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일간의 세계여행] 129. 사막나라서 '폭포 트레킹'..유쾌한 만남

2016. 10. 2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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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쉐프샤우엔에서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다. 도미토리를 함께쓰는 마리아와 버지니아가 폭포 트레킹을 예약해 놓았다. 성격 좋은 스페인 여인들이 나까지 염두에 두고 트레킹을 함께 갈 사람들과 가이드까지 벌써 다 조직해 놓은 것이다. 파란 메디나의 동화 속을 천천히 돌아다니려 했는데 뜻하지 않게 사막나라에서 폭포트레킹을 하게 되었다.

스페인 친구들을 따라 가이드가 기다리는 약속 장소로 나간다. 나와 스페인 친구 두 명 말고도 여행자 세 사람이 더 있다. 간식거리로 과일을 조금 사가지고 택시 두 대에 나눠 탄다. 가까운 곳인 줄 알았는데 시내 택시인 쁘띠 택시(Ptit taxi)가 아니라 외곽으로 이동할 때 타는 그랑 택시(Grand taxi)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국립공원(Talassemtane National Park)에 도착한다.


“쉐프샤우엔 근처의 폭포 트레킹”이라는 스페인 친구들의 말만 듣고 온 터라 이렇게 한참 외곽으로 나오는지 미처 몰랐다. 주차장은 여느 유원지처럼 번잡하다. 경치는 말할 것 없이 좋고 일요일이라서인지 트레킹 하는 사람도 꽤 많다. 이미 남미와 산티아고 길에서 말할 수 없이 많이 걸었기 때문에 폭포를 향한 걸음은 익숙하기만 하다.

아프리카의 북서쪽, 사하라 사막이 떠오르는 나라가 모로코다. 건조하고 뜨거운 사막기후로만 알던 모로코에서 울창한 산, 풍부한 물, 게다가 폭포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여행자나 모로코 사람들이 이곳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 계곡에 폭포가 두 개 있다는데 먼저 작은 폭포에 도착한다.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를 내려다보며 발을 쉰다. 햇볕 아래서 걷기엔 뜨거운 날씨지만 강물을 따라 걷는 그늘은 썰렁하다. 


나를 이곳에 데려온 버지니아와 마리아는 자신들이 힘들어지면 괜찮냐면서 내 걱정을 한다. 그럴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다.

“난 아주 괜찮아. 너희도 알잖아, 나 지난 달에 까미노 데 산티아고 900km를 30일이나 걸은 여자라고.”

마리아와 버지니아는 스페인 사람이기는 해도 남부 출신이라 그런지 내가 걸었던 북부의 마을 이름을 나보다 모른다. 한 달을 걸어서 지나온 여행자와 북부에 가보지도 않은 내국인의 큰 차이점이다. 그래서 내가 까미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존경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나마 까미노를 아는 스페인 사람들을 만나서 잘난 체 하는 중이지만, 까미노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렇게 걷는데 보조 가이드인 스무 의 아욥이 다가온다. 어느 여행자에게 배웠는지 한국말 몇마디를 한다. 그가 아는 한국어라 봤자 “우리 친구 아이가”라는 말과 “미친 거 아니야?”라는, 두 문장이다. 모로코에 여행 온 어느 부산 사람이 그에게 열심히 한국어를 가르쳐 줬나 보다. 뜻을 설명해 줘도 듣는 둥 마는 둥 억양이 재미있는지 자꾸 그 말들을 쏟아낸다. 세계 각지에서 떨어져 살던 사람들이 모로코에 여행을 왔고, 남들 다 가는 사하라 사막도 아닌 리프 산맥에서 함께 트레킹을 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친구될 자격이 있기는 하다. 맞다. 우린 친구다.

어느새 가이드가 말하던 “큰 폭포”에 도착한다. 꼭대기에서 분사하듯이 내려오는 물줄기가 다른 폭포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다들 감탄하면서 기념사진을 찍기 바쁘지만, 오랜만의 트레킹에도, 폭포의 가늘고 긴 물줄기에도 마음이 동하지는 않는다. 긴 여행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나에게는 그렇게 큰 감동이 아닌 것이다. 오늘 하루가 즐거운 이유는 폭포트레킹보다 오히려 함께 간 사람들 때문이다. 마리아와 버지니아의 친화력이 선택한 사람들이어서인지, 여행자들은 물론 가이드들마저도 알고 지내던 친구들처럼 편안하다.


