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비목 시비 앞에 서니 진한 애잔함이..

이귀전 2016. 10. 2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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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전쟁의 아픔이 곳곳에
평화의 댐 인근에 있는 비목공원. 한반도를 본뜬 지도 위에 세워진 철조망과 십자가 모양의 비목, 녹슨 철모에서 분단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이맘때였을 것이다. 단풍이 피기 시작하던 무렵 강원 화천 백암산 비무장지대를 순찰하던 초임 소대장은 듬성듬성 이끼가 낀 돌무더기 하나를 발견한다.

6·25전쟁이 끝난 지 10여년이 지난 후였지만, 연고자를 찾지 못한 무명 용사의 무덤이었다. 처절한 전투를 벌이던 중 간신히 시신이나마 수습한 모양새였다. 돌무더기 무덤 옆엔 녹슨 철모와 개머리판이 썩어 문드러진 카빈 소총 한 자루가 나뒹굴고 있었다.

전쟁 당시 카빈 소총은 초급 장교가 쓰던 총이었으니 초임 소대장과 같은 계급의 20대 청년이었을 것이다.

그 돌무더기는 전쟁의 포연 속에 산화한 꿈 많던 청년이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초임 소대장은 젊은 무명 용사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며 시를 썼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한명희(전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선생이 1960년대 강원 화천에서 장교로 군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시가 가곡 ‘비목’의 가사가 됐다. 문구 하나하나에 전쟁의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화천은 산과 하천이 피로 온통 뒤덮일 정도로 혈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6·25전쟁 이전엔 38선 이북, 북한 땅이었다가 전쟁 후 남한에 편입된 곳으로 중부전선 최전방이다.

화천의 멋진 풍광 이면엔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숨어 있다. 6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곱게 물든 단풍이 당시의 붉음을 대신하고 있고, 치열했던 전투가 벌어졌던 곳들은 여행객들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화천댐 건설로 생긴 호수 파로호는 1951년 5월 한국군 6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을 무찌르자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며 ‘깨트릴 파(破)’, ‘오랑캐 로(虜)’를 써 ‘파로호’로 명명했다. 파로호 안보전시관 옆길로 오르면 나오는 파로호전망대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품고 있는 곳은 화천댐과 파로호다. 일제강점기인 1944년 완공된 화천댐은 서울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 시설이었다. 6·25전쟁 전 북한에 속했던 화천댐을 점령하기 위해 남북은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결국 남한이 이를 차지했다. 화천댐 건설로 생긴 호수 파로호의 이름 역시 이 전투와 관련 깊다. 
화천댐 건설 당시 대붕호로 불렸다가 1951년 5월 한국군 6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을 무찌르자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며 깨트릴 파(破), 오랑캐 로(虜)를 써 ‘파로호’로 명명했다. 파로호 안보전시관 옆길로 오르면 파로호전망대가 나오는데, 그곳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파로호전망대에 있는 기념비.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저수량 10억t의 파로호가 핏빛으로 물들었고, 수년간 파로호에서 물고기를 잡지도, 먹지도 않았다고 한다.
화천댐 인근의 꺼먹다리 인근을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화천댐이 생기면서 놓인 꺼먹다리는 상판 목재 부분을 검은 콜타르로 칠해 붙여진 이름이다. 전쟁 당시 포탄과 총알에 부서진 다리 교각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화천댐이 생기면서 놓인 꺼먹다리는 상판 목재 부분을 검은 콜타르로 칠해 붙여진 이름이다. 전쟁 당시 포탄과 총알에 부서진 다리 교각은 시간이 멈춘 듯 현재도 그대로 보존돼 있어 애잔함이 느껴진다.

화천댐 인근에 있는 꺼먹다리도 전쟁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화천댐이 생기면서 놓인 꺼먹다리는 상판 목재 부분을 검은 콜타르로 칠해 붙여진 이름이다. 전쟁 당시 포탄과 총알에 부서진 다리 교각은 시간이 멈춘 듯 현재도 그대로 보존돼 있어 애잔함이 느껴진다.
화천에서 분단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곳으로는 평화의 댐과 칠성전망대가 있다.
평화의 댐 북측 방향을 보고 있는 여행객.
1980년대 후반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한 성금모금활동이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정부는 당시 불안한 정국 분위기 전환을 위해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의 수공(水攻) 위협을 국민에게 과장되게 발표했고, 당시 국민학교 1학년 학생들까지 코 묻은 돈을 성금으로 냈다. 우여곡절 끝에 1988년 높이 80m의 1단계 공사를 마친 후 125m로 높이는 2단계 공사가 2005년 마무리됐다.
 
