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선거에서 대선이 보인다

천관율 기자 2016. 4. 1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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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중앙정치의 움직임이 가장 빠르고 크게 반영되는 광역 단위다. 서울에 국한되는 선거 이슈가 뚜렷하지 않다. 2008년 총선을 집어삼킨 뉴타운 열풍이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그만큼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 옅다. 1000표 안팎으로 승패가 갈릴 초박빙 선거구가 많아서 미묘한 변수에도 결과가 출렁일 수 있다. 총선은 거대한 전국 선거인 동시에 253곳 동네 선거이지만, 이 모든 조건들 덕분에 서울은 전국 선거의 속성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그래서 서울은 1년 앞으로 다가온 2017년 대선까지 시야에 두고 펼치는 ‘대전략’의 예고편을 가장 선명히 볼 수 있는 곳이다. 2016년 총선, 서울에는 이미 각 당과 대선주자들이 2017년을 노리며 둔 포석이 주르륵 깔렸다.

 새누리:‘차기’ 찾는 친박, 배수진 친 비박

새누리당의 차기 대권 지형도를 보여줄 선거구가 서울에 몰려 있다. 종로의 오세훈 후보는 김무성 대표의 견제 속에서도 종로 출마를 관철하는 데 성공했다. 당내 친박계가 그의 공천을 전폭 지원했다. 오세훈 후보는 새누리당의 잠재적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데, 종로에서 정세균 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을 우선 넘어야 한다.

이렇다 할 차기 대권 주자가 없다는 것은 친박계의 최대 고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정치를 해왔다. 측근 그룹은 대체로 ‘비서형’ 정치인이 많고, 자기 정치색을 드러낸 정치인은 예외 없이 밀려났다. 한때 친박계 핵심이었던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무소속)은 이제 확실한 비박계 대선주자다.

친박계가 고려해볼 수 있는 ‘용병’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오세훈 후보다. 일종의 전략적 제휴가 가능한 상대다. 당내에 기반이 두텁지 않은 오세훈 후보로서도 이것이 현실적인 경로일 수 있다. 다만 종로의 주요 경쟁자인 정세균 현 의원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주요 의원들이 줄줄이 공천에서 탈락한 터라 정 의원도 총선 이후 국면 반전을 위해 본인의 생환이 절실하다. 종로가 오랜만에 ‘정치 1번지’라는 상징성에 걸맞은 핵심 선거구로 떠오른다.

ⓒ시사IN 이명익 : 박근혜 대통령은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정치를 해왔다. 친박계에는 차기 대권 주자가 없는데 최근 서울 종로에 출마한 오세훈 후보(오른쪽)를 ‘잠재 후보’로 꼽는 이가 늘어났다.

새누리당 비박계는 초조하다. 총선이 끝나면 새누리당은 충성파 친박 색채가 완연해진다. 공천 과정에서 이른바 ‘진박’ 후보들이 대거 당선이 유력한 지역구에 공천을 받았다. 19대 국회 때 등장한 김무성 당대표 선출, 유승민 원내대표 선출, 정의화 국회의장 선출과 같은 비박계의 반란을 더는 기대하기 힘든 지형이 된다.

비박계 처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궤적은 좋은 참고자료다. 2008년 총선에서 ‘공천 학살’을 당한 친박계는 총선용 임시 정당인 친박연대를 창당하거나 ‘친박 무소속연대’를 결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생환에 성공했다. 이후로는 박근혜 의원이 당내에서 친박계 복당을 요구하며 사실상 농성에 들어가 끝내 복당을 관철했다. 친박계는 이렇게 재건되었고,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의 거점이 되었다. 몇몇 중요한 차이가 있지만(예를 들면 2016년 비박계에는 당시의 박근혜에게 견줄 만한 강력한 대선주자가 없다) 비박계 무소속에게도 일단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살아남은 비박계 무소속이 많을수록 당내 비박계가 복당을 압박할 명분도 커진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총선 결과도 나오기 전에 무소속 주자들의 복당 문제로 시끌시끌했다. 김무성 대표는 취중 말실수로 공천을 못 받고 무소속 출마한 친박 핵심 윤상현 의원의 복당 문제를 고리로 걸 태세다. 3월30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김 대표는 '복당 문제는 일괄 거론하겠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윤상현을 복당시키려면 비박계 당선자들도 받으라’는 의미다. 총선 이후 새누리당 내부투쟁의 핵심 키워드는, 2008년 총선 이후가 그랬던 것처럼 ‘복당’이 될 전망이다.

