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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입력 2017. 5. 29.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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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 명의 스타가 돌아왔다. 이들에겐 카메라가 담아내지 못하는 오라가 있었다.
블랙 점프슈트 딘트.

원미경

2002년 드라마 <아줌마>를 끝으로 홀연히 사라졌던 여배우 원미경이 14년 만에 돌아왔다.

오늘 촬영은 어땠나요? 재미있었어요. 밤을 꼬박 새가며 5백 벌의 옷을 갈아입었던 옛날 생각도 나고요. 그땐 스케줄이 너무 많아 기계적으로 일했는데, 요즘엔 신인의 자세로 임하고 있죠. 드라마 <귓속말> 촬영장에서도 저는 거의 신인이나 다름없어요. 덕분에 활력도 생기고 좋습니다.

전성기 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열여덟 살에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들이 단체로 미스 롯데에 지원했어요. 거기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1위를 하면서 연예계에 입문했죠. 연기가 뭔지, 배우가 뭔지도 모른 채 끌려 다니다시피 활동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일을 어떻게 다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바빴거든요.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촬영하니까 ‘이렇게 내 청춘이 다 가는구나’ 싶어 속상했죠.

어떤 여배우였나요? 예쁜 외모는 아니었어요. 그냥 여기저기에 잘 묻히는 얼굴이었던 것 같아요. 연기도 그렇게 잘한 것 같지 않고…. 스스로 배우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죠.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 것 같아’ 하면서 연기했던 것 같아요. 대신 누구보다 성실했어요. 무슨 역할이든 열심히 했고, 끝까지 해냈어요. 그러면서 내공이, 구력이 생긴 것 같아요.

트로이카라는 수식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동시대에 활동한 여배우는 이미숙 씨, 차화연 씨, 최명길 씨 등이 있죠. 그들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영광이에요.

 블랙 롱 슈트 더데무.

“어렸을 때 데뷔한 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어요. 촬영장에서 보내는 청춘이 아까웠죠. 평범하게 살고 싶어 미국으로 떠났고, 10년 만에 돌아오게 됐네요. 신인이 된 기분으로 일하고 있어요. 내 안에 이런 열정이 있었나 싶을 정도죠.”

그렇게 전성기를 보내던 중 훌쩍 미국으로 떠났어요.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남편과도 종종 “우리가 그때 왜 그렇게 떠나왔을까” 하고 이야기하곤 해요. 정확한 이유를 말해보라고 하면 답하기 어렵지만, 그때 시아버지와 친정엄마가 동시에 돌아가셨어요. 연예계에 피로를 느끼던 시기에 연달아 힘든 일을 겪으니 미련 없이 떠날 수 있겠더라고요. 남편의 미국 유학 시절에 대한 기억이 좋아서 ‘몇 년 살아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다가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 돌아오지 못했네요. 일에 대한 미련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동안 충분히 일했다고 생각했거든요. 대신 평범한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죠. 거의 은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돌아올 생각도 전혀 없었어요.

미국에서는 온전히 가정주부였다고 들었어요. 육아에 집중했어요. 세 아이를 차례로 학교에 보내고, 살림하고, 남편 챙기고. 미니시리즈 한 편 찍는 것보다 바쁜 일상이었죠. 한국에선 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엄마의 부재를 느끼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그 한을 미국에서 다 풀었어요.(웃음) 남편과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는 삶도 좋았죠. 남편은 현재 목회자의 길을 준비 중이에요. 9월에는 목사 안수를 받을 예정이죠.

여배우로 살다가 평범한 주부로 산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그것도 미국에서. 미련 없이 떠난 거라 달라진 환경에 대해선 불만이 없었어요. 언어가 제일 힘들었죠. 처음엔 조금 지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웃음)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도 한국말을 잊지 않으려고 했어요. 특히 여섯 살이던 막내아들이 한국말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집에서만큼은 무조건 한국말로 대화하려고 했죠.

큰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죠? 미국 뮤지엄에서 일하는 큰딸이 6월 3일에 시집가요. 아직까지도 ‘내 딸이 결혼을 한다고?’ 싶은 마음에 실감이 안 나죠. 예비 사위요? 너무 사랑스러운 친구예요. 오늘 아침에도 화상 통화를 하면서 ‘고맙다’고 말해줬어요.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는 친구거든요. 딸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블랙 가죽 재킷 더데무, 블랙 가죽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빈티지 체어 까사알렉시스.