폭포가 바라다 보이는 하나뿐인 대나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폭포를 감상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를 빼고는 모두 스페인어권의 사람들이다. 모로코인 가이드 둘은 스페인어를 잘 하고 신혼여행 중이라는 캐나다인 남편 스테판과 아르헨티나 아내 칼라, 혼자 여행 중인 칠레 남자 라이문도, 스페인 사람인 버지니아와 마리아까지 모두들 스페인어가 편한 사람들이다. 나를 위해 영어를 사용해주는 게 고마울 지경이다.

아욥은 커다란 주전자에 민트잎 한 아름을 넣어 끓인 민트티를 가져다준다. 땀을 식히며 마시는 뜨거운 차 맛이 의외로 좋다. 몇 잔이고 따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자기가 여행한 곳에 대한 이야기나 카메라의 미니 삼각대 사용법 같은 소소한 여행정보들이다. 칠레 사람 라이문도는 내게 칠레 여행에 대해 묻기도 한다. 또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은 정말 좋았지만, 칠레 수도 산티아고는 너무 대도시라서 서울과 다를 게 없다는 말에 모두들 동감한다. 대도시보다는 쉐프샤우엔 같은 작은 마을이 좋다는 사람들이라 이 소소한 트레킹이 더 즐겁다. 잠시 후 아욥이 아까 보았던 간이식당에서 따진을 들고 온다. 오늘의 점심식사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는다. 무얼 먹어도 이런 분위기에서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산을 내려오다가 가이드가 안내하는 명당(?)에 자리를 잡는다. 뜨거웠던 태양은 금세 부드러워지고 계곡 물은 아직도 차다. 아욥이 어디선가 민트티를 한 주전자 들고 온다. 뜨거운 민트티를 유리잔에 따라 마시며 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발만 담그고 있어도 차가운 강물인데 사람들은 금세 수영복으로 갈아입는다. 무슬림의 나라 모로코, 여자들은 히잡을 써야 하는 나라에서 반라의 수영복 차림이 된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버지니아와 마리아, 칼라는 훌렁 옷을 벗는다. 건너편에서 있던 모로코 젊은이들의 힐끗거리는 시선이 느껴지는데도 아랑곳없다. 나는 추운 것도 싫고 이런 분위기에서 수영복 차림도 싫어서 자리에 앉아 풍경이나 보고 있다.

꼭 수영을 해야만 하는지 의문인 나와는 달리, 그들은 이런 기회에 수영을 하지 않는 내가 이상한가 보다. 문화의 차이이기도 하고 개인 성향의 차이이기도 하다. 계곡 물이 차가워서 20분도 버티지 못하고 물에서 나온 사람들은 바들바들 떨면서 물기를 닦더니 그 차림으로 자리에 누워 수다를 떤다. 처음에는 영어로 시작된 대화가 점점 그들에게 편한 스페인어로 바뀌더니 한참을 동안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눈다. 스페인어는 나에게는 소음이나 다름없으니 나는 계곡 건너편 모로코 사람들을 쳐다본다.


자세히 보니 모로코 남자 몇 명이 비닐에 무엇인가를 담아서 불고 있다. 옆에 앉은 몇 명은 지나치게 시끄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옆의 스페인어보다 건너편에 관심이 더 간다. 비닐을 불던 몇몇이 휘청거리며 동작이 커지더니 급기야 우리 쪽으로 징검다리를 건너오기 시작한다. 우리 일행들도 낌새를 알아채고 긴장하는데 다행히 그들은 비틀거리며 우리 옆을 지나친다. 어런 일이 비일비재한 듯, 그제야 가이드가 영어로 이야기를 해준다. 쉐프샤우엔 인근의 산간 마을에서는 대마가 재배되고 매매된다고 한다. 히피들이 이곳에 많다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마약의 일장춘몽에 빠져들려고 오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다. 순수하게만 보이던 쉐프샤우엔이었는데 이면에 이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슬슬 하산할 시간이다. 가이드가 있어서 트레킹은 편하다. 계곡의 허술한 징검다리에서는 먼저 물에 첨벙첨벙 들어가 사람들을 잡아주고 사람이 많은 길에서는 지름길로 안내를 해준다. 내려오면서 마리아에게 아까 스페인어로 무슨 말을 그리 심각하게 했느냐고 물어보니 무슬림 국가인 모로코의 일부 다체제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모로코에서는 법적으로 아직도 2명의 아내는 허용된다고 한다면서 자신들이 가이드의 몇 번째 아내가 될 수 있는지 장난을 쳤다고 한다. 그 대화에 끼지 못한 것을 무척이나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걷는다. 너무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은 듣고 싶지 않다.

