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경의 Shall We Drink] <35>애틀랜타에서 경험한 야맥의 맛

2016. 9. 2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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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홈구장인 터너 필드 볼 파크 전경.
야구장의 매력은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며 신나게 응원하는 데 있다. 야구만큼 맥주와 잘 어울리는 스포츠가 또 있을까. 9회 말 승부가 나기 전까지 맥주에 한눈팔 시간도 충분하다. 맥주를 좋아하는 야구 팬은 말할 것도 없고, 나처럼 야구의 ‘야’ 자도 모르는 맥주 팬도 야맥(야구장에서 마시는 맥주)을 즐긴다. 뜨거운 여름 낮 경기라 해도 차가운 맥주만 손에 쥐면 배트를 든 타자처럼 기운이 난다. 여기에 방어율 높은 안주까지 더해지면 즐거움은 배가 된다. 그런 점에서 메이저 리그 야구 경기 직관은 내 오랜 로망 중 하나였다. 평소 한국에서는 야구장에 잘 가지도 않지만, 야구의 나라 미국에 왔으니 큼직한 플라스틱 컵에 담긴 맥주를 마시며 그들만의 리그를 엿보고 싶었다.
맥주와 음식을 즐기며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
9월의 첫날 애틀랜타 ‘터너 필드 볼 파크(Tunner Field Ball park)’에서 그 로망이 실현됐다. 전 구단주이자 CNN의 창설자, 테드 터너의 이름을 딴 터너 필드 볼 파크는 메이저리그 야구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Atlanta Braves)’의 홈구장이다. 1996년 올림픽 경기장으로 건설해, 이듬해 브레이브스의 홈구장으로 전환됐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LA 다저스나, 텍사스 레인저스에 비해 국내 팬은 적지만 1876년 창단한 140년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구단이다. 구단의 내력도 내력이지만, 볼 파크라는 어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야구장 가는 기분이 공원에 소풍 가는 아이처럼 설렜다.
야구장에 잘 어울리는 거대한 핫도그와 시원한 맥주.
야구도 맥 후경. 자리로 가기 전 맥주와 핫도그부터 주문했다. 차가운 지역 맥주 스위트워터(Sweet Water) 한 모금 머금고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맥주 한 잔씩 들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힐긋힐긋 경기를 보고 있었다. 야구장엔 팀이 배출한 유명선수의 영구 결번이 걸려 있었다. 쭉 세어보니 11개나 됐다. 3번은 1982년부터 2년 연속 MVP에 오른 데일 머피(Dale Murphy), 21번은 역대 최고의 좌완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투수 워렌 스판(Warren Spahn), 44번은 통산 755홈런을 기록한 홈런왕 행크 애런(Hank Aaron)의 등 번호였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경기는 속도감 있게 흘러갔다. 관중들은 홈팀이 수비를 할 땐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공격할 땐 손에서 맥주도 놓고 경기에 몰입했다. 경기 중반 쯤, 브레이브스 타자가 홈런을 날렸다. 거대한 핫도그에 정신이 팔렸던 게 미안할 정도로 시원한 홈런이었다. 응원하는 팀의 홈런이라니! 홈런의 기쁨을 곱씹으며 마시는 맥주가 꿀맛이었다.
‘주류에 휩쓸리지 말자’를 모토로 실험적인 수제맥주를 선보이는 스위트워터 양조장.
응원 열기도 점점 뜨거워졌다. 사람들은 도끼질을 하듯 팔을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며 응원을 했다. 브레이브스란 팀 이름은 말 그대로 용감한 사람들이란 뜻인데, 인디언들이 전사를 부르는 ‘브라보스(Bravos)’에서 따왔다. 그래서 응원 도구로 인디언들이 쓰던 도끼 ‘토마호크 찹(Tomahawk Chop)’을 쓴다. 7회 말 홈팀의 득점을 기대하며 전 관중이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는 하는 ‘세븐스 이닝 스트레치’도 흥미로웠다. 게다가 경기는 용감한 사람들(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승리로 끝났다. 전광판에는 ‘Braves Win!’이라는 글씨가 깜빡거렸다. 구장을 나서는 사람들의 표정이 환했다.
스위트워터 로고가 박힌 맥주잔 뿐 아니라 티셔츠 등 다양한 아이템도 살 수 있다.
그날 이후 스위트워터를 마실 때면 야구장의 열기가 떠올랐다. 탁. 맥주 캔만 따도 축배를 드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엑스트라 페일 에일 420, 파인애플 IPA 등 종류도 다양해 맛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스위트워터 맥주는 어디서 어떻게 만드나 알고 싶어 미드타운에 있는 양조장을 찾았다. 그 안은 파티라도 열린 듯 시끌벅적했다. 10달러를 내고 양조장 투어를 하면 맥주를 무려 6잔이나 시음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을 들으니 왜 파티 분위기인지 이해가 갔다. 맥주를 다 마시고 나면 잔은 전리품으로 가져가면 된다. 우선 블루베리 향이 나는 ‘블루(Blu)’를 한 잔 마시며 투어를 기다렸다. 두 번째로 ‘빌 클린턴의 사과보다 부드럽다(Smoother than a Bill Clintion apology)’는 설명이 붙은 조지아 브라운(Georgia Brown)을 마시려는데 투어가 시작돼 맥주잔을 든 채 참여했다. 맥주는 부드러웠고 양조장 투어는 흥미로웠다.
스위트워터 양조장에서 맛볼 수 있는 다양한 맥주들.
안내를 맡은 청년도 맥주를 홀짝이며 양조장을 보여줬다. 구석구석 실험정신과 자유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가 들려준 양조장 역사는 뜻밖이었다. 스위트워터의 창립자는 이 동네가 아니라 서부 콜로라도(Colorado) 출신이라는 것. 콜로라도 대학의 룸메이트였던 두 친구는 책보다 맥주가 좋아 양조장에서 케그(Keg) 닦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다 점점 맥주가 좋아져 취직 대신 양조 공부에 매진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보러 왔다가 그간 갈고 닦은 수제맥주 양조 실력을 발휘하기로 맘먹고 1997년 애틀랜타에 스위트워터 양조장을 열었다. 낚시나 급류 타기 좋기로 유명한 스위트워터 크릭(Sweetwater Creek) 주립공원에서 카약을 타다가 영감을 받아, 양조장 이름을 스위트워터라 지었단다.
맥주를 홀짝이며 양조장의 짧고 굵은 역사를 설명하는 청년.
한 마디로, 맥주가 좋아 맥주를 만들다 보니 양조장 주인이 돼 있더라 하는 멋진 이야기였다. 양조장 투어가 끝나고 또 한 잔의 맥주를 맛보며 생각했다. 맥주가 좋아 야구장에서 맥주를 마시다 보니 ‘야구 좀 아는 맥주 덕후’가 돼 있더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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