그렇게 꿈꾸던 평범한 가정생활을 이뤘는데, 다시 돌아오는 것 또한 결단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MBC <가화만사성> 이동윤 PD에게 출연을 제안받고 고민하는데 남편이 “느낌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이번에 돌아오지 못하면 영영 연기를 못하겠구나 싶은 마음에 용기를 냈어요. 아이들도 “한번 해보라”고 응원해줬고요. “엄마 되게 유명한 사람이야”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만 듣고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본 적 없는 아이들이 일하는 제 모습을 궁금해하는 것도 자극이 됐죠. 드라마 속 제 모습을 자랑스러워해요. 오늘도 화보 촬영한다고 하니까 잘하라고 응원해줬어요. 아마 지금도 사진 속 제 모습을 엄청 궁금해하고 있을 거예요.

돌아와보니 어떤가요? 어렸을 땐 일이 재미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요즘엔 너무 재미있어요. 제 안에 열정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새록새록 열정이 샘솟는 걸 느끼면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 예전에 저를 사랑해주셨던 분들이 “왜 이제야 왔느냐?”고 물으면서 반가워해주실 땐 가족을 만난 기분이에요. 요즘 후배들도 너무 예뻐요. 경력이나 나이는 제가 선배지만, 오히려 후배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지금은 청평에서 전원생활 중이라고 들었어요. 미국에 오래 있다 보니 서울의 고층 빌딩이 답답하고 삭막하더라고요. 어디에서 지내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청평에서 살기로 했죠. 공기 좋은 자연 속에서 즐겁고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멀어서 출퇴근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좋아요.

앞으론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도 될까요? 역할이 크든 작든 할 수만 있다면 계속 활동하고 싶어요. 내일모레 예순 살인데도 뭐든 다시 도전하고 싶죠. 그리고 이런 저의 도전이 다른 주부들에게도 자극이 됐으면 하고요.

어떻게 나이 들고 싶나요? 자연스럽게 늙고 싶어요. 그래서 전 제 얼굴의 주름이 좋아요. 오히려 분위기 있지 않나요? 그리고 무엇보다 젊은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아줌마’가 되고 싶어요. 내가 자랑스러워진다거나 대단해지는 것보다 젊은이들과 사이좋은, 깨어 있는 ‘노인’이 되려고요.

블랙 재킷 블락스페이스.

이상아

수년 동안 책받침 스타로 살았지만 사진 촬영은 여전히 낯설고 두렵다.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 순간, 전성기 때 그 모습이 묻어났다.

화이트 슈트, 블랙 레이스 브래지어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전성기요? 지금 생각하면 되게 건방졌네요. 제가 최고인 줄 알았거든요.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애정을 갖고 즐기면서 연기했을 텐데, 아쉬워요.”

오랜만의 촬영이죠? 이렇게 과감한 포즈를 취하고 시크한 표정을 짓는 게 어색해요.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서니 더 긴장했네요.

1980년대 우리나라를 주름잡은 트로이카 중 한 명이에요. 원조 살인 미소의 주인공이기도 하고요.거의 모든 광고에 출연했던 것 같아요. 제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민망하지만 광고 속 제 미소가 팬들을 심쿵하게 했대요.(웃음) 요즘엔 그런 해맑은 미소가 안 나와요. 이혼 세 번, 그리고 몇 번 논란을 겪고 나니까 표정에서 삶이 느껴진다더라고요. 웃어도 슬퍼 보인다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요즘엔 잘 안 웃게 되네요.

전성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감정은 뭔가요? 아무것도 모를 때였죠. 어쩌다 보니 데뷔했는데 연기자를 할까 말까 고민할 시간도 없이 숨 가쁘게 달려왔어요. 힘들다고, 하기 싫다고, 집에 가고 싶다고 엄마랑 매일 싸웠어요.

어마어마한 인기를 체감했군요. 지금 생각하면 되게 건방졌어요. 그땐 제가 최고인 줄 알았거든요.(웃음) 사실 연예인이면 누구나 다 그 정도 인기는 누리는 거라고 생각했죠, 인기에 대한 개념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던 거에요. 여배우로 살면서 ‘정상’을 찍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있어요. 다만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면서 연기 생활을 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요.

화이트 펀칭 점프슈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최근 딸 서진 양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 <엄마가 뭐길래>에 출연했죠? 서진이와 <붕어빵>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아이가 아무것도 모른 채 출연했다면 지금은 방송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이렇게 하면 엄마가 욕먹을 거야’ ‘이렇게 하면 엄마가 힘들어질 거야’ 하는 생각으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딸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서진 양의 꿈이 배우라고 들었어요. 최근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어요. 딸의 의견을 존중하고, 딸이 스스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지켜보는 편인데도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에는 심하게 반대했어요. 저는 정상에도 올라가보고, 반대로 바닥으로 떨어져도 봤잖아요. 여배우의 민낯, 그 고통을 잘 알기 때문에 딸이 그걸 이겨낼 수 있을까 싶었죠. 어차피 상처 받을 거라면 다른 분야에서 일하며 받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 “배우만은 안 된다”고 해왔어요. 그런 제가 무서워서 딸이 그동안 자기 꿈이 배우라고 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중학교 3학년 때 진로를 결정하는데, 그제야 예고에 가고 싶다고 털어놓더라고요.

