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를 걸었다

2017. 5. 2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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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ING UP

건축가인 오영욱과 서울로 고가 보행길 '서울로 7017'을 걸었다

5월 20일 개장을 앞두고 서울로 7017(이하 ‘서울로’)을 찾았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자동차 행렬에 막혀 택시는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택시 기사가 버럭, 역정을 냈다. “박원순 시장은 왜 서울역 고가도로에 보행길을 만들어서 여러 사람 힘들게 하나 몰라.” 창밖으로 한창 공사 중인 서울로의 일부가 보였다. 그곳에는 택시 기사가 언급한 둥글고 큰, 소재가 콘크리트로 추정되는 화분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그 화분들이 더욱 비대해 보이는 이유는 그 위에 갓 옮겨 심어 키만 머쓱한 나무들이 서 있기 때문일 터. 서울로의 전신은 서울역 고가도로다. 서울역을 중심으로 철로가 모여들면서 끊어진 차도를 잇기 위해 역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형태로 설계됐다. 1970년에 준공한 이래 만리동과 남대문을 이으며 교통난을 해소해 준 이 도로는 2006년 심각한 안전 문제가 제기되면서 차량 통행이 전면 통제됐다. 그로부터 8년이라는 지난한 시간을 거쳐 철거 수순을 밟던 과정에서 안전 문제의 요인이 하중인 점에 착안, 자동차보다 가벼운 사람을 위한 길로 변경하자는 의견이 제기됐고 철거 대신 보행길로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서울로 7017’이라는 이름은 1970년 고가가 탄생한 역사성에 17개의 사람길로 이뤄진 현재의 기능성을 덧붙여 탄생했다. 서울로는 서울역 뒷동네 만리동과 중림동에서 서울역광장, 숭례문을 거쳐 남대문시장까지 사람길을 열어준다.

만리동 방향에 위치한 14번 출입구 앞에서 건축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오영욱과 합류했다. ‘오기사’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오영욱(이하 ‘오기사’)의 대표작은 해외 여행담을 엮은 책이지만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는 저서를 낼 정도로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에 애착이 크다. 서울광장 아이스링크, 경의선 책거리 등 서울시와 공공 시설물을 설계한 경험이 여러 차례 있기에 그에게 서울로 동행을 제안했다.

일대는 막바지 공사로 시끄럽고 어수선했다. 놀란 오기사가 물었다. “언제 개장한다고 했죠?” 질문이라기보다 차라리 감탄사에 가까웠다. 우리는 공사 인부들과 자재들을 조심스럽게 헤집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회색 콘크리트 길가에 같은 소재의 크고 작은 화분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너머로 일정한 간격으로 달팽이의 나선형 껍데기를 닮은 원통형 건물이 솟아 있었다. 이 건물들은 앞으로 카페, 전시관, 소규모 무대, 안내소 등으로 활용되며 옥상은 전망대 역할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은 잿빛 일색의 다리는 분위기가 삭막했다. 난간 밑으로는 거미줄처럼 엉킨 여러 갈래의 기찻길이 보였다. 오기사에게 서울역 고가도로를 ‘사람길’로 조성한 선택이 근본적으로 옳았는지를 물었다. “물론 의미 있는 일입니다. 기찻길이라는 게 산업화 시대에 마땅히 있어야 했고, 도시가 발전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 시설입니다. 하지만 도시가 점점 진화하면서 사람들은 보행 기반의 도시가 더 살기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철도는 도시의 맥락을 끊는 장애물로 전락했어요. 그 위에 서울로 같은 연결 통로를 놓는 건 도시의 미래를 위해 좋다고 봅니다. 낡은 시설물에 도시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부여하는 건 현재의 유행이기도 해요.”

2015년 12월 25일. 내가 서울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서울시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시민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기 위해 폐쇄된 서울역 고가도로를 이틀간 개장했다. 자동차로만 진입할 수 있던 고가도로를 걸어서 오르고 또 걸어본다는 사실이 몹시 설레었다. 고가에서는 서울로의 미래를 예고하듯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됐고 일부 사람들은 알록달록한 안료로 아스팔트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무리 중에는 박재동 화백도 있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화백이 일필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지켜봤다. “한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눈앞의 풍경보다 더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였다”며 오기사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동의해요. 난간과 안전시설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그대로 뒀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차도나 아스팔트로 그대로 유지했다면 차량 전용도로를 올라오는 맛이 배로 실감나지 않았을까요? 콘크리트를 새로 깔아 놓으니 이제 그냥 사람이 걷기 위한, 사람을 위한 공간처럼 보여 전복성이 희석되는 것 같아요.”

어느덧 다리 중심에 이르렀다. 왼편으로는 숭례문이, 오른편으로는 서울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꼭대기를 잇는 구름다리 한복판에서 협곡을 내려다볼 때처럼 탁 트인 풍경과 발 아래로 질서정연하게 흘러가는 자동차 행렬이 해방감과 속도감을 선사했다. “청계천이 처음 생겼을 때를 생각해 봐요. 이를 복원하면 교통 문제가 생길 거다, 산업이 죽을 거다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요. 기능성만큼 미감도 떨어진다고 신랄한 비판을 면치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봐요. 잘 연착륙해서 살아남았어요. 결국 우리가 그 시점에는 비판하고 아쉬움을 표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그것에 익숙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기사는 서울로가 옛 고가도로의 아스팔트를 콘크리트로 덮은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스팔트였다면 여름에 지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굉장할 텐데, 그런 점에서 콘크리트가 낫다고 봐요. 뉴욕의 고가 공원인 하이라인을 흉내 내 목재 데크를 까는 게 유행이 됐어요. 그 와중에 서울로가 콘크리트를 활용한 건 개발 시대를 상징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어요. 지금은 대체로 회색 일색이어서 화사하지 않다고 느껴지겠지만 3~4년만 지나 봐요. 이 다리가 애초에 그렇게 생겼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거예요. 그게 바로 시간의 힘이죠.” 오기사는 이렇게 설명한 뒤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시간은 콘크리트조차 자연으로 만들어요.”

서울역 광장 맞은편 빌딩 숲에 다다르자 그전까지 실감하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진정으로 도심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고가도로를 걷고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뻥 뚫린 대로변 위를 가로지르며 걷는 것과 고층 건물 사이를 걷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서울로는 청계천처럼 도시를 일상적이지 않은 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이 가장 크게 부각될 겁니다. 사실 이 고가가 이미 존재했던 차도이기 때문에 처음 경험하는 높이나 각도는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속도만큼은 전혀 다르지요. 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며 포착한 풍경을 천천히 멈춰 서서 찬찬히 볼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줄 겁니다. 언젠가 날씨 좋은 날, 반려견과 함께 다시 이곳을 걸어야겠어요.” 그제야 다리 위의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2년 전 겨울, 지금보다 낡고 칙칙했던 아스팔트 도로를 밝고 활기차게 꾸민 건 그 위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훈훈한 기운이었다. 서울로의 두 지점인 서울역 뒷동네와 남대문시장의 균형 있는 발전을 바라며, 사람들이 온기로 콘크리트 도로를 가득 메우는 날 다시 한 번 서울로를 걸어 보리라.

사진 KIM S.GON

글쓴이 이주연

에디터 김영재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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