은평을은 그래서 주목받는 선거구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날을 세워온 5선 이재오 의원이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이 의원이 살아남으면 비박 무소속 당선자 그룹의 덩치가 커지게 된다. 이 지역구에는 더민주 강병원 후보와 국민의당 고연호 후보가 있고, 정의당 현역 비례대표 의원인 김제남 후보도 도전장을 냈다. 야권 단일화가 서울에서도 특히 까다로운 곳으로 꼽힌다. 새누리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새누리당 안의 비박계는 수도권에서 최대 성과를 뽑아내야 할 처지다. 당선이 안정적인 영남 지역구는 충성파 친박계로 대거 물갈이되었다. 그러나 후보 경쟁력이 중요한 서울은 비박계 후보가 여럿 살아남았다. 이들이 20대 국회에 입성해야만 당내 호응 세력으로 복당론을 꺼내볼 수 있다. 정태근(성북갑), 김효재(성북을), 정두언(서대문을), 김용태(양천을), 김성태(강서을) 후보 등 주로 옛 친이계의 생환 여부가 주목받는다. 선거구들이 대체로 만만치 않고, 야당에서 탈환을 노리는 지역구가 여럿 있다.

친박을 넘어 ‘진박’으로 불리는 새누리당 주류의 유승민 찍어내기가 수도권에서는 역풍을 부를 거라는 관측도 있다. 서울에서 친박 색채가 뚜렷한 후보는 권영세(영등포을)·구상찬(강서갑)·김선동(도봉을)·최홍재(은평갑) 후보가 꼽힌다. 각각 주요 상대가 신경민(영등포을)·금태섭(강서갑)·오기형(도봉을)·박주민(은평갑) 후보로 비교적 인지도 있는 현역이나 신인을, 쉽지 않은 지역에서 만났다. 이미 당내 경선에서 확실한 친박계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친박 출신 비박계 이혜훈 전 의원이 꺾은 사례(서초갑)도 있어서, 서울에서는 ‘박근혜 프리미엄’보다 ‘박근혜 디스카운트’가 현실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 더민주:‘투 트랙’은 대선까지 굴러갈까

서울의 ‘중원 싸움’을 상징하는 지역구는 용산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3선의 진영 의원을 영입해 공천했다. 진영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온건 보수라는 평을 듣던 중진으로, 박근혜 정부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었다가 기초연금 정책에서 청와대와 충돌한 후 물러났다. 김종인 대표의 광폭 우클릭 행보가 없었다면 성사되기 힘들었을 영입이다.

‘김종인표 우클릭’의 목표는 2017년 대선에 맞춰져 있다. 비례대표 공천 파동으로 김 대표가 당무 거부에 들어갔던 3월22일, 문재인 전 대표가 김 대표를 찾아갔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당신들 표만 갖고는 총선 승리도 정권 교체도 안 되니까 당의 확장성을 위해 그런 거 아니냐'라고 말한다. 이날 문 전 대표는 김 대표에게 '총선 이후 대선 때까지 당에 있어야 한다'라고 요청했다.

ⓒ연합뉴스 : 총선 이후 대선까지 ‘김종인(왼쪽)-문재인(오른쪽) 투 트랙’이 작동하려면 김종인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지지자들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얻어야 한다.

문재인 전 대표는 대선 패배를 복기한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패인 중 하나로 확장의 실패를 지목한다. '윤여준 전 장관을 영입해놓고도 내부 반발에 밀려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정운찬 전 총리나 김영삼계 인사들을 영입할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충청권 정당인 자유선진당도 우리를 지지할 분들이 많았는데, 내부 반발을 무마하지 못하고 엉거주춤하는 사이에 새누리당과 합당해버렸다.' 중도 보수로의 이념적 확장과 충청으로의 지역적 확장에 실패했다는 자평이다.

