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배두나'가 들려준 이야기

박민 2012. 9. 2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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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런던으로 떠난 그녀의 흐르는 시간

그녀는 불현듯 런던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수업을 듣고 잠시 공원을 산책하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공부를 하며 평범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그녀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배두나가 런던에서 들려준 그녀의 이야기

런던이 올림픽으로 떠들썩하기 전부터, 배두나는 그곳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벌써 한 번의 겨울을 보냈고, 봄을 지나 좀처럼 해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덥기는커녕 쌀쌀하기까지 한 여름을 지나는 중이다. 그녀는 그렇게 꽤 오랜 시간 런던에 머물며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20대의 그녀는 마음껏 놀기 위해 그곳을 찾았었고, 놀기를 마친 30대의 그녀는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다이얼로그 코치의 집에 머물며 작심하고 영어를 배우는 중이다. 그렇게 런던에는 그녀가 먼저 가 있었고 <마리끌레르> 화보 촬영팀은 뒤늦게 합류했다. 집과 학원을 오가며 생활은 단조롭게, 머리는 예민하게 지내던 그녀는 오랜만의 화보 촬영이 꽤 즐거운 듯했다. 이상 기온으로 날이 추운 데다 거의 매일 비가 내려 (그런데 운 좋게도 촬영이 있던 날에는 거짓말처럼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꺼운 옷을 걸치고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갈 길만 걸어가던 그녀는 오랜만에 주위 시선을 즐겼다. 옷을 갈아입고 포즈를 잡으며 그녀는 외쳤다. "아! 나 오늘은 정말 연예인이 된 것 같아!" 그녀의 방과 주인집의 작지만 동화 같은 정원, 노팅힐, 타워 브리지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촬영을 이어갔다. 그녀의 방은 여행자의 그것 같기도 했고, 생활인의 그것 같기도 했다. 집에 있는 물건이라곤 덜렁 책상 하나와 침대 하나, 그리고 여행 가방이 전부였다. "지난해 12월에 런던에 왔어요. 한국에는 영화 <코리아> 프로모션 때문에 잠깐 들어갔었고, 어떤 날은 영화 홍보를 위해 딱 3일만 있다가 이곳으로 돌아온 적도 있죠. 이곳에서 제 생활은 매우 단조로워요. 수업 외에는 별다른 일과도 없고요. 참! 얼마 전에는 밀라노와 바르셀로나에 다녀왔어요. 바르셀로나에서 런던에서 못 본 햇빛도 실컷 즐기고 선탠도 했죠. 무려 2주일간의 여행이었어요." 선생님들의 휴가 기간에 맞춰 그녀도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꽤 모범생다운 생활 패턴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한번도 수업을 빼먹은 적이 없다. 사실 그녀는 단 한 번도 수업에 빠진 적이 없다고 말하고서는 대뜸 문자 한 통을 보내왔다. 내용도 참 구구절절했다. '아, 아니었어요. 지금 생각 났어요. 한 번 빠졌어요! 감기 몸살에 배탈까지 겹쳐서 도저히 수업을 들을 수 없었거든요.'