평화의 댐 인근에 있는 비목공원.
평화의 댐 주변으로는 비목 공원, 세계 평화의 종 공원 등이 조성돼 있다. 비목 공원은 가곡 비목을 떠오르게 하는 비목이 서 있다. 한반도를 본뜬 지도 위에 세워진 철조망과 십자가 모양의 비목, 녹슨 철모에서 분단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비목 공원에서 차로 조금만 더 오르면 평화의 종 공원이다. 평화의 종은 분쟁의 역사를 겪었거나 분쟁 중인 국가 60여개국의 탄피 37.5t(1만관)을 모아 높이 5m, 폭 3m 규모로 제작됐다. 전 세계에서 소리를 낼 수 있는 종 중 세 번째로 크다. 
세계평화의 종은 분쟁의 역사를 겪었거나 분쟁 중인 국가 60여개국의 탄피 37.5t(1만관)을 모아 높이 5m, 폭 3m 규모로 제작됐다.
세계평화의 종 상층부에 있는 동서남북을 각각 바라보는 비둘기 4마리 중 북측을 바라보는 비둘기 오른쪽 날개가 잘려 있다. 분단으로 북으로 가지 못하는 현실을 빗대 비둘기 한쪽 날개를 분리해 놓은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종의 무게는 9999관이다. 3.75㎏(1관)이 빠져 있다. 종 상층부에 있는 동서남북을 각각 바라보는 비둘기 4마리 중 북측을 바라보는 비둘기 오른쪽 날개가 잘려 있다. 분단으로 북으로 가지 못하는 현실을 빗대 비둘기 한쪽 날개를 분리해 놓은 것이다. 이 날개가 붙여지는 날은 통일이 되는 날일 것이다.
세계평화의 종을 타종하고 있는 여행객들.
타종도 가능한데, 한 회당 500원을 내야 한다. 이 비용은 모두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자녀들에 대한 장학사업으로 쓰인다. 6·25 당시 참전한 에티오피아 군인들은 이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며 재산이 몰수돼 후손들도 어렵게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현재 모습을 보려면 북한을 지척에 볼 수 있는 백암산 자락의 칠성전망대로 가야 한다. 내비게이션에 표시도 되지 않는 곳이다. 민간인통제선(민통선)을 넘어 비무장지대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으로 산양리 군 장병안내소를 목적지로 설정해야 한다. 
칠성전망대에서 북녘 땅을 보고 있는 여행객. 칠성전망대는 민간인통제선(민통선)을 넘어 비무장지대 안에 있어 내비게이션에 표시도 되지 않는다. 산양리 군 장병안내소를 목적지로 설정해야 한다. 이곳에서 출입신고를 한 뒤 정해진 시간에 인솔자와 함께 방문할 수 있다.
이곳에서 출입신고를 해야 한다. 신고한다고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매일 오전 11시, 오후 1시, 3시에 입장할 수 있다. 그것도 인솔자와 동행해야 가능하다. 또 군부대 사격훈련이 있거나, 남북 관계에 따라 예고 없이 출입이 통제될 때도 많다. 출입 신고 후에도 기다릴 수 있으니, 감안해야 한다. 오토바이나 도보로도 출입할 수 없다.
안내소에서 전망대까지는 중간에 검문을 두세 차례 거친 뒤 20분가량 가야 한다. 전망대에 도착하면 바로 앞에 북녘 땅의 가을이 펼쳐진다. 남쪽은 울창한 나무들로 우거진 산이 붉은빛으로 변해 가을이 한창임을 알리고 있지만, 북녘의 산은 허하다. 
백암산 자락 칠성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땅. 남쪽은 울창한 나무들로 우거진 산이 붉은빛으로 변해 가을이 한창임을 알리고 있지만, 북녘의 산은 허하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 벌목을 하다 보니 민둥산들이 이어져 있다. 산 가운데로는 북한강 지류인 금성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 벌목을 하다 보니 민둥산들이 이어져 있다. 출입이 어려운 북측 비무장지대만이 나무가 듬성듬성 있을 뿐 그 뒤쪽으로 헐벗은 산들이 이어져 있다. 산 가운데로는 북한강 지류인 금성천만이 유유히 흐를 뿐이다.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을 보면 북측 병사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사진 촬영은 정해진 지역에서 주위 시설물들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된다.

화천=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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