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미치게 만드는 미중년

입력 2014. 9. 22. 08:55 수정 2014. 9. 2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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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듯 로맨틱했던 남자 '피츠윌리엄 다아시'는 이미 전설이 됐지만 콜린 퍼스는 영국식 억양만큼이나 강한 개성으로 전설을 거듭 갱신하고 있다. 우디 앨런의 영화 <매직 인 더 문라이트>와 10월 개봉 예정인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사이에 선 이 남자의 새로운 도전은 여전히 관객을 설레게 한다.

<매직 인 더 문라이트>

우스꽝스러운 중국 마술사 분장을 한 콜린 퍼스를 만날 수 있는 우디 앨런의 영화. 엉터리 심령술사 (엠마 스톤)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나섰다가 그녀의 4차원적 매력에 빠지는 유럽 최고의 마술사 스탠리를 연기한다. 8월 20일 개봉.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콜린 퍼스의 생애 최초의 액션을 볼 수 있는 영화. 잠재력 있는 청년들을 프로 비밀 요원으로 트레이닝시키는 베테랑 요원 해리 역할을 맡았다. 10월 개봉 예정.

콜린 퍼스가이렇게 드라마틱한 분장을 한 적 있었던가. 영화 <매직 인 더 문라이트>에서 1920년대 유럽을 사로잡은 중국인 스타 마술사 웨이링수의 진짜 정체는 영국인 스탠리였다. 그러니까, 콜린 퍼스가 성난 눈썹과 '달리' 콧수염을 단 민머리 중국인 마술사로 메이크오버했다는 얘긴데 이건 예전에 없던 일이어서 실소를 자아낸다. "난 이상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좋다. 사람들은 내 안에 뭔가 괴짜 기질을 숨기고 있어서 그런 거냐고 하지만 그렇게 복잡한 계산 따위는 없다. 그냥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는 건 재미없지 않나?"라던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킹스 스피치>의 말더듬이 왕 조지 6세를 연기한 이후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괴짜 캐릭터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1984년 <어나더 컨트리 Another Country>로 데뷔한 후 30여 년 만에 70편이 넘는 필모그래피를 완성한 후 비로소 우디 앨런과 만났다. 촬영이 진행된 프랑스 남부는 너무 아름다웠지만 너무 많은 신과 대사를 리허설 없이 한 번에 가야 하는 이 코미디영화 현장은 그가 선호하지 않는 것들 투성이였다. "난 드라마 장르가 편하다. 코미디는 일종의 줄타기를 해야 하는 작업이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든." 그는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한 적 있다. 로맨틱 코미디에 자주 출연했지만 정작 자신은 드라마 장르를 좋아하고 몇몇 영화는 즐거웠지만 꼭 하지 않았어도 될 작품도 많았다고. 그렇다면 이번 영화는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만약 당신이 콜린 퍼스의 팬이라면 영화가 끝난 후 이 배우가 추구한 모험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유는 그가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미스터 다아시적' 매력을 여전히 과시한다는 점 때문이다. 1988년생 여배우 (엠마 스톤)와 사랑에 빠지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는 중년 배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뿐 아니라 불륜이 아닌 이상 거의 없다는 점도 알게 된다. 이렇게 깐깐한 노인 감독과 코미디 연기에 유독 투덜대는 중년 배우의 스파크가 담긴 <매직 인 더 문라이트>를 평가하는 건 이제 관객의 몫으로 넘어갔다.

오랜 시간 다채로운 캐릭터에 도전해 온 콜린 퍼스는 자신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오만과 편견>의 '미스터 다아시'라는 유령과 끊임없이 싸워왔다. "나는 내가 어떤 특정한 캐릭터로 규정되는 것이 끔찍하게 싫다. 그건 너무 지루하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어쩔 도리 없이 다양한 작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이렇게 얘기해 왔지만 <싱글 맨>과 <킹스 스피치> 이전까지 대중이 기억하는 그의 대표작은 <오만과 편견>과 크게 다르지 않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 같은 로맨스 영화들이었다. 아마 콜린 퍼스에게 가장 안 어울리는 역할은 액션 배우가 아닐까. 그가 총을 쏘고 몸을 날리는 모습을 여간해선 상상하기 힘드니까. 하지만 우리의 예상을 깨고 그가 넥스트 제임스 본드로 거론되던 때도 있었다. 피어스 브로스넌의 시대가 끝난 후 영국의 한 설문조사에서 발표한 넥스트 제임스 본드 1위는 바로 콜린 퍼스였고 클라이브 오웬, 크리스천 베일, 주드 로, 숀 빈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를 통해 쌓인 표심은 결국 반영되지 않았으니 콜린 퍼스는 이때부터 칼을 갈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날렵하게 변했다면 믿을까. 10월 개봉 예정작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콜린 퍼스는 무려 53세의 나이에 생애 첫 액션 신을 선보인다. 이제껏 액션이라고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휴 그랜트와 야밤에 의좋게 나눈 주먹다짐뿐이었던 그는 초대형 첩보 조직의 베테랑 요원 해리를 연기하기 위해 성룡의 트레이닝 팀, 영국 태권도 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태국의 세계 챔피언 선수들에게 고강도 훈련을 받았다. 자신의 액션을 '배드 애스(Bad Ass)'라며 극찬한 그의 잘난 척, 아니 실제 꽤 고통스러웠다는 이 배우의 피땀 어린 노력은 멋진 수트 맵시와 함께 스크린을 가득 채울 예정이니 기대해도 좋겠다. 빳빳한 구레나룻과 굳게 다문 입술, 융통성이라곤 없어 보이지만 제 여자에겐 영혼이라도 내줄 듯 충성스럽고 완고했던 미스터 다아시를 연기할 때부터 지금까지 콜린 퍼스는 단 한 번도 거창한 연기관을 펼친 적이 없다. 어쩌면 다작하는 배우 콜린 퍼스에게 여전히 믿음직한 제안들이 이어지는 건 스스로 만든 틀이나 고집보단 본능에 충실한 동시에 일을 즐겨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열심히 했다고 해서 관객이 그 자체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생소한 그만의 도전을 이어가기에 즐기지 않을 수 없는 이 시대의 명배우 중 한 명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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