‘김종인-문재인 투 트랙’은 이런 대선 평가에 기초해서 나왔다. 이것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식 좌클릭 전략’의 거울상이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김종인 대표를 본인의 지지층보다 왼쪽인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적극 활용했다. 새누리당의 핵심 지지층은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는데, 아무리 좌클릭을 한들 ‘박정희의 딸’이 갖는 정통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확장성의 한계와 이념적 경직성을 지적받던 박근혜 후보는 이 대선에서 자유롭게 ‘왼쪽’을 휘저었고, 역대 최다 득표로 대통령이 되었다.

더민주의 총선 지휘봉을 잡은 김종인 대표는 지지층이 선호하지만 강성 이미지가 있는 이해찬·정청래 의원을 컷오프시키고, 전통적인 지지층이 보기에 정체성이 의심스러운 전문가 그룹을 비례대표 명단에 포함했다. 당 내외의 반발이 위태로운 수위로 치솟았다. 이를 정리한 것은 문재인 전 대표였다. ‘우클릭 전략’의 최대 위험요소인 핵심 지지층의 반발을 문재인 카드로 관리하는 투 트랙의 기본 축을 이 장면이 보여줬다.

2012년 대선의 문재인 후보는 이게 불가능했다. 당시의 문 후보는 사실상 ‘얼굴마담’에 가까웠다. 대선을 앞두고 징발된 후보라는 성격이 더 강했고, 외연 확장에 필수인 진영 내의 리더십이 확고하지 않은 상태였다. 책에서 문 전 대표는 '내부 반발에 밀려 엉거주춤했다'라는 표현을 되풀이해 쓴다. 지금과는 결정적인 차이다. 2015년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되고, 연말 분당 이후 인재 영입 카드로 국면 전환에 성공하면서, 진영 내의 위상과 발언권이 강화된 상태다. 좀 더 자유롭게 ‘오른쪽’을 공략할 여력이 생겼는데, 문 전 대표는 김종인 대표를 호위하는 방식으로 그 여력을 사용하고 있다.

'총선 이후 대선까지' 이 투 트랙이 작동하려면 먼저 김종인 체제가 납득할 만한 총선 결과를 얻어야 한다. 첫 고비를 넘는다 해도 미래는 분명하지 않다. 김종인 노선은 당내 주류와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총선이라는 비상시국이 지나고도 이 노선이 계속 용인될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한 해에 총선과 대선을 다 치르는 행운을 누렸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표는, 궤도 수정을 하지 않는다면, 당시 박근혜 후보보다 낮은 대선 지지율로 이 위태로운 동맹을 1년 더 유지해야 한다. 총선 이후 더민주 내부투쟁의 핵심 키워드는 ‘노선’이 될 수 있다.

 국민의당:외줄타기형 정치 실험의 결말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노원병에 출마한다. 이 지역구에 새누리당은 이준석 후보를, 더민주는 황창화 후보를 공천했다. 3자 구도에서 안 대표는 안심할 수 없는 접전을 펼치는 중이다. 국민의당은 서울 지역 49곳 선거구 중 42곳에 후보를 냈다. 이 중 선두권을 형성한 후보는 안철수 대표가 사실상 유일하다. 야권 단일화로 역전을 노려볼 만한 2위권 그룹 후보도 한손에 꼽히는 정도다.

더민주 내부는 단일화가 필수라는 기류가 강하다. ‘딱 국민의당 득표만큼’ 표가 모자라서 서울에서 대거 낙선하는 시나리오는 더민주의 악몽이다. 2012년 총선에서 호남 기반 정당인 정통민주당은 의미 있는 득표를 하지는 못했지만 서울에서만 은평을과 서대문을 두 곳의 선거 결과를 바꿨다는 평을 받았다. 두 곳에서 민주통합당(현 더민주) 후보는 정통민주당 후보의 득표수보다 적은 표차로 낙선했다.