배우의 2세가 배우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대중의 색안경도 있죠. 맞아요. ‘부모의 후광’이라는 색안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 해요. 저는 뒤에서 지켜보기만 할 거예요. 잘못된 길인지 아닌지 판단해주는 길라잡이 역할만 할 뿐 모든 걸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딸을 이끌어줄 능력도 없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죠. 직접 경험해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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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상아는 어떤 엄마인가요? 서툴지만 최선을 다하는 엄마요. 아무리 바빠도 아침밥은 꼭 챙겨주려고 하고 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도 쉽게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엄마이기도 하고요.

엄마가 된다는 건 어떤 걸 의미하나요? 아이를 키우면서 이것도 하나의 작품 속 캐릭터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제 안의 또 다른 인물이랄까요? 신기하기도하고, 낯설기도 해요. 제가 세 번 이혼하면서 딸도 상처를 많이 받았나 봐요. 서로 상처가 되기도 하고, 또 힘이 되기도 하는 존재죠. 딸아이가 중학교를 대안학교로 갔는데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친구들의 가정환경에 대해 들었나 봐요. 자기보다 더 큰 상처를 받은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수치심이 없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요즘엔 같은 여자로서 엄마를 많이 이해해주는 편이에요.

딸이 어떤 여자로 성장해주기를 바라나요? 언젠가 한번은 “두고 봐, 엄마처럼은 안 살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속으로 ‘제발 그래다오’라고 생각했죠. 제가 살아온 인생을 딸이 답습하는 건 싫어요. 스스로를 지키면서 착하고 속 깊은 여성으로 성장하길 바라요.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요? 추하게 늙고 싶지 않아요. 남은 인생은 밝고 아름다웠으면 좋겠어요. 식상할 정도로 일을 많이 하는 것도 목표예요. 요즘 들어 일하는 행복을 알게 됐거든요.

화이트 재킷 블랑이브.

이연수

80년대를 주름잡았던 이연수가 돌아왔다. 원조 트로이카, 남자들의 로망, 책받침 스타, 그녀가 가진 수식어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SBS <불타는 청춘>에 출연하면서 바빠졌어요. 벌써 일 년이나 했더라고요. 여행을 워낙 좋아하니까 재밌게 촬영하고 있어요. 덕분에 예전에 함께 활동했던 분들과 다시 만날 수 있었네요. 그 시절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좋아요.

40대 주부들에게 <불타는 청춘>의 인기가 높아요. 아마 1980년대 청춘 스타에 대한, 그 시절 추억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멋진 남자 출연자가 나오면 시청률이 올라간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40대 아저씨 팬을 책임지고 있습니다.(웃음) 촬영장에서도 나이 지긋한 스태프를 만나면 반가워요. “그땐 그랬지” 하면서 추억에 잠기곤 한다니까요. 각자 위치에서 최고인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이렇게 융합이 잘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이연수의 전성기는 어땠나요? 다섯 살 때 동네 패션쇼 무대에 올랐는데, 거기에서 발탁됐어요. 열 살에 MBC 어린이합창단에 들어갔고 그 후 <호랑이 선생님>에 캐스팅됐죠. 정신없는 10대를 보냈어요. 일을 정말 많이 했죠. 학교에서 가장 친한 사람이 수위 아저씨였어요. 매일 조퇴를 했으니까요.(웃음) 그때 제 꿈은 친구들과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먹는 거였죠.

블랙 러플 팬츠 꼼빠니아, 도트 장식 화이트 블라우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모자 화이트샌즈.

“지금의 수지, 설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어요. 김혜수 씨, 이상아 씨와 함께 트로이카로 불렸죠. 주변의 시기와 질투를 한몸에 받았던 때였어요. 그래서 연예계에 일찍 지쳤을지도 몰라요.”

