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제주올레, 보드라운 초록의 길

정지혜 2012. 10. 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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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슬리(Dursley) 마을 스틴치콤 언덕(Stinchcombe Hill). 런던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인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런던과 달리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야말로 동화책 속의 작은 시골마을 같은 그곳에 제주올레를 품은 코츠월드웨이(Cotswold Way)가 기다리고 있다.

'제주올레-코츠월드웨이 우정의 길'은 작고 평화로운 시골마을, 더슬리에서 시작해 스틴치콤 언덕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5.5㎞의 순환형 트레일 코스다. 초반의 언덕길을 제외하면 큰 경사가 없고 대부분 완만한 길이어서 제주올레 길을 걷듯 놀멍 쉬멍 걸어 2시간30분이면 가뿐히 완주할 수 있는 난이도 중하의 걷기 편한 길이다. 편한 길은 심심하고 재미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글쎄, 과연 그럴까? 나도 궁금했다. 총길이 5.5㎞, 소요 시간 2시간30분, 난이도 중하로 소개되는 영국 코츠월드웨이에서 제주올레와의 우정의 길을 위해 새로이 찾아낸 이 길이 과연 어떤 풍경을,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목장과 도로를 가르는 키싱게이트. 사유지 주인이 트레일을 관리한다.

제주올레와 '우정의 길', 풍경도 비슷

길의 시작은 더슬리 마을 도서관 인근이다. 코스 초반에 오르막길이 있다 하여 내심 긴장하며 힘차게 발을 떼지만 불과 몇m 앞에 더슬리 마을에서 최고로 맛 좋은 맥주를 만든다는 자그마한 영국식 선술집(Pub) 앞에서 발걸음은 벌써 느려지기 시작한다. 무거운 발은 길을 따라 움직이지만 마음은 계속 제자리…. 그러나 2시간20분 후를 기약한다.

긴장하며 걷는 오르막길은 걱정했던 만큼 고되지는 않다. 200m도 채 되지 않는 데다, 목장과 도로를 가르는 키싱게이트(kissing gate)를 지나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영국은 트레일(Trail:산길, 오솔길, 시골길)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정부 차원의 탄탄한 백그라운드를 자랑한다. 특히 트레일을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한 법안이 오래전부터 마련되어 있어서 다른 나라의 트레일에 큰 귀감이 되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국립 트레일로 지정된 길이 사유지를 지날 경우 사유지 주인은 트레일을 유지·보수·관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사유지로 길을 낼 때 특히 조심스러운 우리네 사정에 빗대보면 참으로 대단하다.

오르막 끝, 드디어 스틴치콤 언덕의 정상에 선다. 스틴치콤 언덕 주변은 골프장이 조성되어 있다. 편안한 차림으로 집 앞 산책 나오듯 골프장에 소풍 나온 가족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에버그린의 나라 영국과 사철 푸름을 간직한 제주도에서만 가능한 이 보드라운 초록의 여유로움이란…. 우정의 길을 내는 데 이 골프장의 협조가 참으로 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바 있어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사무실과 주차장 사잇길을 지나 드디어 흙길을 밟는다. 폭신한 흙과 잔디를 사뿐사뿐 밟고 지나는 걸음이 너무도 상쾌해 포장된 오르막길을 올라오며 후끈 달아오른 발이 금세 가뿐해진다.

코츠월드웨이는 초반의 언덕길을 제외하면 큰 경사가 없다. 푹신한 잔디와 흙이 깔려 있다.

골프장 사무실을 지나고부터는 길이 잔디에 덮여 보이지 않기도,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기도 하니 길 표식을 잘 확인하며 걸어야 한다. 제주올레-코츠월드웨이 우정의 길 표식은 코츠월드웨이 길 표식에 제주올레의 상징인 간세 모양(조랑말)이 더해진 데다, 진초록으로 색상이 지정되어 있어서 어디서든 눈에 잘 띈다. 길 표식을 좇아 흙길을 따라 조금 걷다보면 외마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게 되는, 그야말로 숨이 멎을 듯한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제주올레 1코스 알오름에서 내려다본 시흥리마을과 우도, 바다 풍경에 3코스 통오름의 평화로운 아기자기함, 바다목장의 상쾌하고 장엄한 느낌을 더해놓은 듯한 그 풍경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촉촉한 습기를 머금은 영국의 바람이 머리카락을 쓸고 지나갈 때, 감동은 절정에 달한다.

