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경의 Shall We drink] <37> 앱솔루트 ① 완벽이라는 이름의 보드카

입력 2016. 10. 13. 00:05 수정 2016. 10. 1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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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강렬한 보드카 맛을 알기도 전에 ‘앱솔루트(Absolut)’를 알았다. 오래전 광고회사 인턴 시절, 앱솔루트 광고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목이 짧고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병 모양을 부각한 이미지에 별다른 설명 없이, Absolut 와 다른 단어를 결합하면 멋진 인쇄 광고 한 편이 완성됐다. 광고를 넘어 예술 작품 같은 시리즈도 있었다. 이를테면,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Andy Warhol)이 그린 현란한 보드카 병 그림 아래 ‘앱솔루트 워홀(Absolut Warhol)’ 이라고 한 줄 툭 쓰여 있는 거다.
인턴 시절, 보드카 대신 소주잔을 함께 기울이던 동기와 난 언젠가 앱솔루트 같은 광고를 만들리란 꿈을 키웠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꿈은 변했지만, 동기는 친구로 남았다. 친구는 소주파, 나는 맥주파. 노선은 달라도 서로의 숙취를 깊이 이해하며, 소소한 주정 따윈 감싸 안아주는 술친구가 됐다. 그런 우리가 앱솔루트의 나라, 스웨덴에 함께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스톡홀름의 유르고르덴 섬 풍경.
지난여름 우리는 스톡홀름행 실야 선(Silja Line) 갑판 위에서 서 있었다. 시야에서 헬싱키의 항구가 지난 세월처럼 아득히 멀어졌다. 배 위에서 하룻밤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옛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다, 기분 좋게 취한 상태에서 여행 계획을 세웠다. 먹기보다 마시는 데 집중하자. 박물과 보다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자. 그래도 앱솔루트 보드카에서 운영하는 ‘스피릿 박물관(Spirit Museum)’은 꼭 가보자. 그렇게 쿵 하면 짝하는 사이 밤이 깊어갔다.

러시아어로 물이란 뜻의 ‘보다(Voda)’에서 유래한 보드카는 감자나 옥수수, 보리, 호밀 등의 곡류를 원료로 하는 증류주다. 본산지는 러시아지만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처럼 발트 해 연안의 추운 나라들에서도 국민 술로 통한다. 스웨덴에선 15세기경부터 ‘브렌빈’(Brännvin, 불타는 와인)이란 이름의 보드카가 만들어졌다.

앱솔루트의 역사는 1879년 라스 올슨 스미스(Lars Olsson Smith)가 보드카 원액을 여러 번 증류해 불순물을 없애는 연속식 증류법으로 ‘앱솔루트 렌트 브렌빈(Absolut Rent Brännvin)’ 개발하면서 시작됐다. 1979년, 앱솔루트 렌트 브렌빈을 미국에 수출하면서 Absolute에서 e를 뺀 ‘Absolut’로 재탄생했다. 참고로, 라스 올슨 스미스는 14살 때부터 보드카 장사를 시작해 23살에 스웨덴 보드카 업계를 쥐락펴락한 인물로 별명이 ‘보드카 왕’이다.
스피릿 박물관 옆엔 스웨덴 역사를 살펴보기 좋은 바사무제트가 있다.
앱솔루트가 걸어온 길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곳이 ‘스피릿 박물관’이다. 스톡홀름 구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섬, 유르고르덴(Djurgarden)에 있어 반나절 소풍 가듯 다녀오기 좋다. 17세기 후반 왕실 사냥터였던 유르고르덴에는 스피릿 박물관 외에도 스칸센(Skansen), 바사무제트(Vassamuseet) 볼만한 박물관이 여럿 모여 있다.
향 체험관에선 향미 전문가가 된 듯 다양한 향을 맡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가 미술관이야? 술 박물관이야?”
앱솔루트 아트 컬렉션 전시관에 들어서자 친구 입에서 감탄이 툭 튀어 나왔다. 나 역시 멋진 작품들에 눈이 휘둥그레 졌다. 앤디 워홀 뿐 아니라 키스 해링(Keith Haring),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등 유명 아티스트들과의 컬래버레이션 작품이 가득했다. 작품 사이에는 보드카 병을 넘어 문화의 아이콘이 되고자 하는 앱솔루트의 철학이 담긴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예술이 예술이 되길 멈추면 광고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이어지는 ‘향 체험관’도 흥미로웠다. 다양한 향을 가미하는 플레이버드 보드카(Flavored Vodka)의 향을 맡아볼 수 있어 코가 즐거웠다.
물가에 아담하게 서 있는 스피릿 박물관.
스피릿 박물관을 돌아보며, 앱솔루트의 모든 제품은 스웨덴 남부의 작은 마을 아후스(Ahus)에서 생산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원료도 오직 아후스의 땅에서 자란 겨울 밀과 우물에서 끌어올린 청정수만 쓴다. 청정한 원료가 400년 된 증류소에서 연속 증류법을 거쳐 순수한 보드카로 태어나는 것이다. 모주가 순수하기에 만다린, 카시스 등 향을 가미한 플레이버드 보드카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원료도 생산도 단 한 곳에서 한다는 ‘원 소스(One Source)’ 철학이었다.

친구와 나는 역시 오길 잘했어 하는 회심을 미소를 지으며 스피릿 박물관을 나섰다. 그때 문득, 러시아 소설가, 안톤 체홉(Anton Pavlovich Chekhov)의 소설 『가을』에서 하루아침에 가난뱅이로 전락한 한 남자의 대사가 떠올랐다.
“보드카가 있으면 슬퍼도 슬퍼지지 않지!”

그저 술꾼의 핑계라고만 생각했던 그 대사가 이해가 됐다. 맑고 강렬한 보드카라면, 슬픔마저 깔끔하게 증발시켜 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앱솔루트라면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켜줄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에 ‘쿵짝’이 맞는 친구와 함께라면 슬퍼도 슬퍼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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