ⓒ시사IN 신선영 : 국민의당은 서울 지역 49개 선거구 중 42곳에 후보를 냈는데 이 가운데 선두권을 형성한 후보는 안철수 대표가 사실상 유일하다. 몇몇 2위권 그룹 후보들이 단일화 추진을 선언했다.

안철수 대표는 ‘중앙당 차원의 선거연대 불가’를 거듭 천명했다. 본인도 3자 구도를 돌파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지역구 단위의 단일화 협상은 막기 힘들다는 기류다. 국민의당에서는 강서병의 김성호 후보, 중구·성동을의 정호준 후보, 관악을의 이행자 후보가 단일화 추진을 선언했다. 세 후보는 단일화 승리를 기대해볼 수도 있고, 단일 후보가 될 경우 본선에서도 역전을 노릴 기반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지난해 연말 깃발을 올린 안철수 대표의 제3당 실험은 묘한 딜레마에 봉착했다. 안 대표의 대표 브랜드는 ‘중도’ ‘새정치’ ‘정치 혁신’ 등인데, 정작 국민의당은 호남 기반 지역당 속성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안 대표 본인의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제외하면 호남 밖에서 의석을 추가하기가 간단치 않은 흐름이다.

새누리당 계열 정당에 반대하는 연합전선의 전통적인 한 축은 호남, 또 다른 한 축은 도시 리버럴이었다. 더민주의 주류인 친노 계열은 도시 리버럴을 핵심 지지 기반으로 삼는 경향이 있고, 호남은 연합전선의 주도권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었다. 이 두 축이 분화하면서 호남의 지지 일부가 국민의당으로 넘어갔다.

관악을은 이런 충돌(호남 대 리버럴)을 압축해 보여주는 지역구다. 국민의당 이행자 후보는 호남 조직표의 위력으로 당내 경선에서 안철수 대표의 측근 박왕규 후보를 꺾은 후, 서울에서도 친노색이 뚜렷한 후보로 분류되는 정태호 후보(더민주)와 단일화 샅바싸움에 들어갔다.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는 지난해 4월 보궐선거에서 국회에 입성한 현역 의원이다.

국민의당은 지역 기반을 가진 호남 세력과 대권 주자가 최대 자산인 안철수계의 연합 정당이다. 이 연합은 꽤 불안정하고 자주 파열음을 낸다. 총선 결과에 따라 이 연합이 다시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이 불안정한 구도 때문에라도 안철수 대표의 최우선 타깃은 새누리당보다는 더민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반(反)새누리당 연합전선의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2017년 대선에서 의미 있는 공간을 차지할 가능성도 낮아진다.

 누구의 ‘악재’가 더 나쁠까

4년 전인 2012년 총선에서 당시 민주통합당(현 더민주)은 서울 지역 48곳 선거구 중 30곳을 휩쓸었다. 야권 연대 파트너였던 당시 통합진보당 2석까지 포함하면 32곳이다. 새누리당은 16곳을 건져 사실상 참패했다. ‘16대32’는 탄핵 역풍이 불었던 2002년 총선 때와 같은 수치다.

이번에는 어떨까. 새누리당은 여론의 추이가 썩 만족스럽지 않다. SBS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월3~4일자 조사에서 각각 39.7%(새누리)와 23.2%(더민주)였던 서울 지역 정당 지지율이 3월26~28일자 조사에서는 29.6%(새누리) 대 32.9%(더민주)로 뒤집힌다(3월29일 SBS 보도.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더민주의 표정도 어둡다. 선거 구도가 나쁘게 잡혔다. 야권 분열에 발목을 잡혀서 ‘표에서 이기고 의석에서 지는’ 그림이 서서히 구체화되는 중이다.

ⓒ연합뉴스 :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각을 세워온 5선 이재오 의원(가운데)이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은평을에 출마했다. 그가 총선에서 살아남으면 비박 무소속 당선자 그룹의 덩치가 커지게 된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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