그 시절에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집으로 팬레터와 선물이 엄청 많이 왔는데, 그중에 기억나는 건, 당시 방문 판매하시는 아주머니의 물건을 훔쳐 저희 집에 놓고 간 팬이 있었어요. 저한테 선물을 주고는 싶은데 돈이 없으니 훔쳤던 거예요. 나중에 알고는 방문 판매 아주머니께 돌려드렸던 기억이 나요. 집 앞에서 며칠 동안 기다리는 소위 ‘사생팬’도 있었고, 대통령이 돼서 찾아오겠다는 분도 있었어요. 종이학 선물은 어마어마하게 받았고요. 생각해보면 그땐 애정 표현도 참 아날로그적이었어요.

그때의 이연수와 지금의 수지 중 누가 더 화려할까요? 참 난감한 질문이네요.(웃음) 분명한 건 저와 함께 활동했던 하희라 씨, 이상아 씨, 이미연 씨 등을 합치면 지금의 수지 씨보다 화려할 거라는 거예요. 요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거든요. 물론 지금과 그때의 분위기가 다르니 체감하는 인기가 다르겠지만요.

주변의 시기나 질투도 많았을 것 같아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선후배, 동기들한테 시샘을 많이 받았어요. 저 혼자 독식한다고 생각했나 봐요. 작품 하나 하고 오면 눈총 받고, CF 하나 찍고 오면 시기를 받았죠. 선배들 기에 눌리기도 했고요. 그래서 연예계에 일찍 지쳤을지도 몰라요. 나이도 어렸고, 소녀 감성이었기 때문에 주변의 시기와 질투를 이겨내지 못했어요. 무엇보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었죠.

제2의 전성기라는 평가가 있어요. 전성기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다만 나이 어린 친구들도 저를 알게 됐다는 점에서는 만족해요.

지난 10년 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던 일들을 원 없이 했어요. 공부도 하고 여행도 많이 다녔죠. 엄마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어요. 직접 음료를 만들고 서빙도 하면서 평범한 일상을 살았죠. 간간이 광고 모델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연예계와는 거리를 두었어요. 종종 알아보신 분들이 “왜 활동을 안 하느냐?”고 물어보셨는데, 그때마다 “저 이연수 아니에요~”라고 답하곤 했죠. 복귀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복귀하게 됐나요? 2002년, 우연한 기회에 중국 드라마 관계자를 알게 됐어요. 제가 어렸을 때 활동했던 걸 기억하시고는 드라마 출연 제의를 하셨죠. 아무도 나를 모르는 중국이라면 불편하지 않게 활동할 수 있겠다 싶어 출연하기로 했고 스타일리스트와 통역자, 그리고 저까지 셋이서 한 팀이 되어 중국에서 두 달 동안 활동했어요. 남장여자 캐릭터였는데, 어떻게 보면 제가 중국 한류의 시초가 된 거죠. 생각해보면 중국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어요. 언어와 문화가 달라 힘든 점은 있었지만 즐거웠어요.

블랙 시스루 원피스 까샵그레이.

10년 넘게 활동을 쉬었어요. 다시 돌아오니까 기분이 어떻던가요? 제 안에 잠재돼 있던 열정이 솟구치더라고요. ‘이렇게 재미있는 걸 그동안 왜 안 했지?’ 싶었어요. 직접 프로필을 만들어 선배님들, 선생님들을 찾아다녔네요. ‘저 중국에서 이렇게 활동하고 돌아왔어요!’ 하고요. 그러던 중에 <불타는 청춘>에서 섭외 제안이 들어왔고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지금의 제 삶에 만족해요. 조급해하지 않고 한 단계씩 밟아가려고요. 나이를 먹으면서 좋은 건 이제 급하지 않다는 거예요. 느긋해졌죠. 결혼도 마찬가지예요. <불타는 청춘> 식구들 중 돌싱도 있고 싱글도 있는데, 그들을 보면서 결혼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무엇보다 우리끼리 있으면 너무 재미있어요.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죠.

결혼 계획이 없는 건가요? 아뇨! 결혼하고 싶어요. 마지막 연애는 8년 전이에요. 그 후로 종종 소개팅 제의가 들어오는데 조심스러워서 막상 만나지는 못하더라고요.

<불타는 청춘>에서 짝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습니다.(웃음) 멤버들끼리 “김국진-강수지를 잇는 제2의 커플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이야기하곤 하죠. 좋은 작품에서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이상형요? 딱히 그런 건 없어요. 막연하게 끌리는 사람이 좋죠. 각자 살아온 방식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맞춰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사람이 좋다면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요. 운명의 남자가 60대, 70대에 나타나도 좋아요.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을 함께하면 되니까요.




에디터 : 이예지 | 사진 : 민기원 | 헤어 : 데이빗(H. DAVID) | 메이크업 : 정서윤, 재경(제이윤뷰티) | 스타일리스트 : 이효선(나피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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