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일간의 세계여행] 136.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 숨길 수 없는 매력

입력 2016. 12. 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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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해 안내데스크에서 숙소로 가는 교통편을 묻는다. 세계적인 관광도시 바르셀로나의 명성에 걸맞게 가이드는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잊지 않는다. 바르셀로나 가이드와 지하철 노선도를 받아 든다. 안달루시아를 떠나와 새로운 여행의 시작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메트로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니 신세계가 열린다. 뻥 뚫린 대로에 아름다운 건물들이 우뚝 서 있다. 방향 감각이 없어 경찰관에게 호스텔 주소를 보여주고 길을 안내받으며 고개를 드니 세상에, 해골모양의 발코니로 유명한 가우디의 까사바뜨요(Casa Batllo)와 옆 건물 까사아마뜨예르(Casa Amatller)가 바로 길 건너편에 보인다. 바르셀로나에서 예약한 호스텔은 까사바뜨요 바로 근처다. 드디어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호스텔은 건물 자체가 호스텔인 대기업형 숙박시설이다. 1층 프런트의 직원에게 예약을 확인하는 일도 한참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다. 6층에서도 구석에 있는 12인실의 침대 하나를 차지한다. 말라가에서 버지니아의 아파트를 혼자 쓰던 지난 며칠은 꿈이 되었다.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광장(Plaza de Catalunya) 을 중심으로 북쪽 신시가와 남쪽 구시가로 나뉜다고 한다. 내가 머무는 까사바뜨요 근처는 신시가 쪽이지만 카탈루냐 광장에서 멀지 않다. 거리에 늘어선 레스토랑과 바(bar), 매장 구경을 하며 걸으면 금방이다. 바르셀로나 최고의 번화가라는 카탈루냐 광장에는 일요일 오후가 지나가고 있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은 관광명소가 아니라 백화점, 극장 같은 건물인데도 예쁘고 아름답다.

분수 주변에서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과 행인들, 비둘기들이 광장을 메우고 있다. 많은 비둘기가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모함마드5세 광장의 비둘기 떼를 보고 온 나에게는 코웃음 거리다. 많은 것을 보고 온 긴 여행은 눈앞의 풍경 이상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저 번화가의 광장에 섰을 뿐인데 바르셀로나의 바람과 햇살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원래 계획한 여정이 아니어서 사전지식하나도 없던 말라가에서는 친구들의 가이드와 인터넷 정보로 여행을 했다.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오고 싶기도 하던 바르셀로나에 도착 하고 나니 가슴이 설레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햇살을 즐기며 카탈루냐 광장을 가로질러 람블라스거리(Las Ramblas)로 접어든다. 람블라스 거리를 중심으로 웬만한 볼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어 이 거리 자체가 바르셀로나 최고의 관광지라고 한다. 오늘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산책나온 기분으로 돌아보는데도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다. 그만큼 볼거리들도 넘쳐나고 관광객도 인산인해다. 과연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모이는 도시라는 말이 맞다. 지나가는 일행 중 동양인들이 있으면 반은 중국인이고 반은 한국인이다. 긴 여행, 반가운 나는 한국어가 들리면 자꾸 돌아보게 되지만 짧은 휴가로 바르셀로나에 방금 도착한 것 같은 사람들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관광객이 넘쳐나는 대도시라 그런 것을 알면서도 혼자인 것이 아쉽다.

거리에 작은 광장 하나가 나온다.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이곳의 타일 모자이크가 독특하다. 흰색 바탕의 원에 노랑, 빨강, 파랑으로 타일로 모자이크 되어있는 길바닥이 색감이 눈에 띄는 것이다. 이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화가의 작품이다. 바로 바르셀로나 태생의 초현실주의 화가 후안 미로(Juan Miro)의 작품이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미로의 원작을 밟고 서는 영광도 아는 사람만 누릴 수 있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거리의 초상화 화가가 걸어놓은 유명인들 그림은 한 눈에 다 알아볼 정도이니 거의 예술이다. 실제 그리는 모습을 봐도 비슷해서 눈길이 간다. 유럽에는 이런 화가들이 많지만, 서양인을 주로 그리는 그들의 특성상 동양인의 경우에는 잘 그려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람블라스 거리의 끝에는 사람의 동상이 서서 1유로를 던져주면 움직이기 시작하는 퍼포먼스가 한창이다. 대도시에서는 많이 봤던 모습들이지만 람블라스 거리의 동상들은 섬세하고 예술적인 치장과 여러 가지 종류의 동상이 줄을 서 있기 때문에 인간 동상 박물관이라도 들어온 것 같다. 볼거리가 넘치는 람블라스 거리를 산책하며 담담히 지나치려 해도 이미 산책의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시작되는 람블라스 거리의 끝에는 바다가 반긴다. 상상을 뛰어넘는 마술쇼가 한창인 공연장에 들어선 기분이다. 이곳은 바르셀로나 최대의 항구라는 포트벨(Port Vell)항구의 일부다. 지중해의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선착장에 정박된 작은 요트에서는 트럼펫 연주가 한창이다.

