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아 놀자" 조선 선비의 유혹.. 사과향 그윽한 영주 '선비길'을 걷다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경북 영주시 순흥면은 선비의 고장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과 영주 선비들이 실제로 살았던 생활공간을 복원한 선비촌을 비롯해 금성대군의 충절이 서려 있는 금성단, 그리고 퇴계 이황을 비롯해 수많은 선비들이 걸었던 소백산 자락길이 모두 이곳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나날이 가을이 깊어가는 순흥의 선비길을 따라 선비여행을 떠나본다.
'인삼의 고장' 풍기에서 '선비의 고장' 순흥까지 시나브로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낭만가도는 소수서원 앞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옷깃을 여민다. 조선시대 353년 동안 4000여명의 선비를 배출한 소수서원의 기세에 주눅이 들어서가 아니다. 그 옛날 선비처럼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소수서원 앞 소나무들의 기품에 마음이 경건해진 때문이리라.
학자수(學者樹)로 불리는 소수서원의 소나무는 800여 그루로 대부분 수령 300년이 넘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선비들에게 한겨울에도 늘 푸른 소나무처럼 참선비가 되라는 뜻에서 소나무에 학자수라는 이름을 부여한 때문일까. 이른 아침 산안개 희미한 솔밭에 서면 수백 년 시공을 넘어 소수서원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리는 듯하다.
소수서원 앞에는 서원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수령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 두 그루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조선 중종 37년(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소수서원의 전신인 백운동서원을 세울 때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암수 한 쌍으로 오랜 풍상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잘 생긴 소나무 몇 그루가 거울처럼 맑은 수면에 반영을 드리운 죽계천의 징검다리를 건너 호젓한 산책로에 들어서면 취한대(翠寒臺)와 경자바위가 반긴다. 취한대는 시원한 물빛에 취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이고, 경자바위에 새겨진 붉은색의 '경(敬)'은 경천애인의 머리글자이다. 주세붕 군수가 백운동서원을 지을 당시 금성대군의 원혼이 밤마다 울부짖자 이를 달래기 위해 '경(敬)'을 새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소수서원과 다리로 연결된 선비촌은 영주 선비들의 고택을 재현한 공간으로 10여년 전 기와집과 초가집 12채를 비롯해 강학당, 물레방앗간, 대장간, 정자 등 40채의 건물을 지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관광객들이 선비촌에서 실제로 숙박체험을 하면서 돌 하나 풀 한 포기조차 수백 년 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선비촌은 가을이 한창이다. 초가지붕에는 커다랗게 자란 박과 호박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게 매달려 있고, 담장 아래에는 온갖 화초들이 저마다 꽃을 피우고 있다. 두암고택 뒤란 장독대에는 낙엽이 하나 둘 쌓여 가고, 푸른 이끼가 잔디처럼 깔려 있는 마당에는 참새들이 종종걸음으로 먹이를 쪼고 있다. 모두 어린시절의 빛바랜 기억 속에 남아 있던 풍경들이다.
소수서원과 선비촌에서 주유하던 선비길은 자연스럽게 죽계구곡(竹溪九曲)을 품고 있는 죽계천을 따라 소백산을 향한다. 죽계구곡은 소백산 국망봉에서 발원한 죽계천이 선비의 고장에서 빚은 아홉 폭 두루마리 산수화로 고려시대 문장가 안축이 지은 '죽계별곡'의 배경지로도 유명하다.
소수서원 앞 마을로 들어서면 단종 복위운동에 연루되어 순흥에 유배됐던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을 모신 금성단이 쓸쓸한 표정으로 맞는다. 금성대군은 이곳에서 순흥부사 이보흠과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돼 세조로부터 살해당하고 순흥부는 폐부되는 아픔을 겪는다.
금성대군의 죽음을 지켜본 증인은 수령 1200년의 은행나무이다. 잎사귀 모양이 오리발을 닮아 압각수(鴨脚樹)로 불리는 이 은행나무는 고을이 폐부될 때 스스로 고사했다가 200년 후 순흥부가 복권되자 되살아나 순흥 선비들의 한이 서린 마을을 홀로 지키고 있다.
금성단과 순흥향교를 뒤로하고 마을을 벗어나자 사과밭과 황금들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순흥을 비롯해 영주의 고을을 빨간 점묘화처럼 수놓은 영주사과는 전국 생산량의 14%를 차지하는 특산물. 제멋대로 뻗은 굵은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주렁주렁 달린 사과가 하늘을 떠받친 소백산과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그린다.
순흥저수지 옆 아스팔트 도로를 지루하게 걷던 선비길은 600년생 느티나무 세 그루가 다정한 배점마을의 삼괴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배점'은 배순의 무쇠점(대장간)이 있던 마을이라는 뜻. 대장장이 배순은 틈날 때마다 소수서원을 찾아 퇴계 선생의 강의를 문밖에서 들었다고 한다. 이를 가상하게 생각한 퇴계가 배순을 제자로 거두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선비길은 삼괴정에서 구곡길로 이름을 바꾼 후 순흥초등학교 배점분교에서 죽계구곡을 끼고 초암사를 향한다. 차 한 대 지나갈 정도로 좁은 시멘트길 옆으로 사과밭이 펼쳐지고 길섶에는 다람쥐 식량으로 쓰일 밤과 도토리가 지천으로 굴러다닌다.
쟁반을 구르는 옥구슬처럼 청아한 목청의 죽계천은 의상대사가 초막을 짓고 살았던 터라고 전해지는 초암사 앞에서 절정을 이룬다. 너무 짙어 검은 계곡은 퇴계가 죽계천을 거슬러 오르며 명명한 죽계구곡 중 제8곡인 금당반석. 하얀 계류는 푸른 이끼로 단장한 바위를 넘을 때마다 우레 같은 소리를 내고 바위를 휘감은 빨간 돌단풍은 물소리에 놀라 파르르 몸을 떤다.
구곡길은 보랏빛 꽃향유가 지천으로 피어있는 초암사 앞 길섶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단풍이 한 잎 두 잎 물들기 시작한 나무터널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퇴계가 1549년 4월 '유소백산록'을 쓰기 위해 걸었던 바로 그 길이다. 그리고 국망봉과 비로봉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가을여행의 마침표를 찍는다.
영주=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뉴스 미란다 원칙] 취재원과 독자에게는 국민일보에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고충처리인(gochung@kmib.co.kr)/전화:02-781-9711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일본차와 한국차가 충돌한 결과" 日혐한 먹잇감 된 사진.. 페북지기 초이스
- "朴정부 또 기무사령관 교체..이번엔 육사 사조직 알자회 출신" 조선의 개탄
- "죽을 죄를 졌다"는 세월호 선장.. "살인의도는 없었다"
- 오늘밤 '붉은달' 뜬다..3년 만에 개기월식
- 중국 윈난성 6.0 지진, 1명 사망 324명 부상..진원 낮아 큰 피해 예상
- 셀린 송 감독 “‘기생충’ 덕분에 한국적 영화 전세계에 받아들여져”
- “태아 살리는 일은 모두의 몫, 생명 존중 문화부터”
- ‘2024 설 가정예배’ 키워드는 ‘믿음의 가정과 감사’
- 내년 의대 정원 2천명 늘린다…27년 만에 이뤄진 증원
- “엄마, 설은 혼자 쇠세요”… 해외여행 100만명 우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