바뀐 것이 별로 없다. 김씨는 "젊은 미혼모를 아는데, 친정 부모가 아이를 키워줘서 그나마 본인이 직장 생활하면서 살 수 있더라"며 "미혼모 자녀를 위한 보육시설만 잘 갖춰져도 아이를 포기하는 엄마들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나는 미혼모에게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던 차갑고 각박한 시대를 살았고,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미혼모를 지원한다고 하지만 그 수준은 여전히 손톱의 때만큼에 불과하다"며 "아이가 낯선 환경 대신 친엄마와 함께 살 수 있도록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ㆍ해외입양 아동은 총 922명이고 이중 90% 이상이 미혼모 자녀다.

글·사진=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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