바다의 람블라(Rambla de Mar)라고 불리는 다리를 건너니 항구의 대형쇼핑몰과 연결된다. 마레마그넘(Maremagnum)이라는 이름의 쇼핑몰은 바르셀로나에서 유일하게 일요일에 여는 쇼핑센터라고 한다. 마침 오늘이 일요일이다. 어디서 쏟아져 나왔는지 람블라스 거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람블라스 거리를 따라 직진해서 걸어왔을 뿐인데 정신이 없을 지경으로 사람도 많고 볼 것도 천지다.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사람들 사이를 넋 놓고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카메라를 내밀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혼자 다니다보면 사진 부탁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당연하게 사진을 찍어주고 돌아서는데 방금 사진을 부탁한 사람이 나를 불러 세운다. 

인사와 통성명을 하고 나니 인자해 보이는 이 분은 프랑스인이다. 그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쇼핑몰의 바에 함께 들어가기로 한다. 베르땅이라는 이름의 프랑스인 노신사는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이다. 여자 친구와 일행이 내일 바르셀로나에 도착할 예정이라 오늘은 나처럼 혼자 바르셀로나를 즐기는 중이라고 한다. 여행이 길어지다 보니 외로움이 생겼는지 혼자 다닐 때에는 누가 말만 시켜줘도 고마워진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 심심하던 차에 말동무를 만난 게 반갑다. 생맥주를 한 잔 시켜놓고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와 여왕의 환대를 받았다는 바르셀로나의 바다를 바라본다. 부드러운 생맥주가 잘도 넘어간다. 스페인 사람들의 저녁식사가 시작되는 아홉시에 카탈루냐 광장에서 만나 베르땅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하고 헤어진다. 저녁을 누군가와 함께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베르땅 할아버지와 헤어져 항구를 돌아보다가 해지는 람블라스 거리를 되돌아온다. 바다에 파도가 넘실거리듯 바르셀로나의 거리에는 사람도 파도처럼 밀려다닌다. 당당하게 서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던 동상은 이제 사람이 되어 날개를 내리고 짐을 꾸리고 있다. 그도 나도 이렇게 하루가 끝나간다.

노천식당에는 불빛이 켜진다. 사람들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기웃거리고 웨이터는 호객을 한다. 되돌아가는 시간도 이 길을 걸어 나오던 것만큼 오래 걸린다. 밤의 람블라스 거리는 다른 매혹이다.

람블라스 거리에서 연결된 골목들을 들락거리고 눈에 띄는 맥도날드에서 와이파이도 얻어 쓰고 다니다 보니 어둠이 내려앉는다. 시간가는 줄을 모르겠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멀지 않은 숙소에 들렀다가 약속시간에 맞춰 나와서 베르땅을 다시 만난다. 골목의 작은 식당도 사람들로 이미 가득하다. 스페인어가 유창한 베르땅이 주문을 한다.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종업원과 주거니 받거니 농담도 잘하신다. 베르땅은 음식이 오면 아탈리아어로 종업원과 말을 하고 나와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가 가끔 스페인어가 튀어나오면 머리를 싸매는 시늉을 한다. 유럽의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영토를 나누고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나누며 공존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스페인어 잘하는 프랑스인과 저녁을 먹으니 요리가 다양하고 주문할 것도 많다. 이곳이 스페인이니 샹그리아는 당연히 한 잔 마시고 수프, 전채요리, 올리브까지 먹고 나니 배가 그득하다. 벌써 포만감이 올라오는데 정작 식사는 이제 시작이다. 해물 빠예야와 와인 한 병까지 비우고 나서야 식사가 끝난다.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이라 아이들과 교육에 관심이 많은 베르땅은 “한국의 페리 사고”을 언급하며 얼굴을 찡그린다. 세월호 사고를 말하는 것이다. 프랑스 학교의 제자들 이야기나 연로하신 아버지 이야기 등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서 더 재미있다. 오랜만에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포식하는 밤이다. 내일은 일행이 도착한다며 즐거워하는 베르땅과 메일 주소를 나누고 작별인사를 한다.

그는 람블라스 거리 근처의 호텔에서 머물고 내 호스텔은 그라시아 거리로 가야해서 방향이 반대다. 자정이 넘은 거리를 부지런히 걸어 숙소로 간다. 낯선 사람과의 길 위에서의 만남으로 저녁시간이 풍성해진다. 사람들이 초저녁이나 되는 것처럼 활보하는 람블라스 거리는 조명으로 더욱 아름답다.

밤에도 아름다운 분수가 뿜어대는 까탈루냐 광장을 지나 부지런히 걸어 호스텔로 돌아간다. 잠깐 둘러보았을 뿐인데도 바르셀로나는 그 좋은 향기를 숨기지 못한다. 이런 아름다운 도시, 훌륭한 건축가들이 더욱 멋지게 만들어 놓은 도시에 관광객이 넘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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