발 아래 마을 풍경은 조각보 같아

봄에는 영국도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형광노랑 유채꽃이 때로는 군락으로, 때로는 오순도순 작은 무리로 맑게 흔들리며 길 곁에 이어져 여행자를 반갑게 맞는다. 4~5월이 제철인 블루벨도 발아래 한가득이다.

이즈음에서 주변 풍경에 넋을 잃고 두리번거리다보면 자연의 색 가운에 유독 눈에 띄는 파란 색깔의 귀여운 녀석이 떡하니 앞에 놓여 있다. 바로 간세 인형이다. 우정의 길 중간 지점인 이곳에 제주올레의 상징물이자 길 표식인 간세가 있다. 우정의 길에 대한 설명을 안장에 업고 늠름한 자태로 진행 방향을 가리키고 서 있는 녀석을 발견했을 때의 감동은 풍경에서 받은 감동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과 간세를 마음에 담고 조금 더 걷다보면 이 길을 찾아낸 코츠월드웨이 보호위원회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 '최고의 뷰포인트'가 나온다. 진행 방향을 일러주는 길 표식 외에 다른 안내 표식이 전혀 없는 코츠월드웨이에서는 뷰포인트도 따로 표시가 되어 있거나 설명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직접 그 길 위에 서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어디가 뷰포인트인지, 왜 그러한지. 백 마디 설명 따위 단번에 사족으로 만들어버리는, 마음에 와 닿는 풍경이랄까…. 물론 코츠월드웨이 가이드북과 홈페이지에는 뷰포인트가 친절한 설명과 함께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정지혜 스틴치콤 언덕 정상에 서면 숲의 전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이 풍경을 굽어보며 촉촉한 영국의 바람을 맞는 기분이 상쾌하다.

영국은 비가 많이 내리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영국에도 화창한 날이 많다. 영국인들 스스로도 놀라고 즐거워하는 이상기후. 그럼에도 영국에서 맞는 비는 자연스럽다. 비 내리는 날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 참 좋을 듯한, 돌로 지어진 오두막 쉼터를 지난다. 이 석조 오두막 쉼터는 스틴치콤 언덕을 개발사업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주변의 땅을 매입하고 지금껏 관리해오고 있는 스틴치콤 힐 트러스트(Stinchcombe Hill Trust)에서 지어 관리하는 곳이다. 세계 여러 트레일의 조성 목적과 그 역사를 들여다보면 개발사업에 맞서 자연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트레일을 개발하고 조성한 사례가 많이 보이는데, 코츠월드웨이도 그러한 사례 중 하나다. 초록의 길은 다시 골프장 주차장 곁에서 이어지고 만난다.

코츠월드웨이 보호위원회는 정규 트레일 코스에서 뻗어 나온 사이드 트레일을 우정의 길을 위해 새로이 개발했고, 제주올레는 중산간의 고즈넉함과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품은 제주올레 3코스를 우정의 길로 정했다. 이 길을 찾아내면서 코츠월드웨이 보호위원회 제임스 블로클리 국립 트레일 매니저는 '쌍둥이 트레일'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는데, 직접 그 길 위에 서보니 그 표현이 충분히 이해된다. 사철 초록을 볼 수 있는 에버그린의 싱그러움과 조각보를 이어놓은 듯한 발아래 마을 풍경은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제주올레 3코스와 꼭 닮아 당장 제주의 바다 내음을 품은 바람이 슁~ 하고 지나갈 것만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코츠월드웨이를 끼고 이어지는 마을들은 참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더슬리 마을도 그렇지만 동화 속에서 막 꺼내놓은 듯한,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코츠월드웨이에 발걸음하는 이들은 길을 걸을 때만큼이나 느린 걸음으로 마을을 둘러보며 놀멍 쉬멍 걷는다.

ⓒ정지혜 트레킹 도중 비가 오면 오두막 쉼터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담한 돌집이 여행자를 부른다.