주차장에 돌아오니 어느새 가이드가 연락해 놓은 그랑 택시가 대기하고 있다. 트레킹을 쉐프샤우엔으로 돌아오는 택시에는 가이드 보조 아욥과 나, 마리와, 버지니아가 함께 탔다. 아직 어린 아욥은 페이스북 주소를 적고 연락하라고 난리다.


마리아와 버지니아는 만난 날 오개월간의 내 여행 이야기를 듣고 곧 스페인으로 다시 가게 될 나의 일정을 알고는 그들의 고향 말라가라는 도시에 꼭 가라고 권했었다. 둘은 지금 직장 때문에 말라가에 살지는 않지만 말라가를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버지니아는 말라가에 자신의 아파트를 그대로 두고 지금 독일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자꾸 자신의 아파트에서 머물면 되니까 말라가에 가라고 권한다. 말라가는 스페인의 유명한 관광도시이긴 해도 내 계획에는 없는 도시였는데 마음이 흔들린다.

쉐프샤우엔으로 돌아가는 한 시간 동안 택시 안에서 그들은 나를 열심히 설득하고 나의 가이드북이 되어준다. 마리아는 버지니아와 상의해서 내 수첩에 말라가에서 할 일과, 먹을거리, 가야 할 곳을 꼼꼼히 적어준다. 버지니아는 한 술 더 떠서, 말라가에 도착하면 자신의 할머니 댁에 택시를 타고 가서 아버지를 기다려 아파트 열쇠를 받으라고 아예 할머니 댁과 자기 아파트 주소, 아버지의 전화번호를 적고 있다.

처음에는 일정을 바꾸지 않으려고 사양했고 나중에는 폐를 끼치게 될까 봐 거절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말라가에 가지 않을 이유를 댈 수 없다. 이런 식의 적극적인 호의는 여행 중에도 처음이라 어쩔 줄 몰랐지만 지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맙고 감동적이다. 이런 친절을 그냥 받아도 되는 것일까 싶고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싶기도 하다.


쉐프샤우엔에 도착해서 넉넉하게 가이드비를 지불하고 사람 좋은 가이드들과 작별을 한다. 다른 여행자들과는 숙소로 돌아갔다가 카스바 앞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함께 하기로 하고 헤어져 호스텔로 간다. 너무 늦게 도착해서 어제 만나기로 약속한 모로코 대학생들과는 아쉽게도 만날 수 없어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하니 흔쾌히 이해해준다. 게스트하우스 거실에는 처음 보는 동양 여자가 앉아 있다. 오늘 이곳에 도착한 걱정 가득한 표정의 그녀는 모로코에 온지 이틀째라며 나를 반긴다. 동양인 여행자가 괜히 더 반가워 수다를 떨다가 함께 광장으로 나간다.


오늘의 폭포 트레킹 멤버와 중국인 칭루까지 합석해서 이방인들끼리 저녁을 먹는다. 중국에서 일한 적 있다는 스테판이 중국 친구가 지어준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써서 보여준다. 스테판의 중국 이름은 쓰기 쉬우면서도 뜻이 멋진 이름, 대산(大山)이다. 진지한 스테판에게 그게 쓰기 쉬워서 지어준 이름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어서 칭루와 나는 그저 웃을 뿐이다.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여행길이지만 아무나 친구가 되지는 않는다. 인연이 닿아야 하는 것이다. 쉐프샤우엔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좋은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다. 별빛 아래 노천식당에서 왁자지껄한 저녁 만찬은 밤이 늦도록 계속된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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