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경의 Shall We Drink] <50> 운하의 도시, 아베이루의 반전 매력 속으로

2017. 1. 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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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를 따라 몰리세이루가 유유히 떠다니는 아베이루 풍경.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곤돌라’가 있다면 포르투갈 아베이루에는 ‘몰리세이루’가 있다. 곤돌라보다 화려한 몰리세이루에는 멀리서 보면 동화적인데, 가까이서 보면 19금 카툰 같은 그림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배다. 한데, 몰리세이루(Moliceiro)의 원뜻은 ‘수초를 수집하는 남자’란다. 그 배경은 이렇다. 호수와 바다와 만나는 하구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아베이루(Aveiro) 사람들은 석호에서 수초를 채취하고, 바다로 나르기 위해 운하를 만들었다. 빨강, 노랑, 초록 총천연색 배에 수초를 싣고 운하를 부지런히 오갔다. 사람들은 수초, 몰리수(moliço)를 배에 싣고 나르는 남자와 배를 몰리세이루라고 불렀다.
“아베이루에 왔으면 몰리세이루를 타야죠. 몰리세이루를 타야 운하에 놓인 다리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어요. 이왕이면 석양 무렵에 타면 제일 좋아요.”
푸른 아줄레주로 타일로 벽화를 장식한 아베이루 옛 기차역.
아베이루에 수십 번은 더 드나들었다는 가이드 카롤리나의 조언대로 몰리세이루는 노을 질쯤 타고 그 전엔 걸어서 아베이루를 둘러보기로 했다. 산책은 옛 기차역에서부터 시작했다. 아베이루의 역사를 푸른 아줄레주(Azulejo) 타일로 그려놓은 옛 기차역은 아베이루를 이해하는 여정의 시작점과도 같았다. 새하얀 벽을 캔버스 삼아 운하 위의 몰리세이루, 염전을 일구는 사람 등을 그림 기차역이 마치 옛 이야기책처럼 보였다.
달걀노른자와 설탕을 듬뿍 넣어 만든 디저트, 오부스 물레스.
기차역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암호 같은 이름의 엠1882(M1882). 밖에서 벨을 누르면 문을 열어준다길래 스피크이지 바인가 했더니, ‘오부스 물레스(Ovos Moles)’ 가게였다. 그것도 1882년 마리아(Maria)가 문을 연 이래 130년 넘게 대대로 전통 방식대로 과자를 만들어 온 곳. 오부스 몰레스는 달걀노른자와 설탕을 듬뿍 넣어 만든 과자로 몰리세이루 만큼 유명한 아베이루의 또 다른 명물이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몸을 부르르 떨게 될 만큼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성당과 어시장을 둘러 본 후 운하를 따라 걸었다. 운하 옆으로 알록달록한 집들을 의좋은 남매처럼 사이좋게 서 있었다. 운하 주변에는 아르누보 양식 건물이 꽤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 눈에 띄게 아름다운 건물은 ‘아르누보 박물관’이었다.
아르누보 박물관에는 햇살 아래 차 한 잔 마시기 좋은 ‘카사 드 차(Casa de Cha)’가 있다.
“아르누보 박물관 뒤뜰 ‘카사 드 차’에서 차 마시고 갈래요?”
“좋아요. 그런데 방금 차라고 했어요? 한국어로도 차라고 해요”
“포르투갈 사람들은 중국에서 들여온 차(茶)를 원어대로 차(Cha)라고 불러요.”
카사 드 차에서 마신 타이완 우롱차.
차를 차라고 부른다는 말을 하는 카롤리나의 얼굴에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심지어 메뉴를 펼치니 홍차뿐 아니라 중국 녹차, 타이완 우롱차가 있는 게 아닌가. 지구 반대편에서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타이완부터 시작해 포르투갈까지 그동안의 내 여행이 운명적으로 연결된 느낌이랄까. 나는 우롱차를 카롤리나는 홍차를 주문했다. 아베이루의 아르누보 박물관에서 타이완 우롱차를 마시다니,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그거 알아요? 영국에 홍차를 알려준 게 포르투갈 캐서린 브라간사 공주예요. 공주가 찰스 2세와 결혼하면서 혼수품으로 배에 실어 간 게 값비싼 차와 향신료, 설탕이었어요. 결혼 전부터 차를 즐겨 마셨던 공주는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뱃멀미를 가라앉히기 위해 차를 대령하게 했다니까요.”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이야기를 포르투갈 사람인 카롤리나에게 직접 들으니 귀에 쏙 박혔다. 이 순간 이후로는 영국에 홍차를 전파한 사람이 포르투갈 공주라는 걸 잊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조금씩 낯선 도시에 대해 알아간다는 느낌이 좋았다.
몰리세이루 위에서 맛본 와인 한잔의 행복.
그 기분 그대로 몰리세이루에 올랐다. 선착장에서 출발해 학회 문화 센터까지 갔다가 카르카벨로스 다리까지 한 바퀴 빙 돌아오는 코스였다. 곤돌라처럼 뱃사공이 노래를 불러주진 않지만, 입담 좋은 가이드가 동행해 아베이루에 대한 설명을 청산유수로 쏟아냈다. 어두운 다리 아래를 지날 때는 호각의 일종인 부부젤라를 불어 배가 지나감을 알리는 것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운하에 아른아른 비치는 아베이루를 바라보며 오부스 물레스를 맛본 것이다. 한 손에는 오부스 물레스, 또 한 손에는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오는 스파클링 와인 들고서. 이 역시 뜻밖의 선물 같은 전개였다. 잔을 든 손 위로 설탕 시럽처럼 달콤한 햇살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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