걷기를 마치며 시원한 맥주 한잔

코츠월드웨이 주변의 작고 아담한 영국식 집의 외벽은 보통 라임스톤이라고 하는 석회석이 주재료인 경우가 많다. 코츠월드웨이를 걷다보면 제주도에서처럼 돌담도 자주 만날 수 있는데, 이때 사용되는 돌 역시 석회석인 경우가 많다. 주변의 자연자원을 주재료로 사용한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정감이 넘치는 그곳의 돌담 풍경은 아기자기한 마을과 하모니를 이루어, 여행이 끝난 이후에도 잔잔한 감동으로 눈 안에,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더슬리 마을로 돌아내려가는 길은 내리막길이라 조심 또 조심. 시작하는 길에 눈과 마음에 담아두었던 선술집에 들러 시원하고 달큰한 맥주 한잔을 들이켜고는 생각한다. '천국은 멀리 있지 않아.' 분명히 그렇다. 제주올레를 걸으며 행복과 평화, 치유를 경험한 이들은 걷기에 중독되어, 제주올레에 중독되어 계속해서 다른 걷기 좋은 길을 찾아 나선다. 제주올레만 한 길이 없다? 해외에 나가서도 제주올레 길을 걷고 싶다? 영국 코츠월드웨이에 제주올레를 품은 오소록한 그 길이 있다.

정지혜/

사단법인 제주올레의 막내에서 대외협력팀장으로 쾌속 승진한 제주올레의 마스코트. 팀장이지만 팀원은 없고 대외협력 업무와 언론 홍보까지 맡아서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휴가 때마다 해외 트레일을 찾아 염탐하고 온다.

코츠월드웨이 가는 길

코츠월드웨이는 영국의 15개 내셔널 트레일의 하나로, 북쪽의 치핑캠프던(Chipping Campden) 타운에서부터 남쪽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인 바스(Bath)에 이르는 162㎞의 길이다. 이 길은 런던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중세 유럽의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해 30년 넘게 세계 도보여행자들에게 사랑받아왔다. 특히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바스는 15세기 바스 수도원(Bath Abbey)을 비롯해 유럽 최고의 역사적·건축학적 의미가 있는 보물이 가득하다. 2000년 전 로마인이 만들어놓았다는 온천도 아주 유명하니, 여정의 끝에 바스를 방문해 고단한 발을 쉬게 해주는 것도 좋다.

버스 또는 기차역(캠앤드더슬리 역 Cam and Dursley Station)에서 시종점인 더슬리 마을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인터넷(www.traveline.org.uk) 또는 전화(0871-200-2233)로 교통편을 예매할 수 있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 경우, 런던패딩턴(London Paddington) 역에서 출발, 브리스톨파크웨이(Bristol Parkway) 역에서 한 번 갈아탄다. 캠앤드더슬리 역까지 2시간 정도 소요되고 요금은 왕복 49파운드 정도. 환승이 한 번 있지만 차표는 런던패딩턴에서 캠앤드더슬리까지 하나만 사면 된다. 기차표 예매는 http://www.nationalrail.co.uk에서.

더슬리 마을은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마을 내에 식사와 음료가 모두 가능한 훌륭한 맛집이 여럿 있다. 길 중간에는 상점이 없으니 간단한 스낵과 음료를 이곳에서 미리 준비해가면 좋다.

먹을 곳으로는 스틴치콤 언덕 위 우정의 길 곁에 매우 고풍스러운 B & B를 강력 추천한다! 자녀들이 외지로 나가 부부 내외만 살고 있다. 우정의 길이 열리면서 코츠월드웨이 보호위원회의 권유로 B & B를 시작했다. 제주올레의 할망숙소와 비슷한 개념이나 할머니는 아니고 매우 우아한 주인아주머니가 계신다. 영국식 아침식사가 제공된다. 오래전 영국의 성주들의 아침상이 꼭 그랬을 것만 같다. 포크를 집는 손길이 나도 모르게 우아해지리라.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내주는 향기로운 홍차와 고소한 쿠키는 구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보너스! 사전 예약 필수! 트윈 70파운드(약 10만8660원), 싱글 50파운드(약 9만550원)이다(아침 포함).

참고:코츠월드웨이 홈페이지(http://www.nationaltrail.co.uk/Cotswold/)

정지혜 (제주올레 대외협력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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