그녀는 일탈 따위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일부러 영화도 많이 보러 다녀요. 리스닝에 도움이 되니까요. 아주 우울한 날에는 <타임아웃>을 보고 볼 만한 영화를 고르곤 하죠. 하루는 혼자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갔어요. 대사도 없고 읽을 필요 없이 그냥 듣기만 해도 되는 공연을 보러 간거예요. 그러곤 제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 연주가 이어지는 다섯 시간 내내 울었어요. 끊임없이!" 그러니까 그날은 그녀의 귀가 처음으로 쉰 날이다.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촬영을 시작한 베를린에서부터 배두나의 귀는 단 하루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매니저도 없이 혈혈단신 갔으니 말 한 마디라도 놓칠까봐 그녀는 항상 귀를 쫑긋 세운 상태였고 그 긴장은 런던에서도 이어졌다. 수업을 할 때도, 길을 걸어갈 때도, 영화를 볼 때도 늘 긴장 상태이던 귀가 오케스트라 공연을 들으며 비로소 쉴 수 있었던 거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듣지 않아도, 가만히 앉아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에 괜히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아무렇지 않게, 별다른 스트레스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두나's 서울놀이>라는 책을 쓰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이라고. 런던에 여행을 온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녀는 아주 오랜 시간 서울을 떠나 있다. 분명 외로울 것이고 서울이 그리울 것이다. "서울이 이렇게 그리운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올해 런던은 무척 춥고 항상 흐려요. 아, 양념통닭도 정말 먹고 싶어요. 지금의 나는 마치 붕 떠 있는 느낌이에요. 이곳에 여행을 온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짜 집도 아니라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것 같아요." <마리끌레르>와 촬영이 있던 날, 그녀의 오빠가 런던에 휴가를 왔다. 길을 가다가 마주쳐도 그녀의 오빠라는 사실을 알아챌 만큼 배두나와 똑 닮은 그는 외로워하는 동생을 위해 휴가 계획을 바꿔 런던으로 온 것이다(우리가 농담으로 그녀의 오빠를 '두나씨'라고 불렀을 정도로 둘은 꼭 닮았다). 그녀에게 가족은 언제나 가장 큰 위안이 되어준다. "힘들 때마다 가족에게 가장 많이 의지해요. 상투적인 것 같아 다른 것을 떠올려보려고 해도 역시 답은 가족이에요. 요즘도 엄마와 '카톡'으로 수다를 떨거나 동생이 보내주는 조카 사진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얼마 전에 첫 조카가 생겼거든요. 아아! 동생이 사진을 보내줄 때마다 미쳐버릴 것 같아요. 그렇게 예쁜 아이는 처음 봤어요!" 그리고 팬들과 채팅을 하며 힘을 내곤 한다. 팬들과 인터넷으로 직접 소통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그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해요. 누군가와 친해지기까지 적어도 10년은 걸려요. 그래서 제 친구들은 모두 10년 지기죠.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 말고 본질이 훌륭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나는 사실 배두나가 <린다 린다 린다>에서 순진하고 솔직한 창법으로 '린다린다~린다린다~' 하며 노래를 부를 때, 혹은 <공기인형>에서 비디오 가게 남자와 사랑에 빠질 때, 그녀의 연기가 치열함의 결과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녀에게만 어울리는 역할이고, 그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라고 생각했다. 배두나는 다른 여배우에게는 없는 '다름'의 아우라가 있는 여배우니까 말이다. 그런데 <코리아>의 북한 탁구 선수 '리분희'는 달랐다. 그녀가 완성한 북한 말투와 탁구 실력은 그 정도를 가늠하기조차 힘든 수련의 결과다. <공기인형>에서 그녀가 진짜 공기인형 같았듯 북한 말투, 왼손잡이, 그리고 탁구 실력까지 본래 그녀가 가지고 있던 것처럼 보이는 데는 그녀의 성격도 한몫했을 터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촬영장에서 동료 배우들이 제가 제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말을 했어요. 그러고 보면 전 뭘 하는 데 있어서 잘 만족하지 못해요.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말해줘도 난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고 생각해요. 자신감이 없지는 않은데 무의식적으로 제 자신을 중간 정도에 두려고 해요. 너무 높거나 너무 낮게 두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나는 분명 정열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야심찬 편도 아니고요. 이 두 가지는 제 단점이기도 해요. 대신 항상 나태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자신한테 인색한 그녀는 발톱이 빠질 때까지 연습을 했고, 마침내 배두나는 리분희가 되었다. 연습으로 안 되는 것은 없다는 그녀의 신념은 그렇게 통했다. <코리아>의 촬영이 끝나고 그녀는 이제 영어를 수련 중인 셈이다. 영국에까지 건너와서 영어 공부를 결심한 것은 칸 영화제에서의 기억 때문이다. 그때는 통역이 인터뷰를 도와주었는데 제대로 된 전문 통역사가 아니다 보니 진행이 수월치 않았다. 심지어는 말이 잘못 전해지기도 했다. 자신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인데 곡해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영어를 제대로 배워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직까지 인터뷰 일정이 정해지지는 않았어요. 실제로 영어 인터뷰를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리고 인터뷰를 하게 되더라도 프로모션 때 통역을 쓸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적어도 통역을 맡은 사람이 제대로 내 말을 전달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하잖아요." 그러고 보면 그녀는 좀처럼 자신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하긴 정열적이지 않다고 해서 게으른 것은 아니다. 연기를 하고 있거나, 작품을 준비하고 있거나 혹은 새로운 취미 생활을 만들거나 그도 아니면 이렇게 영어를 배운다. 그녀는 무언가에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타입이다.

