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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2030세대 여성 관객들이 호구로 보이는가 엔터미디어  |  듀나
입력 16.03.27. 13:12

2030세대 여성 관객들을 무시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한국 공연예술가들과 업계 사람들이 가진 태도 중 내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자기 상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에 대한 노골적인 멸시이다.

뻔한 예로 얼마 전 폐지된 SBS <한밤의 TV 연예>에서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늘어난 LP 판매량과 판매량 3,4위를 차지한 인피니트 앨범에 대해 언급하면서 “인피니트 팬들이 LP를 들을 수 있는 기계가 있을까. 팬심으로 사주는 것 같다”고 말한 걸 들 수 있다. 나로서는 그가 왜 구매자들의 턴테이블 유무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빈정거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턴테이블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 중요한 건 그들이 돈을 내고 상품을 샀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는 그가 알 바 아니다. 어차피 그들은 LP를 통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음악을 소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건 CD도 마찬가지다. 턴테이블과는 달리 아직은 대부분 CD 플레이어를 갖고 있겠지만 CD 구입자들 중 늘 그 CD를 통해서만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요새 몇이나 될까? 얼마 전에 나는 파보 예르비와 파트리샤 프티봉의 풀랑 앨범을 샀는데 아마 이 앨범을 CD로 들을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아이팟 클래식으로 음악을 몽땅 옮겼고 지금 주로 그걸 통해 듣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여러분은 내가 무엇으로 그 음악을 듣건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의 같은 행동을 하는 소비자가 아이돌 팬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도대체 왜?

최근엔 <보도지침>이란 연극이 SNS에서 욕을 뒤집어쓰고 있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제작사 엘에스엠컴퍼니의 대표 이성모의 인터뷰 때문이다. 인용해본다.

“...당시 공연계는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침체되어 있었고, 공연계 전반적인 분위기가 20-30대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저가의 가벼운 공연들이 넘쳐날 때였어요. 그런 상황을 탈피해 모든 세대와 성별을 아우를 수 있는 <연극을(?)>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 쪽을 분석해 본 결과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정치사회적인 소재의 작품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문제가 된 부분은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내뱉은 ‘20-30대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저가의 가벼운 공연들’이다. 아마 악의는 없었겠지만 그 때문에 문제가 더 커졌다. 가벼운 공연들이 많았다는 게 사실이라고 치자. 하지만 과연 그게 20-30대 젊은 여성들이 주관객들이기 때문인가? 정치사회적인 소재의 작품을 만들면 마술처럼 모든 세대와 성별의 관객들이 몰려드는가? 20-30대 젊은 여성 관객들은 그런 연극을 이해하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가?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보도지침>을 예약한 관객들은 (다른 연극 공연과 마찬가지로) 압도적 다수가 20-30대 여성이다. 남성 관객들은 ‘20-30대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저가의 가벼운 공연들’이 연극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보지 않는 게 아니라 그냥 연극을 안 보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 연극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성모 대표는 논란이 터지자 잽싸게 사과문을 올리고 인터뷰가 실린 브로슈어를 회수하겠다고 했는데, 그 약발이 어디까지 먹힐지는 나도 잘 모르겠고 관심도 없다.

<보도지침>과 관련된 인터뷰가 이렇게 역풍을 일으킨 것은 20-30대 여성관객들에 대한 경멸 섞인 발언을 내뱉은 업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 관객들은 자기 돈을 내고 극장을 찾으며 업계를 먹여 살리면서도 지금 연극계의 모든 문제점의 원흉 소리를 듣는다. 작품의 질이 떨어져도 이들 탓이고, 작품 폭이 좁아져도 이들 탓이다. 심지어 한 작품을 여러 번 봐도 회전문 관객이라며 멸시의 대상이 된다. 이 단계까지 오면 정말 이성의 영역을 초월한다.

영화 이야기를 한다면, 난 지난 한 달 동안 토드 헤인즈의 <캐롤>을 민망할 정도로 많이 보았다. 나야 민망하지만,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 수입사, 극장 측은 나와 같은 관객들에게 무척 고마워할 것이다. 하지만 왜 연극과 뮤지컬로 넘어가면 이 당연한 논리가 통하지 않는가? 왜 이들은 돈을 내는 사람들을 욕하는가. 왜 그들은 관객들이 다시 극장을 찾는 이유를 굳이 짐작하고 비난하는가.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연극 공연을 찾을 관객들 대부분이 20-30대 여성일 거라는 현실을 조용히 인정할 것이다. 그것은 절망할 일도, 좌절할 일도 아니다. 그들은 교육수준, 충성도, 이해도가 높으며 언제나 더 많은 것을 갈망하는 좋은 관객들이다. 해결책은 이들을 몰아내고 연극 따위에 관심도 없는 다른 사람들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아직 개척되지 않은 관객의 가능성과 욕망을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자신의 예술적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저가의 가벼운 공연들이나 좋아하고 남자 배우들이나 따라다니는 생각 없는 여자들’이라는 가상 관객들을 만들어놓고 욕하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관객들은 잘못이 없다. 다 당신들이 멍청하고 당신들이 겁 많고 당신들이 게으른 탓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 연예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진=연극 <보도지침>포스터, SBS, 영화 <캐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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