<두나's 런던놀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스물여섯의 그녀에게 런던은 놀이로 충만한 곳이었다. '너도 나처럼 놀아봐'라고 부추기며 런던 구석구석과 그녀의 소소한 쇼핑 리스트, 여행하면서 들었던 이런저런 생각을 보여주던 그녀는 어느덧 30대가 되었다. 언제까지나 젊음과 청춘이 어울릴 것 같던 그녀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요즘도 내가 나이를 헛먹었구나'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리고 여전히 약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도 20대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여유가 생겼어요. 20대의 배두나는 아주 극단적이었어요. 엄마가 '너는 불과 얼음이 공존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거든요. 그래서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였던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이제는 감정의 완급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어요. 때로는 상황을 관망할 줄도 알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며 마음을 다잡을 줄도 알게 되었죠." 그리고 말했다. "20대와 30대의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가 있긴 해요. 20대에는 연애를 쉬어본 적이 없어요. 정말 쉬지 않고 연애를 했죠. 그런데 30대가 되고 나니까 연애하기가 아주 귀찮아졌어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 또다시 나를 처음부터 알리기도 귀찮아요. 지금 홈스테이 하고 있는 집에 매일 청소해주는 친구가 한 명 오는데 그녀가 어제는 이렇게 말했어요. '왜 매일 집에만 있는 거야? 나가서 데이트 좀 해!'. 아… 언젠가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겠죠?" 한때는 사랑을 쉬어본 적이 없고, 지금은 사랑이 귀찮아 졌지만 그녀 인생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엄마'가 되는 것이다. 의외다. 나는 그녀가 항상 부유하는 청춘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세월이 지나면 당연히 더 이상 젊진 않겠지만 여전히 불안한 젊음을 간직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녀는 엄마를 꿈꾸고 있었다. "내가 상상하는 40대요? 나는 꼭 누군가의 옆에서 누군가의 아이와 함께 있을 거예요. 내 인생의 최종 목표는 '엄마'예요. 배우로 아무리 성공하고 유명해져도 엄마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일 때문에 아이를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언젠가 반드시 엄마가 될 거예요."

그녀가 한국에 돌아오는 날이 점점 늦춰지고 있다. 좀 더 일찍 돌아오려 했는데 9월에 토론토 영화제에 초대되면서 런던에서 바로 밴쿠버로 가게 될 것 같다. 원래는 <클라우드 아틀라스> 촬영 전에 다 함께 미팅을 한 날인 작년 9월 8일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 9월 8일에 모두 모이기로 했었다. 꿈 같은 광경이다. 워쇼스키 감독 형제와 톰 행크스, 할리 베리, 휴 그랜트 등의 할리우드 스타들과 배두나가 함께 앉아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수다를 떨고 함께 식사를 한다니 말이다. 밴쿠버 영화제 일정을 맞추기 위해 날짜는 바뀔 듯하지만 어쨌거나 이 배우들은 다 같이 모여서 밴쿠버로 날아갈 계획을 세웠다. 아마 한국에는 그 모든 일정이 끝나야 돌아오게 될 듯 하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19세기부터 2100년대까지 5백여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전생과 현생, 그리고 환생의 세계를 사는 인물의 이야기를 러닝타임 3시간이 넘는 방대한 스토리에 담아냈다. 얼마 전 예고편이 공개되었는데 예고편만도 5분이 넘는다. 너무나 많은 내용이 들어 있어 도저히 1분여 길이의 예고편으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배두나는 2144년을 살아가는 복제 인간 '손미-341'를 연기했다. <공기인형>에 이어 또 한 번 인간이 아닌 인간이 된 셈이다. 그러고 보면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부터 <클라우드 아틀라스>까지 그녀의 영화 선택은 대중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괴물>을 빼고서는 흥행작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일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출연작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공기인형>이 끝나고 드라마 <공부의 신>을 찍었으니 말이다. "사실 <코리아>가 끝나고 많은 영화 출연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단 한 편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어요. 저는 영화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어요. 영화만큼은 꼭 하고 싶은 작품을 찍고 싶거든요. 나 스스로 자랑스러운 작품 말이에요. 대신 영화로 인해 굳어지는 나의 언더그라운드 같은 이미지를 드라마로 상쇄하고 싶어요. 그런 식으로 대중과 거리를 좁혀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어차피 연기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고 나는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녀는 필름만큼이나 종이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한때 '두나의 놀이 시리즈'를 세편이나 썼던, 나름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녀는 앞으론 책을 쓰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존경하는 것처럼 종이와 글 쓰는 사람을 존경해요. 제가 책을 더 쓰게 된다면 책에 대한 나의 존경심을 스스로 무너뜨리게 될 것만 같아요. 내 안에 내공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책을 쓸 일은 없을 거예요."

그녀는 곧 밴쿠버 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할리우드 스타들과 나란히 걸을 것이며, <클라우드 아틀라스> 시사회에도 참석할 것이다. 그러곤 서울로 돌아와 다음 작품을 결정할 수도 있고, 마음에 맞는 작품을 만나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린다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새롭게 에너지를 쏟을 일을 찾아다닐 수도 있다. 아니면 또다시 런던으로 돌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이 되었든 그녀는 시간을 텅 빈 채 놓아두지는 않을 것이다. 오롯이 배두나의 것으로 채우며, 그녀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에디터: 박민

포토그래퍼: 김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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